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삶에 잠시 끼얹는 소소한 행복들
그 동안 늘 내 삶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왔다.
그리고 비단 내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일상에서 보고 들은 내용 중 감회가 새롭게 느껴지는 일화에 대해서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사회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담은 전문성을 띈 글인데 몇 번 글감을 떠올려보긴 했지만 아직 내가 준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내가 기대하는 수준만큼의 내용을 담아 내기 위해선 보다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원하는 카테고리는 분명했지만 아직은 갈 수 없는 길이라 판단하고 당장 갈 수 있는 길부터 들어서기로 했다.
그렇게 이번 한 달 동안 그럭저럭 준비된 생각들을 마음껏 브런치라는 공간에 토해냈다. 사실은 꽤 오랜 시간 남들 모르게 글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해 왔기 때문에 생각보다 빠르게 글을 써내려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엔 혹시라도 다듬어지지 않은 내 생각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남을 찌르게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공개를 꺼렸지만 갑작스레 용기를 얻었다. 정말 단순하게도 건너 아는 직장동료가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누군가는 하고 싶은 일에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때 나는 망설이고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로소 첫 발을 뗐다.
그 전엔 말하고자 하는 욕구를 사람들과의 소통으로 맘껏 풀어왔다.
사람들 간 오고가는 정 속에서 나는 이 세상이 생각 이상으로 따뜻한 공간이라 여겨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너무 순진했던 탓에 쉽게 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적극적으로 감사와 애정을 표하고 말하지 않아도 남의 사정을 헤아리는 게 응당 내가 해야할 일로 여겼던 건 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물론 그런 에너지를 주위에 발산하는 동안 많은 관심과 사랑이 쏟아졌다. 모두 생각만큼 깊거나 오래가지 않았을 뿐.
그런 중에 사회생활에서 겪은 일들로 인해 심경의 변화가 도드라지게 되었다. 자신감이 있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 내가 한껏 자세를 낮추게 된 것은 주변의 간섭과 따가운 시선 때문이었다. 엉덩이를 가만히 붙이고 앉아 있지 못하는 성격 탓에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불이 난 곳에 가장 먼저 달려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적극적인 태도 때문에 남의 눈총을 샀다. 연차가 꽤 있던 선배는 너 혼자만 일하는 티를 내면 다른 사람들은 뭐가 되느냐며 나를 나무랐다. 미처 몰랐다. 나로서는 당연한 행동이 남에겐 크나큰 불편으로 다가올 줄. 친한 회사 선배는 나에게 최대한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낭중지추가 되려 하면 내가 감수해야 할 게 너무 많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가끔 남들 앞에서
벌거벗은 원숭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과 스스로가 생각하는 내 모습 사이엔 괴리가 있었다. 그걸 뼈저리게 느끼게 된 말 한마디가 있다. "너는 슬플 때가 언제야?" 이 물음 속에서 마치 나에게는 밝고 명랑한 모습만 존재할 거라 여기는 그런 기대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기대치는 때때로 내게 너무 높은 벽이 되었다. 그래서 '너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라고 단정짓는 사람들의 기대에 더 이상 부응하지 못할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정작 내겐 미움 받을 용기가 부족했다.
가시가 된 말은 너의 입에서 흘러 나와 소리 없이 내 마음에 박히곤 했지
그렇게 몇 달 전부터 말 수가 줄어들었다. 괜한 오해를 사거나 헛된 기대조차 심어주고 싶지 않아 조용히 지내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MBTI 검사를 하면 ENFP가 나오는 나는 명랑함이 안에서부터 번져 나오는 일이 없도록 꽁꽁 묶어놓고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인이 박여버린 내 이미지를 완전히 쇄신할 수 없었다. 다만 전과 달라진 분위기를 한껏 풍긴 덕분에 더 이상 상처받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대신 소통이 부재한 현실에 부딪혀 지독한 외로움에 사무치게 되었다.
마침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과의 만남의 기회도 줄어들면서 나는 더더욱 소통의 욕구를 억눌러야 했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나 역시 가만히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답답함 속에서 나 자신과 그 주변을 끊임없이 돌아봤다. 하지만 입가에만 맴도는 이야기들과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여러가지 감정들을 풀 곳이 없었다. 나만의 '해우소(解憂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내 생각을 브런치라는 공간에 펼쳤다. 그냥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꺼냈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다듬어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혼자 기뻐했다. 그렇게 보낸 한 달이었다.
올해는 모두에게 그러했듯 나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져준 한 해였다.
지금 선택한 직업이 천직이라고 여겨도 되는걸까 하는 크나큰 고민부터 수입관리나 재테크는 어떻게 할지 결혼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인생의 큰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 게 좋을지 등등 여러가지 생각들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그런 한편으로 남들의 생각과 마음 속이 무척 궁금했다. 나만 헛된 삶이다 자조하는 걸까. 나만 길을 잃고 방황하는 걸까. 남들은 멀찌감치 앞서 달리고 있는데 나만 뒤쳐져 있는 건 아닐까. 깊은 마음 속 대화가 어우러지기보단 피상적인 대화와 상투적인 안부인사를 주고받는 게 전부다보니 더욱 남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만 늘어서 뭘 해야할지 알 수 없어 어떠한 것에도 노력을 쏟아붓지 못하고 흥청망청 보낸 시간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영어공부도 하긴 했고 이것저것 새로운 걸 배우기도 했고 스페인어 책도 다시 뒤적여보긴 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어떤 달엔 책을 몇 권씩 읽었다가도 그 다음 달엔 한 장도 못 넘겼다. 그렇게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면서 뻔하게 흘러갈 뻔한 일상이 조금씩 변주된 채로 기록되었지만 왠지 기억나는 구절이 없다.
내일이 기대되진 않지만 그래도 멈추기엔 아직 내 앞날이 너무 창창하다.
내일도 오늘과 마찬가지로 매우 춥고 건조한 하루일 것이다. 오늘에 비교해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이유가 없는 평범한 하루가 미래 저 편에 존재한다. 오늘은 글 쓸 마음이 겨우 들어 몇 자 적었지만 내일은 일이 무지하게 바쁘거나 도저히 글 쓸 마음이 생기지 않아 또 멍하게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하기 싫은 것에 발목 잡히거나 해야 할 것은 놓치면서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후회스러운 과거를 구태여 만들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잃지 않고 뚜벅뚜벅 나만의 속도로 걸어나가려고 한다.
A dieu 2020,
새로 만날 2021년엔 더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