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화해하는 법
거울 앞에 서는 일이 별로 즐겁지 않다. 얼굴뿐 아니라 몸에는 내가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관상가들이 얼굴로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듯이 손만 봐도 한 사람의 삶이 어렴풋이 읽힌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나만 아는 누추한 구석이 있고, 타인에게 그걸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꾸만 거울로부터 뒷걸음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렌즈 속에 담기는 내 모습이 점점 안 예뻐 보이고 어색해서 사진을 찍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거울 앞에 서면 부쩍 마음이 부정적으로 흐른다. ‘주름이 더 늘었구나’, ‘요즘 더 푸석해졌네’. 흘러내리는 뱃살에 시선이 멈출 때면 한숨부터 새어 나온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데, 나는 왜 이토록 인색하기만 할까.
내가 아는 한 언니는 조금 달랐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 속 자기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말한다. “순지야, 넌 참 예쁘구나.” 그녀는 아주 진지하게 매일 아침 자신과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자기 다운 편안함이 배어 있었다.
사실 그때는 조금 유별난 언니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겼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주 사랑스러운 말로 하는 셀프 마사지였다. 문득 궁금해졌다. 곳곳에 손거울을 두고 수시로 자신을 살피는 사람과 거울을 애써 피하는 사람, 두 사람의 마음과 몸에 남는 기록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얼마 전 영화 〈아이 필 프리티〉를 보았다. 외모에 자신이 없던 주인공이 머리를 다친 뒤, 거울 속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마법’에 걸리는 이야기다. 실제로 바뀐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녀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당당하게 웃고, 사랑에 빠지고, 주변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한다. 태도가 바뀌니 기회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 모습을 보며 이십 대의 나를 떠올렸다.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고 긴 머리를 밝게 탈색했던, 그땐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읽었던 백설공주 속 왕비의 질문은 또 어떤가.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사람들은 이 질문을 허영의 상징이라 말하지만, 이제는 왕비의 결핍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이미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지금의 나’로는 끝내 만족하지 못했던 사람. 타인의 확인을 통해서만 겨우 자신의 가치를 붙들 수 있었던 위태로운 마음이 읽혔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나에게 묻게 된다. 나는 스스로를 ‘괜찮은 나’라고 느끼고 있는가.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세상이 정한 미의 기준을 맞추느라, 혹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정작 나의 얼굴과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오래전 사진들을 들춰보았다. 몇 년 전 사진인데도 지금보다 훨씬 젊고 싱그러운 여자가 나를 보고 웃고 있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 모습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다는 것을. 어색하게 웃는 사진들도 있지만,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둘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지금 이 순간도 바로 그리운 과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거울과 사진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거울을 나를 주눅 들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영화 속 르네처럼 작은 마법을 거는 통로로 삼아보려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왜 없겠는가. 그래도 이제는 거울 앞에서 조금 더 당당하게, 조금 더 오래 나를 응시하고 싶다. 여기까지 함께 동고동락한 소중한 나의 것이니까. 내일 아침엔 거울을 보며 순지 언니처럼 “나 좀 예쁜데?” 하며 인사를 건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