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샘 Aug 19. 2020

엄마와 다투고 말았다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이해해

엄마와 다퉜다. 아마 다퉜다는 말은 얌전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집이 떠나가라 서로에게 소리를 질러댔으니.


아이가 태어나고 서로 한동안은 조심스레 대했는데... 평상시와 같이 엄마  "누구네 딸이 말이야~"를 듣고 있던 와중에 말 속 어느 한 지점에서 내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엄마는 별 의미를 담지 않고 이야기했는지도 모른다. 그 속에 들어가 보질 못하니 내가 정확히 알 턱이 있겠는가. 하지만 내 속마음확실히 알아챌 수 있었다. 그 불편한 감정의 기원까지.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종종, 아니 그보다는 자주 비교를 당하며 살았다. 내가 잘 아는 가까운 사람부터 모르는 아주 먼 사람까지. 비교할 대상이 얼마나 많던지. 가끔은 얼굴도 모르는 누구네 집 자식들과도 비교당해야 했다.

학창 시절엔 주로 학업에 관한 주제로 비교를 당했다. 매번 반에서 3등만 하던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주눅 들곤 했다. 한 번씩 참을 수가 없을 땐 다른 집 부모님 혹은 가정을 언급하며 대항했지만 욕만 잔뜩 들어먹고 눈물과 상처로 끝이  뿐이었.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비교는 계속되었고, 결혼해서까지 나와 타인을 비교하는 이야길 들어야만 했다. 성인이 된 후로는 주로 부모에게 잘하는(용돈을 얼마 주고, 여행을 어디 보내줬는지 와 같은) 사람들이 나와 비교대상이 되었다.


터뜨리고 싶은 불만을 꾸역꾸역 참으며 지냈는데...

안에선 계속 죄책감과 엄마에 대한 애잔함, 나의 무능에 대한 자책이 쌓여 몸집을 키우고 있었나 보다.

나도 그렇게 터질 줄은 몰랐다.


"그런 얘기 좀 그만해."

날카롭게 쏘아붙인 내 말에 엄마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보였다.

"그만 듣고 싶다고. 왜 자꾸 그런 말을 해?"

이런 나의 말에 우리의 대화는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얘기 들으면 얼마나 괴로운 줄 알아? 죄책감이 든다고. 그만 좀 하라고!"

나는 소리를 지르며 기어이 울부짖고 말았다.

엄마는 난데없는 나의 반응에 당황해하며 머뭇거렸지만 이내 같이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부모와 자식 사이라도 지킬 건 지켜야 되는 거야. 왜 집에 올 때 빈손으로 와? 뭐라도 사 가지고 오는 게 예의야! 싸가지 없이."


분명 엄마는 이렇게까지 얘기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속으로는 빈손으로 오는 것이 못내 섭섭했지만 이걸 입 밖으로 내뱉을 생각 없었을 것이다. 런 식의 대화를 오랜 기간 경험해본 후에 깨닫게 된 것이다. 엄마도 나도 벽에 몰린 것처럼 느껴질 때면 의도하지 않게, 말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던 것까지 다 털어버린다는 것이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뾰족하게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날카롭게, 더는 나를 상처 입히는 말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건강하게 대화하는 법을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는 주 살벌하게, 매우 일방적으로 상대를 비난하는 말을 쏟아부었다. 내 아이, 손녀가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로.


엄마는 나에게 이런 말을 종종 하곤 했다.

"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야."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차라리 엄마가 그렇게 생각해주는 게 낫겠다 생각했다. 내게 어떤 다정함이나 따뜻함을 기대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마와 정 교류를 하고 싶지 않았다. 더는 상처 입고 싶지 않은, 일종의 내 방어기제 중 하나였다.


엄마는 나를 두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이라고 했지만  는 감정적으로 굉장히 취약한 사람이다. 매번 부정적인 감정에 휘말리는 내가 싫어 울지 않으려 애쓰고 무덤덤해지려 노력했을 뿐이다. 그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엄마는 나를 두고 매정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는 엄마를 오해했고, 엄마는 나를 오해했다.

 

그렇게 서로 연약한 속살을 할퀴어대며 소리 높여 비난하다 내가 자리를 피해버렸다. 뒤늦게야 내 아이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있다가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동생에게 잠시 아이를 맡겨두고 다른 방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엄마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피해있는 나를 찾아와 독한 말을 더 퍼부었고, 나는 진주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인천으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엄마와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남편은 내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고 심상치 않다 생각했는지 별다른 질문도 하지 않고 4시간 거리의 인천까지 한달음에 와주었다. 그 사이 엄마는 바깥으로 나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밤 11시에 아이를 데리고 진주로 내려갔다.  


그 일이 있은 후 3개월은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다. 더는 감정적인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주 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락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내 일에 더 집중했다.


세 달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연락을 다시 하기 시작했고, 얼굴도 보았다. 엄마가 동생과 진주에 내려왔다. 고속버스에서 내리는 엄마의 얼굴이 이전보다 더 수척해 보였다. 한층 더 연약해진 모습이었다.


엄마는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반찬과 함께 "잘 지냈냐?" 말을 건넸고, 나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응, 잘 지냈어."라고 답했다.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마른침을 삼켰다.


엄마는 삼일 간 진주에 머물며 이전보다 더 내 아이, 자신의 손녀에게 잘 대해주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다시는 이전과 같은 일은 없을 거라 다짐했다. 엄마와의 관계를 끊고 싶지 않을뿐더러 엄마에게 할머니 자리를 빼앗아 가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서로 조심하며 지내고 있다. 적당히 멀리하고, 적당히 가까이 지내며. 엄마는 내 건강을 염려하고, 나는 엄마의 건강을 염려하며 지낸다.

그리고 엄마는 남의 집 자식들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 대신 우리 이야기, 내 아이 이야기로 대화를 채운다.

 

지난주, 일주일 간 아이와 친정집에서 지냈다. 엄마와 나는 목소리를 높이고 인상을 찡그리는 대신 함께 웃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보냈다.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우리만의 이야기에 집중하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데. 서로 상처 입히며 보낸 시간이 아쉬웠다.


앞으로 엄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음을 안다. 점점 약해지는 엄마를 보면 알 수 있다. 엄마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이번에도 입이 떨어지지 않아 전해주지 못하고 돌아왔다. 입 안에만 맴돌던 이 말, 늦기 전에 꼭 들려주고 싶다.

 

"엄마,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그래서 엄마와 나의 지난 시간들을 이해해."라고.


이전 11화 내가 갖고 싶었던 건 따스한 집, 행복한 가족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