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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Apr 09. 2020

내가 갖고 싶었던 건 따스한 집, 행복한 가족이었다

나의 가족, 나의 보물들

따뜻해 보이는 집, 밖에서 살짝 들여다보는 것뿐인데도 따스하게 느껴지는 집. 어찌나 크게 웃는하하호호 집 밖까지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부러웠다. 

전날 가족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하는 친구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뿍 담긴 말을 하는 친구들.

그 틈에서 나는 침묵하는 것으로 부러움을 감추려 했다.


언제든 터질 준비가 되어있는 활화산 같았던 우리 집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불안감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예고라도 하고 찾아오면 좋을 텐데. 언제 어디에서 터질지 모르는 분노가 두려웠던 난 집에 들어가기가 어 친구들과 밖으로 나돌아 다녔다.


친구가 그렇게 좋으면 친구랑 살아.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나는 '그럴 용기 있으면 그러고 싶다. 진짜!'라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하고 입 꾹 다물고 집 밖으로 도망치듯 나오곤 했다. 정말 능력만 되면 이 집구석에서 빠져나와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이런 집안에서 태어났을까.

왜 이 사람들이 내 부모일까.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리 고통을 받는 걸까.


화목한 가정에 태어나지 못한 나에 대한 연민, 분노들은 차곡차곡 안에 쌓여갔지만 해소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저 소심하게 툴툴대는 것으로 넘겨야 했다. 어차피 공감받지 못할 거라는 마음 반, 가뜩이나 불행한 엄마에게 짐이 될 수 없다는 마음 반. 그러고 보면 참 나는 힘들어도 나부터 챙길 줄을 몰랐다. 그래서인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솔직한 생각들은 늘 내 머릿속을 어지러이 휘저어 놓았다. 그리고 감정에 무뎌지기 위해 애쓰느라 내 가슴은 다 헐어버렸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 일들은 일어났던 것 같다. 종종 나에게 전해주는 날카로운 원망 섞인 말들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 불행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음을 예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너희만 없었어도 너네 아빠랑 안 살았어.


수도 없이 들었던 이 말. 고부갈등으로 고통받던 엄마는 방관하는 듯한 아빠에게 종종 불만을 터뜨렸고, 이로써 시작된 부부싸움은 늘 몸싸움까지 벌어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나는 우는 엄마를 보며 었고, 그러면서도 우는 엄마를 달래주러 다가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했던 저 말 어린아이 가슴에 얼마나 콕 박혔던지. 엄마를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을 랫동안 느껴야만 했다.


두려워 온몸을 벌벌 떨면서도 나보다 몇 배는 더 힘이 센 어른 둘을 떼어놓으려 애쓰던 나. 엄마, 아빠는 그런 내가 보이지 않았던 걸까. 나는 분노, 안쓰러움, 원망, 연민 등의 복잡한 감정들을 혼자 끌어안아야만 했다.  분명 어린아이였는데. 그런 걸 보지 않아도 되는 나이였는데. 둘이 얼른 이혼했으면 싶다가도 정말 이혼하면 어쩌나 불안해하기도 하면서, 이러다 둘 중 한 사람이 죽는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자란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 아빠의 부부싸움을 볼 때마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언젠가 한 번은 그 고통이 너무 끔찍해 목이 터져라 욕을 질러버린 적 있었다. 내뱉은 나도 놀라고, 들은 엄마도 놀라 서로 눈이 마주쳤던 그 순간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당시 난 내가 미쳐버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가정에서 자라다 보니 결혼에 대한 그 어떤 로망 따윈 가진 적이 없었다.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이렇게 자란 내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리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랄 아이는 또 얼마나 불쌍한가. 이런 불행은 내 선에서 끝내야 한다고 믿다.


그랬던 내가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가끔은 이게 현실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엄마는커녕 누군가의 아내가 되리라는 생각 하지않았는데. 그런 내가 엄마가 되었다니.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인연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게 나에게까지 적용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인연, 행복한 결혼 생활은 나에게 놀라운 일이자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나와 남편은 꼭 한 몸인 것처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우린 연애할 때부터 많이 싸우게 된다던 결혼 준비 시기, 신혼시절, 이 모든 시간들을 거치면서도 크게 다툴 일이 없었다. 소소하게 나 혼자 툴툴대면 오빠는 달래주는 그런 일 말고는.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니 우리 사이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긴장, 피로감에서 오는 서운함들이 쌓여 상대를 탓하는 상황도 생겼다. 아이 앞에서 큰소리 내며 싸운 적은 없었지만 불편한 기류는 감출 수가 없었다.


갈등이 생기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던 나는 화가 나거나 서운한 일이 생기면 말로 표현하기보다 꽁꽁 감추려 했다. 말로 표출하는 상황 자체가 불편하고 어려웠기 때문에 최대한 입을 꾹 다물곤 했다. 이게 결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순 없다는 걸 알았지만 오래된 습관을 뜯어고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변해야 했다. 갈등 상황을 제대로 마주하고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어야 했다. 내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행복한 가정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소통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더는 꾹꾹 눌러 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대신 차분히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문제 상황에서 더 이상 도망가지 않는 나의 모습을 알아채는 순간, 나 참 많이도 변했구나 싶어 기뻤다. 어떠한 갈등도 건강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해보는 일이 이렇게나 중요한데. 그런 경험을 가진 적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이런 나의 변화와 성장에 더 기뻐한 것은 남편이었다. 내 손을 잡아주고 등도 두드려주며 내가 낸 용기에 화답해주었다. 그 덕분에 그렇게 막연히 두려워하던, 나도 결국 엄마와 아빠처럼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은 많이 사라졌다. 유전처럼 반드시 부모의 삶과 자식인 나의 삶이 같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거란 믿음, 오히려 그 일들을 겪었기에 더욱 멋지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나의 아이는 커서 집을 따뜻한 공간으로 떠올리게 될까?

가족을 떠올리면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될까?


나는 그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이를 위해 나는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성장할 수밖에 없다. 나의 성장 동기에는 나와 내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 때문이다.

나에게 와준 소중한 가족, 내 아이. 오늘도 난 그들을 생각하며 행복의 에너지를 얻는다. 사랑의 힘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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