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형이 생겼다.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해두자. 나는 여자다.
타인의 빛남을 그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고, 긍정의 기운을 온몸으로 내뿜는 형이다.
그의 입에서는 흔치 않은 단어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그윽하다’, ‘최상주의자’, ‘쏘울’, ‘창조성’. 오십 평생 들어본 적 없는 단어들인데도, 이상하게 전혀 오글거리지 않는다. 어쩐지 그 형에게는 언어를 빛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입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무엇에 끌렸냐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 남다름이 있다. 그런 형의 눈에 내가 띄었다는 건, 나도 꽤 독특한 사람이라는 뜻이겠지.
각설하고, 지금부터 그 형이 콕 집어준 조언 하나를 말하려 한다.
애사랑(나의 SNS 아이디를 그렇게 불러주시는데, 안 어울릴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귀에 착 붙는다.)
“애사랑님, ‘~해야 하는데, 못 하고 있어요’라는 말 종종 하는 거 알아요?”
“아… 그러네요. 제가 그 말을 많이 하네요.”
“앞으로는 그 말 쓰지 말아요. 아주 안 좋아. 그 대신 좋은 말 많잖아요.
‘~하고 싶고’, ‘~할 거예요’ 같은 거.”
순간, 아차! 싶었다.
스스로 ‘부정어 금식’을 선언해 놓고도 아무 의식 없이 흘려 쓰던 말들이었다.
“운동해야 하는데.”
“설거지해야 하는데.”
“글을 써야 하는데.”
그 말들 안에는 ‘할 일을 미뤄 둔 불편함’과 ‘못한 나를 은근 꾸짖는 마음’이 함께 숨어 있었다. 그 무게를 실감하지 못한 채 계속 반복하고 있었던 거다.
차가운 말은 마음에 미세한 상처를 남기고 오래도록 아리게 만들 수도 있다. 그날 형에게서 들은 조언은 일상의 자잘한 순간마다 자주 떠오른다. 돌아보니, 온기를 품은 말들이 은근히 내 마음의 결을 다시 고르고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카타리나 볼름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으며 글도 칼보다 예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말과 글로 생각을 드러내지만, 사실은 입 밖으로 나오기 전 생각이 먼저 우리를 통과한다. 부정적이고 거친 생각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마음과 몸이 동시에 무거워진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건강해지고 예뻐지려고 다이어트엔 그렇게 공을 들이면서, 정작 생각과 말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어떤 생각과 말을 하고 있는지 놓친 부분이 많았다.
불필요한 부정어를 줄이고 덜어내면 마음이 드나들 공간이 훨씬 넓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비로소 안팎의 균형이 잡히고, 진짜 건강과 예쁨이 되살아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부정어를 줄이고 긍정의 말과 생각 쪽으로 방향을 조금 돌려보는 일은, 결국 결이 고운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