실패를 딛고 일어난 성장기
가끔 재밌는 예능프로그램도 보기 거북할 때가 있다. 승리를 위해 악전고투하는 출연자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일 때다. 누가 봐도 익숙지 않아서 서툴고 실수를 연발하는 모습이 광대놀음 같아 보일 때, 나는 공감성 수치를 느낀다. 누군가는 그토록 감정이입하는 내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건 내 의지와 무관하게 튀어나오는 마음의 소리라 나조차도 어쩔 수가 없다. 그만큼 나는 경쟁에 대한 의식이 높은 편이고 누군가의 어수룩한 모습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런데 사실 그건 스스로에 대한 평가잣대이기도 하다.
나는 게임을 싫어한다. 노는 게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이기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기있는 게임엔 '경쟁'구도가 들어있다. 남을 이겨야만 내가 승리할 수 있고 그게 즐거워서 게임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나는 대체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손재주나 전략이 뛰어나지 않아 운이 아주 좋지 않은 이상 내게 우승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유저들과의 경쟁이 없는 나 홀로 하는 게임이 좋았다. 내가 주로 손댔던 게임이 타이쿤류였던 이유다. 성실하게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거나 돈을 들이면 내가 원하는 대로 게임속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그런 것들에 성취감을 느꼈다.
단순히 승패를 떠나서 혹은 잘하느냐 여부와 무관하게 내가 즐거웠으면 그만이란 생각을 하면 좋을텐데,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남에게 비웃음을 사는 게 두려웠다.
비단 가상 현실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나는 질 것 같아 자신감이 없으면 포기하기 일쑤다. 이기고자 하는 욕망이 큰 데다가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터라 낯선 것에 대한 도전정신이 무너지고 만다. 특히 몸으로 하는 것에 젬병인데 뛰든 걷든 구르든 잘 넘어지고 다치고 삐끗하는 통에 체육시간이 어릴 때부터 무척 싫었다. 아무래도 운동신경이 둔한데 체육을 못한다는 이유로 놀림감이 되다보니 창피해서 더욱 위축되곤 했다. 때문에 배워본 운동종목이 많지 않았다.운동신경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많아 운동 자체가 싫었기 때문이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도 좀처럼 운동에 대한 비호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데이트할 때에도 체육활동을 일절하지 않았고 남의 권유에도 일절 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는 경쟁의식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애써 잘 해야겠단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 건 주변 사람들 덕분이었다. 더 이상 내 행동에 점수를 매기지 않아도 되서 그런 것도 있고 잘 못 해도 즐길줄 아는 사람들에게서 배운 점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적질 하지 않고 움츠러드는 나를 응원해준 사람들 덕분이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계기는 연수원 교육 시절이었다. 일정 내내 교육 듣느라 지루했던 터라 룸메이트였던 언니와 지하에 있는 체육시설에 갔었다. 런닝머신이나 사이클 같은 헬스 운동기구들과 탁구대 하나가 있었다. 탁구 쳐 본 일이 없었는데 함께 간 언니와 심심해 탁구채를 잡았다. 서로 할 줄 몰라서 제대로 친 게 아니라 배드민턴 치듯 공을 날렸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그런데도 꺄르르거리며 공을 날렸다. 공을 제대로 주고 받지도 못하고 줍는데 체력소모가 더 컸지만 재밌었다. 아, 못해도 재밌긴 하구나. 처음 깨달았던 순간이다.
그 뒤로 차근차근 나는 편견을 부숴나갔다.
물론 갑자기 월등히 실력이 향상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못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순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고 점수 차나 남의 평가를 신경 쓸 필요도 없이 그냥 내가 즐거우면 됐다하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전에는 못하면 비교되는 것 같아 우울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그런 선입견에서 많이 벗어났다.
오히려 두려움에 도전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바보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들은 생각보다 나의 자잘못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은 못하더라도 해보는 것에 좀더 열중하고 있다. 잘하냐와 무관하게 하고 싶은 걸 걱정이 앞서 포기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경험치를 쌓다보면 언젠간 즐길 정도가 될지도 모르니깐.
요즘 춤을 배우고 있다. 전부터 오랫동안 춤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는데 단체 수업 때 제일 뒤쳐져서 동작을 어설프게 흉내냈던 내 모습이 싫어서 해 볼 생각을 안했다. 하지만 1:1 클래스를 알게 된 이후로 두 달째 강습을 받고 있는데 무한 칭찬봇인 선생님 덕분이기도 하고 포기하지 않고 연습을 한 덕분에 나날이 실력이 늘고 있다. 지난 시간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동작이 몇 번의 집념어린 연습을 거치고 나면 다음 번엔 가능한 동작이 되었다. 자신감이 붙으니 어려운 동작들이 하나씩 해결 되어간다.
그렇게 불가능할 거라 지레짐작했던 것과 달리 해내는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한 발짝씩 두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