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달라 너무 궁금해~
언제나 김과 밥은 붙어 산다고~
김밥을 너무 좋아해
자, 말아줘 자, 눌러줘 너에게 붙어있을래
옆구리 터져버린 저 김밥처럼~
나는 김밥 러버다. 김밥을 자주 싼다. 김밥을 싸면서 김밥 노래를 부를 정도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고 싶을 때, 괜히 기분이 조금 나아지고 싶을 때, 냉장고 문을 열면 김밥 재료부터 떠올리게 되는 날이 있다.
김밥은 이상한 음식이다. 밥과 김, 단무지와 시금치, 계란과 햄. 하나하나 떼어 놓고 보면 너무나 평범한 재료들인데, 김 위에 밥을 깔고 재료를 나란히 올려 돌돌 말기만 하면 그럴듯한 한 끼가 된다. 김밥을 싸는 날이면 괜히 사진을 찍게 되고, SNS 피드에 올리고 싶어진다. 요리라고 하긴 소박하고, 대접받는 한 끼라기엔 늘 애매한데도 김밥 사진 아래에는 꼭 하트가 달린다.
왜 이렇게 김밥을 좋아할까. 어릴 적 소풍날이나 운동회 날에만 먹던 기억 때문일 수도 있고, 바쁜 일상 속에서 김밥을 싸 먹는 일이 왠지 ‘잘 살아내고 있다’는 감각을 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고슬고슬하게 밥을 짓고, 재료를 손질하고,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흔적 같은 것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훌륭한 김밥을 사 먹을 수 있지만, 밖에서 김밥을 사는 일은 거의 없다. 김밥을 싸는 일은 클래식을 들으며 힙합 춤을 추는 것처럼 묘하게 재미있어서, 이 일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다.
나는 김밥 재료에도 유난히 진심이다. 늘 같은 김밥이 아니라, 그날의 기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싸는 걸 좋아한다. 김밥 하면 떠오르는 기본 재료로 싸는 날도 있고, 냉장고에서 눈에 띄는 재료를 더해 변주를 주는 날도 있다. 김밥에는 베이스가 있고, 변주는 한 끗이면 충분하다. 과하면 김밥 본연의 맛을 잃는다. 재료가 너무 많아 옆구리가 터지거나 입이 터져라 먹어야 하는 김밥보다, 적당해서 입에 쏙 들어오는 김밥이 훨씬 맛있다.
재료를 준비할 때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당근은 일정한 두께로 썰고, 단무지는 물기를 꼭 짜 꼬들함을 살린다. 계란은 도톰하게, 시금치는 초록빛이 죽지 않게. 밥은 다시마를 넣어 질지도 되지도 않게 짓는다. 김 안에서 함께 말리더라도 각각의 개성은 살아 있어야 한다. 각자 맡은 몫이 또렷해야 김밥답다.
한 줄 안에 재료를 너무 많이 넣고 싶어질 때를 조심해야 한다. 이미 충분한데도 자꾸 조금 더, 조금 더 욕심을 부리다 보면 결국 옆구리가 터진 김밥이 나온다. 며칠 전, 실제로 그런 김밥을 먹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김밥이 어쩌면 나와 닮았다는 생각.
김은 나이고, 그 위에 올라가는 재료들은 내 안에 있는 여러 모습들일지도 모른다. 취향일 수도 있고, 성격의 조각들이거나 내가 가진 재능들일 수도 있다. 각각은 분명 쓸모 있고 멋진데, 가지런하지 않거나 인정하고 알아봐 주지 못해 제 맛을 못 낸다. 이미 충분한 재료가 있는데도 남의 김밥이 부러워 억지로 하나를 더 얹다 보면, 결국 터지고 나서야 알게 된다. 아, 이건 넘쳤구나. 이건 나답지 않았구나 하고.
김밥은 각자의 방식으로 말려야 맛있다. 모두 같은 재료를 쓸 필요도 없고, 유행하는 김밥일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김 안에서 재료들이 제자리를 지키며 함께 있는 것. 따로 있지만 함께여서 결국 하나의 맛이 되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김밥을 싼다. 내가 좋아하고, 가족이 좋아하고, 자주 먹고 싶어서.
김밥 재료들을 김 안에 가지런히 올리듯, 내 안의 재능들도 더는 밀어두지 않고 꺼내 제 맛과 색을 내보려 한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괜한 욕심으로 섣불리 터뜨리지 말고, 가능한 한 잘 말아보고 싶다. 김밥처럼. 소박하지만 쉽게 질리지 않는 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