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응보의 법칙 (2/2)

가늘고 길게 살아남는 법

by 흔한여신
진실은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직장동료의 얌체같은 행동을 비겁하다 여겼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럴 수도 있지' 라며. 나라고 내내 대쪽같이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들인 수고에 비해 더 큰 수확을 바라는 요행이 꼴보기가 싫었다. 특히 자기 입으로 제 성과를 부풀려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조용히 혼자 들끓는 분노를 삭이곤 했다. 적어도 나는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하는 각오를 다졌다. 그리곤 다른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들의 비양심적인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불편한 속을 달랬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내가 욕했던 그들은 제 자리에서 행복해보였다. 불행해진 건 내 마음뿐이었다.


한밭수목원의 봄날, photo by. Rojoy


그로부터 시간이 흘렀다.

미워했던 감정도 거의 사그라질 무렵 다시 그들을 돌아보니 비로소 보지 못했던 이면이 눈에 들어왔다. 남들과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기보다 혼자만의 방식으로 일하기 좋아했던 동료는 이내 문제를 일으키고도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아 문책을 당했고, 빈틈이 많고 종종 제 일을 남 일인냥 제쳐두곤 했던 동료는 원하는 팀으로 이적하는데 실패했으며, 산더미처럼 일을 밀려 놓고도 하는둥 마는둥 했던 동료는 참다 못한 팀원들의 폭로에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처리한 업무량에 따라 줄세우기를 한 결과였다. 각 개인이 팀의 성과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가에 대해 관리자들은 생각보다 철저히 평가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불성실한 태도와 내게 눈엣가시와 같았던 그들의 단점은 나만 알고 있는 게 아니었다. 친한 인사 담당자와 이야기를 하던 중 알게 된 것인데 일 할 때 꾀를 부리는 사람들은 대체로 관리자들도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장은 모른체 하더라도 언젠간 인사상이든 업무상이든 불이익이 주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실제로 열심히 맡은 바 책무를 다하기보다 본인의 업적을 부풀리는데 더 관심이 있었던 동료는 수상 목록에서 제외되었고 반대로 묵묵히 일 해온 동료는 관리자의 추천을 받아 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결국 본인이 한 만큼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내 친구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전에 자기중심적의 시종일관 뻔뻔한 태도를 보인 선배로 인해 맘고생을 했던 친구는 결국 그 선배가 제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회사 내의 다른 동료와 크게 싸움을 벌여 크게 문책을 당하고 부서를 옮기는 결말을 보게 되었다. 덕분에 내 친구는 그 동료와 떨어져 앉게 되었고 그가 나가고 난 뒤 팀 분위기는 더 좋아졌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전개였지만 조직원들 간의 갈등으로 불씨가 번지게 되면서 결국 관리자들의 인내심의 한계를 건드렸던 탓에 더 이상 안하무인의 태도를 눈 감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알게 되었다. 어느 조직이든 개인의 모자라고 부족한 부분을 최대한 포용하려고 하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되갚음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모두가 사실은 그들의 무능력함을 알아채고 있다는 것을. 깨달음이 온 뒤에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진행되는구나.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어떤 게 정답인지 가늠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가끔은 나도 꼰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나이가 어린 친구들 혹은 사회생활 경험이 적은 친구들이 "이 상황에선 이렇게 행동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라고 의견을 제시하는 나를 종종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쳐다볼 때가 있다. 특히 '열정페이'를 거부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신세대일수록 불필요한 관행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나 역시 그런 사고방식에 단단히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조직문화가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라면 ~해야지'라며 한 사람에게 자연히 기대하는 '고정적인 역할 행동'이 머릿 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 할일의 범주가 불명확한 경계에서 내가 더 나서야할지 아니면 나설 필요가 없을지 가늠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 엉거주춤 선배들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 행동을 해야할지 서서히 배워나가게 된다. 나도 처음엔 신입사원이라면 빠릿빠릿한 예스맨이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따라 뭐든 열정적인 태도로 임했다.


막내에게 기대되는 역할이란 부족하더라도 열심히 배우겠다는 자세라는 생각에 조금씩 선배들의 일을 거들며 하나둘 배워나갔다. 그런 모든 행동의 이면엔 '내가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적절한 행동양식이 내생각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의사결정도 수용해야 한다. '까라면 까야지'라는 식의 문화가 여전히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덕수궁, photo by. Jundori


그래서 여전히 사회생활에서 상황에 맞는 예의가 무엇인지 고민이 되는 순간들이 많다. 선배의 조언에 따라 조직에 적응해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있지만 가끔은 내 욕심이 더 앞서기도 한다. 하지만 욕심이 너무 앞서 경거망동하다가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걸 체감한 터라 내 개인 신념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 당장은 동정표를 살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기다리다보면 예상치 못하게 기회가 생기게 된다.


그런 깨달음 뒤로 사회생활에 임하는 태도가 부쩍 달라졌다. 전에는 한껏 기합이 들어있었는데 지금은 긴장이 풀어지면서 조금 더 여유가 생겼다. 비로소 사건사고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엔 분명 잘하고 싶은 마음에 조급하게 성과에 집착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애써 빛나려고 나서지 않아도 충분히 내 역할에 맞게 빛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더 이상 아등바등 살지 않고 있다.

다만 방향이 좀 아리송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