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moment #3

어느 하루에 대한 고찰(feat. 부의 사다리)

by 흔한여신
회사 밖에서의 삶은 어떻게 흘러가는 게 좋을까.


남들처럼 매일같이 뉴스를 뒤지고 경제공부를 해서 어떤 주식이 오르고 내릴지 가늠해보는 게 좋을까. 어느 지역의 부동산이 투자해볼 만하더라는 ‘카더라 통신’을 좇는 게 좋을까. 종일 핸드폰을 붙잡고 대량으로 유통되는 정보를 쉼 없이 분석하며 개미 투자자로서의 삶을 꾸려가는 게 맞을까.


그런 루틴이 남들에게 너무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탓에 그에 따르지 않는 내가 시대에 뒤처진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 다들 당연한듯 저마다의 투자전략을 세워 각자의 투자대상에 가치를 매기곤 몇 천원, 몇 만원 손해와 이득을 보는 일에 일희일비한다. 그만큼 근로소득으론 도저히 뒷받침할 수 없는 안락한 삶. '수저를 문' 태생이든지 아니면 최소한 투자에라도 성공을 하든지 해야 비로소 부의 사다리를 탈 수 있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많은 전문가들이 인정했듯 허황된 옛말에 불과하다.


저임금 근로자로서의 삶에서 자신에 대한 투자는 사치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면 지금의 시기가 암흑처럼 느껴질 것 같아 나는 새로운 걸 경험하고 공부하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게 무얼 위한 거냐는 물음엔 명확히 답할 수 없다. 철저한 계획에 따라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하고 싶어서 해 본 것들이었으니깐. 그저 내 삶의 시간들을 좀더 윤택하게 만들고 싶었던 선택이었다. YOLO의 마음이었던거라 내 결정에 후회는 없지만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게 맞았는가 하는 미련은 남아 있다.


미래를 스스로 정할 수 없는 '부품의 삶'엔 기다려야 하는 순간이 더 많다. 원치 않는 상황에서도 조급해 하지 않고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윗분들이 내리는 의사결정에 따라 내 거취가 결정되고 나는 그들의 기대에 맞는 결과물을 내면 될 뿐. 그러다 보니 계획을 세우는 게 무의미했다. 어떤 자리에까지 오르고 싶다 하는 욕심은 성과에 대한 쓸데없는 집착의 원인이 됐다. 어짜피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 불확실한 미래에 괜한 기대를 걸고 싶지 않아졌다.


소소하든 그렇지 않든 나는 확실한 행복이 필요하다.


열심히 산다면 분명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라는 희망이 나에겐 필요하다. 하지만 과연 그런 기대를 가져도 좋을까. 사실 지금보다 더 최상의 상황을 꿈꾸기엔 오히려 피해야 할 최악의 상황들이 더 많다. 감사할 줄 아는 삶이란 무엇일까. 나보다 덜 가지고 더 불우한 환경에 놓인 남과 비교해 만족해야 하는 삶인걸까. 아니면 나와는 상대가 되지 않을만큼 많이 가져 내가 결코 도달하지 못할 위치에 놓인 남과 비교해본들 달라지지 않는 내 위치에 자조하는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일까.


전에는 일과 일상에 비슷한 크기로 깃들어 있던 기쁨과 슬픔이 지금은 그 균형을 잃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남들 또한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느낀다. 더 정확히는 기쁨이 더 넘치게 있는 게 결코 아니라 슬픔이나 우울한 감정이 되레 더 가득 담겨 있는것 같다. 저도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슬픔에 휘둘려 더 이상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남의 슬픔을 방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나만의 방향을 고민한다. 어떻게 나와 남을 위로할 수 있고 어떻게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나약한 내 마음은 끊임없이 시련의 바람에 나부낀다. 바람의 강도가 그리 세진 않은것 같은데 나는 차마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볼 수가 없다. 그만큼 주관적으로 느끼는 바람의 세기가 강하다. 균형을 잃을 것만 같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하지만 이대로 드러누울 순 없다는 심정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바람에 맞서본다. 언젠간 다시 잔잔한 봄바람이 불어오리라 믿으며. 땅을 움켜쥐고 있는 나의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다.


언젠간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나만의 가도를 달리게 될 날이 올까.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때가 올까.


그런 미래엔 모두가 지금보다 더 '안녕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늘공원, photo by. Jundo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