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느끼기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친절한 말투란 상냥함을 동반해야 하는거라면 난 불친절한 사람이다.
나는 조리있게 내용을 설명하는데는 자신이 있지만 전화 통화할 때에 감정표현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저 상대가 묻는 내용에 착실히 답하는 것으로 내 본분을 다했다고 여긴다. 더 궁금한 게 있으신지 내 설명이 부족하지 않았는지를 굳이 되묻진 않는다. 다른 직원 중엔 일일이 상대의 안부를 살피는 이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전화응대에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으로 족하다 여길 뿐 그 이상의 감정소모는 불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한국 사회에선 전화응대 시에 과도한 상냥함을 요구하는 게 당연한 기준이 된 것 같다. 사실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통화 내용에 감정이 실리는 순간은 제한적인데 특히 예상치 못한 질문이나 답변에 놀랐거나 상대가 반말을 하는 등 불쾌한 언행에 대응할 때에 그렇다. 지금도 간혹 낮게 깔리지 않은 내 목소리를 듣고 지레짐작해 ‘아가씨’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있다. 누구누구 씨 아니면 선생님과 같은 높임 호칭을 제쳐두고 하대하는 듯한 표현을 듣는 순간 표정이 싸악 굳는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엔 정확히 전달할 내용을 말하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그래서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내 말투와 말하는 속도엔 신경을 쓰지만 구태여 감정을 보태진 않는다. 나머지는 내가 신경쓸 문제가 아니라 여긴다.
사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희망이 될 수 있는지 내게 전화하는 누군가가 얼마나
절박한지 그들의 사정을 나는 다 알지 못한다.
한 달에 내가 지원금을 지급하는 사업장 개수가 100개가 훌쩍 넘기 때문이다. 다만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어려운 사정을 어림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또 제출하는 서류를 검토하다보면 직접 보지 않더라도 어려운 사정이 눈에 훤히 보이는 사업장들이 많다. 하지만 직접 대면하는 일이 없다보니 어떤 사정을 품고 있는지 왜 결국 직원을 해고하게 됐는지 왜 누락된 서류가 이렇게 많은 것인지 내 입장에선 온전히 이해가 가진 않는다.
그런 가운데 간혹 내 사정을 먼저 헤아려주는 고마운 사업장들도 있다.
“주무관님, 물론 하도 많아서 저희를 기억 못하시겠지만, 지난 번에 저희가 ~~라고 말씀을 드렸었거든요.”
물론 기억 못하는 세부정보들이 많긴 해도 이 정도로 배려심이 넘치는 사업장이라면 무슨 말을 했는지가 뇌리에 박혀 있다.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좋은 감정이 깃든 기억은 상대적으로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 이런 사업장에서 걸려 온 전화엔 나도 모르게 감정을 싣곤 한다. 알려줄 필요없는 내용까지 추가적으로 설명해주고 최대한 사업장에 유리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내 사정을 조금이나마 살펴준 데에 대한 고마움에 나름대로 보답을 하려는 것이다.
한편 수많은 사업장들 중 꼭 눈에 띄는 건 임의조작한 서류를 제출했다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지원금을 신청한 경우다.
일부 비양심적인 사업장의 처신 때문에 절박한 사정에 놓여 지원금을 신청하는 선량한 기업들까지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다. 앉아서 신청서류를 검토하는 입장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사업장인만큼 부정행위를 걸러 내기 위해 더 엄격하고 깐깐해질 수밖에 없다. 사업장에서 제출한 서류의 진위여부에 대해 철저히 캐묻고 압박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부정수급을 방지하는 일이다. 물론 개인 사정을 살피기보다 법에 근거한 엄격한 해석을 적용하기에 누군가는 억울하다 느끼는 경우도 있었지만 규칙에서 벗어나 예외를 폭넓게 인정하는 순간 제재할 여력도 없이 부정부패가 차고 넘치게 된다.
물론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들어진 상황인지라 이런 부정행위들이 언론에 보도되진 않지만 현업에 있다보면 정말 별의별일이 다 있다. 몇 차례 나섰던 점검에서도 거의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부정하게 지원금을 신청해 지급받은 사실을 적발했다. 사회적 혼란 속에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브로커들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고 거짓으로 먹고 살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점점 더 깐깐한 담당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끔은 내 엄격한 일처리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업장들도 있다. 주된 불만은 뭐 이렇게 제출할 것도 많고 귀찮게 하느냐는 거다.
한 번은 수기로 작성해 제출한 서류를 검토하는데 제출하지 않은 게 있어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누락됐다는 연락을 취했다. 돈을 주는 입장이 급한 건 아니라 가능한 때에 미비된 서류를 제출하시면 된다 통보했다. 그런데 사업장은 돈이 급했던거다. 입금일자가 미뤄지는 게 싫었는지 며칠 후에 온다고 해놓고는 점심 먹으러 자리를 비운 사이 찾아왔다.
그런데 제출한 서류를 보니 내용 작성을 빠뜨리고 날짜와 서명만 되어 있었다. 작성한 내용이 없어 다시 전화를 했더니 처음 보는 서식이라 혼동한것 같다고 하며 내게 대신 작성해주면 안되냐고 읍소를 했다. 그럴거면 처음부터 내가 다 썼지. 그럴 순 없다고 못을 박으니 그런 서식은 왜 생겼냐며 따져물었다. 부정수급 방지를 위해 제출서류가 강화됐다고 설명했더니 상대는 대뜸 화를 냈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편히 있으니깐, 요즘 사업장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합니까?
그거 하나 못해줘요?”
그 말에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지만 애써 분을 삭이고 나 역시 대꾸를 했다. 다른 사업장에도 예외를 둔 일이 없고 대필하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는 말로 맞받아쳤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내게 책임이 있을 것이 뻔한데 사업장의 편을 들어줄 수 없는 노릇이다. 책상 앞의 삶이 안락해서가 아니라 신청서류 제출과 관련한 책임 소재가 사업장에 있다는 걸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왔다갔다 하는게 귀찮다 하더라도 원칙이 우선인 문제엔 별 수 없는 법이다.
대체로 웃음기 하나 없는 내 응대에 혹자는 내가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일부러 감정을 지우고 사무적으로 대하는 데는 공정하게 대우해야한다는 판단과 쓸데없는 감정소모는 업무와 무관한 일이라는 개인적 신념 때문이다. 물론 가끔은 통 못알아듣는 상대방이 답답해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나는 일할 때만큼은 일하는 기계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 내가 상대에게 어떤 존재로 느껴졌는지 알 수는 없으나 악의 없는 행동에 부디 서운함이 쌓이지 않았기를 바란다.
올해에도 약간 시간적 여유가 있는 김에 이번엔 담당하는 사업장들 대상으로 전체메일을 발송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내용과 함께 내년도 개편사항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 담았다. 나름대로는 지난 1년 간의 성원(?)에 보답하려 한 것인데 그 의미가 잘 전달됐는지 모르겠다. 사실 괜한 오지랖이었던것 같아 쑥쓰러운 마음이다. 내가 일 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과는 별개로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을지 알 수 없지만 책무를 다하는 성실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