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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Oct 03. 2020

나에겐 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내 일,  내 시간.

올 3월, 나는 복직을 했고 워킹맘이 되었다.


사상초유의 전염병 사태가 퍼지고 학교는 긴장 상태가 지속되었다. 계속 바뀌는 교육과정, 그래서 계속된 회의. 언제 또 바뀔지 모르지만 준비는 되어야 했기에 모임이 잦았다. 초반엔 길어지는 회의, 잦은 회의가 힘들지 않았지만 언제든 엎어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피로감은 몰려왔다.


원격 수업이 결정되고는 어떤 도구로 수업 영상을 만들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무슨 프로그램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공부하고 결정하느라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방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무작정 들이대느라 버린 영상이 몇 개인지.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에 기왕이면 배움의 기쁨을 느끼며 하려 노력했다. 

사실 온라인 독서모임을 하느라 줌을 이미 활용한 경험도 있었고, 망고 보드나 미리 캔버스를 활용해본 경험도 있어 이외의 편집 프로그램 다루는 법 등을 익히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유튜브를 시작해볼까 고민도 하고 있던 터라 내게 영상 제작이 아주 머나먼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뭐든 시행착오는 필요했다. 10분짜리 영상을 만드는데 5시간은 족히 걸렸다. 기왕 하는 거 좀 더 퀄리티 높이자는 욕심은 시간에 쫓기게 만들었다. 몇 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았지만 나중에 시간에 쫓겨 만든 영상은 그런 티가 났다. 그냥 넘어가도 될 텐데. 찝찝한 마음에 버리고 다시 만들기도 했다.  그만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칼퇴하는 날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늦은 퇴근은 나를 더 피로하게 만들었다.


피로감을 가득 안고 집으로 들어가면 이제 막 걷느라 바쁜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너무 바빠 아이 생각도 안 난다던데 나는 오전부터 보고 싶어 혼이 났었다. 그래서 아이 곁에 있으려고 노력했다. 누워(뻗어) 있더라도 아이 곁이었다. 아이는 누워있는 내 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치댔다. 치대는 아이를 꼭 껴안아 비비대며 사랑을 속삭였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하루는 금세 지나가 버렸다.


무언갈 하고 싶어도 피로감은 매일 더해져만 갔다. 정말 풀리지는 않고 더해졌다. 가끔은 퇴근 후 집에서마저 완성하지 못해 영상을 만들어야 했고 주말에도 종종 그랬다. 아이 우는 소리가 영상에 들어가곤 해서 재촬영도 더러 했다. 그러니 피로가 해소되기는커녕 우는 소리 절로 나오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더군다나 학교 내의 분위기는 평화롭지 않았다. 금요일만 되면 뭐가 또 바뀌려나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각자의 자율성이 존중되었던 모든 수업도 논의를 거쳐야 했기에 날카로워졌다. 각자가 원하는 방향이 일치되지 않아 생기는 불편한 기류는 매일 이어졌고 설상가상으로 난 발등 골절이라는 부상까지 입게 되어 상황은 더욱 좋지  않게 흘러갔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헤쳐나가고 싶었다. 이마저도 배움의 기회려니 생각하고 싶었다. 주문을 걸듯 긍정의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었지만 스트레스 상황은 사라지지 않았다. 감정적인 소모와 체력 저하는 새벽 기상을 꿈 같이 느껴지게 만들었다. 글자 한 자 읽는 것이 사치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하자 스트레스는 더 배가 되었다. 나는 조용히 나의 공간에서 책 읽을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사람인데. 기껏 시간을 마련해도 집중이 되질 않았다. 주의력이 결핍된 사람처럼 이거 저거 찝쩍대다 시간을 다 보내는 날이 늘어갔다. 차라리 잠이나 자는 편이 겠는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꾸준히 무언가를 했다. 잠시 멈춰 선 적은 있었지만 주저앉지는 않았다.

하루 중 최소 30분은 읽고, 쓰는 시간을 가졌다(몰입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무기력의 구렁텅이에 빠질 것 같았다. 내겐 끈을 놓지 않을 꾸준함이 필요했다. 종종 그것을 놓쳤을 때 오는 후폭풍(자괴감, 허무 등등)을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힘들다고, 지친다고, 마냥 쉬기만 한다고 그게 진정한 휴식이 되지 못한다는 걸. 어쩌겠는가. 난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해야 할 일, 오롯이 나를 위한 해야 할 일은 놓지 않았다. 다만 해야 할 일을 좀 덜어내어 몇 가지 일에 집중하자 생각했다.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가 짧은 시간 내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임을 알아차린 까닭이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덜어내어 일찍 일어나면 출근 전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면 자기 전에 했다. 어쨌든 무언가를 해냈다는 사실은 내게 소소한 기쁨을 주었다. 그 덕에 온라인 수업과 등교 수업이 조금은 익숙해진 현재, 그 시간들을 지내온 내게 감사할 수 있다.


나를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건 엄마가 되기 전이나 엄마가 되고 난 후나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엄마가 되면 내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는, 희생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보고 들었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증명하고 있다. 내가 아이와 보내는 시간에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임을 안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결심했던 게 하나 있었다. 나는 아이로부터 잘 독립해서 살겠다는 것. 그러기 위해 내 시간을 희생하며 살지 않겠다는 것. 그러려면 나만을 위한 일을 할 시간을 만들어내야 했다.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 나는 그 일만은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덕에 얼마 전엔 크나큰 결과물인 책 출간의 꿈을 이루어냈다. 작년, 아이 5개월이 되었을 때부터 틈틈이 써 내려갔던 글들의 결과이다.


엄마가 되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잘 알게 되었다. 엄마가 되어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 잘 알게 되었다. 엄마가 되어 '나로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읽고, 생각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도 나는 이렇게 살 것이다. 앞으로의 나와 내 아이의 삶이 기대되는 것도 이 덕분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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