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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Apr 05. 2020

가장 어려운 공부는 부모공부더라

그럼에도 계속해나갈 거라는 믿음

공부란 시험 보기 위해 벼락 치듯 하는 것인 줄만 알았건만. 성인이 되고 나니 세상 공부, 사람 공부가 진짜 공부임을 깨달았다. 학창 시절 달달 외우면 성과가 쉬이 나던 공부와 달리 어른이 되어하는 공부는 너무도 어려웠는데 특히 사람 공부가 그러했다. 그런데 그것도 아이를 가지고 나니 순위가 금세 뒤바뀌어 버렸다.


부모공부가 세상에서 가장 어렵더라.


온갖 육아서를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부모교육 강의도 들어보고, 맘카페에서 정보들을 수집도 했건만 직접 겪어보니 그동안 한 공부가 무색하리만치 적용이 되지 않았다. 바쁜 와중에 정신을 차리면 문득 이 모든 상황이 두려워질 정도였다. 의지할 데가 없다는 생각이 더욱 두려움을 키웠다.


내가 아이를 낳았나?

저 작고 연약한 아이가 내 아이란 말이야?


놀라울 정도로 현실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내가 아이를 하루 종일 돌보고 있었다. 낳아보면 다 하게 된다는 누군가가 툭 내뱉듯 던진 말이 그저 가벼운 말 한마디가 아니라 엄청난 무게를 지닌 말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책임감'


나 자신을 책임지는 것보다 나 아닌 다른 이를 책임진다는 무게는 두려울 정도로 무거운 것이었다.


혹시나 떨어뜨릴까 봐 온몸에 힘 꽉 주고 아이를 안으면서도 순간 아이가 불편한 건 아닐까 걱정하고,

다른 아이에 비해 똥을 적게 싸는 것 같아 걱정하고,

등,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도 충분히 젖을 먹지 못할까 싶어 꾹 참던 나.

비몽사몽 30분 간격으로 잠에서 깨는 바람에 정신없어도 작은 "엥"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두 달 정도였나.

머리끈도 풀지 못하고, 안경도 벗지 못한 채 무한 대기 상태로 쪽잠을 자던 게.


탯줄을 끊고 나와도 여전히 한 몸인 것처럼 신경 쓰게 되는 것이 엄마의 책임감이라는 거구나. 낳기 전엔 감히 알 수 없었던 그 무게감이 처음엔 마냥 당혹스럽기만 했다. 동시에 아이를 낳기 전에 했던 그 많은 공부들이 무색하리만치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아이를 잘 키워보겠느라고 결심하며 내가 가장 먼저 신경 쓴 건 아이를 돌보는 방법이랄지, 아이의 개월 수에 맞게 제공해줘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관해 알아보는 것이 아니었다. 내 경우엔 '나'였다. 내가 제대로 설 수 없을 만큼 휘청거린다면 아이를 안아줄 수가 없기에 나의 성장이 나에겐 가장 큰 화두였다. 특히, 부모와의 관계로부터 느끼는 온갖 불행한 감정들을 정리하고 '성숙한 나'가 되고 싶었다. 아이가 든든하게 여길 대상으로, 아이가 힘들 때마다 언제든 기대고 싶을 대상으로 성장하는 것. 내 모든 관심사는 그것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임신 기간 내내 나는 나의 케케묵은 감정을 털어버리고 온갖 용기를 갖도록 애쓰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자신감을 가질 용기, 나를 사랑할 용기, 용서할 용기, 나를 믿을 용기, 타인을 믿을 용기, 두려움 속에서 벗어날 용기.


이 모든 용기를 얻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지만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며 어느 정도 자신감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쌓아두었던 자신감은 갓난아이를 돌보는 일이 이토록 '나'라는 주체를 잃어버리기 쉬운 것임을, 이 중요한 깨달음을 맞닥뜨린 후부터 자주 무너져 내렸다. 답답함과 한 번씩 울컥 올라오는 화, 덧붙여 부정적인 감정을 감내하며 떠올린 엄마의 얼굴은 도무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내고야 말았다.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다가도 눈물이 났고, 엄마에겐 의지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서러웠다. 부정적인  감정을 아이에게 내비치는 게 두렵고 죄책감이 들어 눈물이 났고, 그런 내가 안쓰러워 서글펐다.


다른 공부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성과가 보이던데 이 부모공부는 너무도 범위가 넓고, 복잡해 성과는커녕 방향과 기준을 잡기도 어려웠다. 이를 깨닫고 나니 나는 내 부모에게 얼마나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이를 생각해내었다고 해서 모든 게 치유된 건 아니었다. 하지 변화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희망은 보였다.


여하튼 그렇게 우왕좌왕하며 보낸 시간이 일 년이 넘었다. 이제는 돌이 막 지난 아이를 보며 눈물 흘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가장 약해진 순간에 더 많이 성장한다던 누군가의 말처럼 그 우왕좌왕하던 시간 속에서도 조금은 자랐나 보다.


이제 막 발걸음을 떼며 독립을 시작한 내 아이와 나 사이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일들이 생길까.

그리고 나는 얼마나 무너졌다 다시 일어나게 될까.


모든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다행히도 나에겐 그 와중에도 결코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있다. 그건 결국 '나는 앞으로 나아가게 되리라는 것'이라는 기대. 계속 공부할 것이고 단련할 것이며 애쓸 것이라는 믿음이다. 가장 어려운 부모공부를 하기 위해 매번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어야 하지만 괜찮다. 결코 놓아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은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너무 욕심내지 않아도 된다.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과는 좀 다르다고 움츠러들지 않아도 된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를 기대할 수 있으니, 오늘의 나보다 더 나아진 내일의 나, 엄마로서의 나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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