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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웬디 Oct 05. 2024

도덕 조기교육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었지만

조기교육 열풍이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엄마다.


엄마가 교사이고 첫째아이가 글을 빨리 깨치니 집에서 뭘 시키냐고 묻는 분들이 더러 있었다. 집에서 나는 아무 것도 시키지 않는다. 때로는 그럴듯하게 포장된 방임이 아닌가 생각이 될 때도 있다. 워킹맘으로서 미안할 때도 많다. 세상 모든 워킹맘이 그러겠지만, 씩씩하게 내 일에 매진하다가도 미안함에 한 번씩 무너져내릴 때가 있다.


집에서 아이는 참 여러가지 일을 한다. 그림도 그렸다가 책도 읽었다가 글씨도 그렸다가(그리는 시기를 지나 드디어 쓰게 된 것이다) 인형들 데리고 어린이집 놀이도 했다가 동생 눕혀놓고 병원 놀이도 했다가 책으로 바닥을 뒤덮기도 했다가 자기 나름의 책을 만들기도 했다가 자기 눈에 제일 예쁜 옷 골라입고 발레리나 놀이도 했다가 유튜브 방송을 따라 하기도 했다가 방문 앞에 메뉴와 카페 이름을을 붙여놓고 카페 놀이도 했다가 소스통 들고가서 미용실 놀이도 했다가(입구가 뾰족한 소스통은 파마할 때 사용하는 파마약으로 활용된다) 온 이불을 다 깔고 집놀이도 했다가 빨래바구니에 온갖 것들을 담아 이사놀이도 했다가 도무지 할 일이 없을 때는 주방으로 와서 멸치 손질을 해주기도 하고 계란을 깨서 풀어주기도 한다. 그 많은 일들을 다 하느라 늘 바쁘다. 아, 어떤 날은 주방에서 못하는 요리라도 좀 할라치면 뒤집개도 없고 국자도 없고 냄비도 없다. 아이들 방에서 발굴해낸다. 요리 놀이의 결과다.


그래도 아직은, 누가 시키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로서 내가 하는 일은 집이 어지럽혀지고 난장판이 되어도 그 꼴을 봐주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다. 정돈된 집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내가 이 모든 상황을 견디는 건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우리 집은 하루 딱 한번 자기 전에만 정리하려고 노력한다.


어느 날부터 첫째가 이층집에 살고 싶다고 했다. 집은 돈을 많이 모아야 살 수 있는 거라서 이층집에 가기는 힘들다고 다소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혼자 며칠 생각하더니 그냥 일층이어도 된다고 마당이 있는 집에 가자고 했다.


사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는 오래된 작은 주택 매매를 고려해보기도 했다. 파트로 옮길 비용 정도에 가능한 집들이 있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가격을 맞추자니 생활권에서 너무 멀어졌다. 주변에서도 만류했다. 하지만, 아파트 층간소음 때문에 이웃끼리 갈등을 겪는 이야길 들으면 아이들이 크면서 혹 그런 일이 생기게 될까 걱정이 되었다. 갈등 회피 정도를 수치화한다면 거의 100프로일 내게 그것도 보통 일은 아닐 것 같아서 고민이 되었다. 매일 같이 뛰지 마라 뛰지 마라 하는 것도 서로 힘든 일일 것 같았다.


언젠가 한참 우리 집을 지어볼까 남편과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하던 시기에 산책 삼아 낮은 산에 올라보려고 어느 시골마을을 지날 때였다. 정원이 잘 가꾸어진 아담하고 예쁜 집이 있었다. 집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께서 정원 일을 하고 계셨다.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이 집 참 예쁘다 하고 지나쳐 올라갔는데 산에 갔다 내려올 때까지 정원일을 하고 계시는 아저씨. 세상에. 남편과 나는 서로 마주 보았다. 남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오, 난 안 되겠다 했다. 장난 같았지만 나는 그게 그의 진심임을 알았다.


그 후로 아파트 1층도 찾아다녔지만 인연이 닿는 곳은 없었고, 지금의 집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는 소리를 달고 산다. 어느 날은 마당 있는 집에서 마음껏 뛰게 해주지 못한 처지가 약간 서글프고 미안할 때도 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이거야 말로 조기교육이다. 도덕 조기교육.


나는 교사로서 도덕 수업이 제일 어렵다. 한편으로는 도덕이 수업 시간을 할애해 가르칠 만한 것인가의 의문도 있다. 도덕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일 중요하므로. 일상이 도덕 수업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층간소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아이를 지도하는 건 도덕 조기교육이 맞다.


-지난 번에 윗층에서 쿵쿵쿵 소리나서 어땠어?

-깜짝 놀랐어요. / 시끄러웠어요.

-그랬지? 우리가 재밌게 놀려고 쿵쿵쿵 다니면 아랫집 사람들은 어떨까?

-시끄러워요.

-맞아. 그러니까 우리 어떻게 다녀야 하지?

-사뿐사뿐 걸어요.

-맞아. 같이 그렇게 걸어보자. 나비처럼.


얼핏 명료한 듯한 이 대화는 슬프게도 새드엔딩이다. 아이들은 또 뛸 것이기 때문에. 그럼 다시 아이들 앉혀놓고 데자뷰처럼 또 이야기한다. 슬프지만, 반복도 교육의 일부니까.


아직 자기 중심성이 강한 이 나이의 아이에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상황이 그러해서 아이에게 뛰지 말라고 이야기해야 할 상황에 섰을 때 내가, 또 누군가가 부모로서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다른 조기교육보다 도덕 조기교육이 더 가치있으니까.


2020.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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