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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Oct 06. 2020

나는 고집쟁이가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며 살 거야

"어차피 할 거잖아. 고집쟁이."라는 남편의 말에 배시시 웃고 말았다.


남편은 내가 하고 싶다는 말에 반대 한 번을 하지 않았다. 몸 좀 생각해라는 걱정의 말은 했지만.

임신 7개월, 배가 뚱뚱한 임산부의 몸으로 부산으로, 창원으로 강의 들으러 간다고 할 때도. 휴직을 좀 더 일찍 하면 어떻겠냐는, 매일 왕복 2시간 40분 출퇴근하는 나를 두고 걱정하는 말에 마무리 짓고 싶어,라고 딱 잘랐을 때도. 아이가 막 5개월 된 시점에 책을 써보겠다 했을 때도, 아기띠 하며 여기저기 모임에 나간다 했을 때도, 이미 하고 있는 독서모임도 많건만 또 다른 독서모임이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남편은 단 한 번도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몸 생각하며 해,라고만 했을 뿐.


그렇게 반대 한번 하지 않은 이유를 나중에야 들을 수 있었다. 어차피 할 거니까. 내 고집을 누가 말리겠냐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고집쟁이인가...?


곰곰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스스로도 인정하는 고집쟁이였다.


그 고집 탓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옆 사람에게 상처 주면 어쩌지 걱정도 지만 결국엔 시도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반드시 해야만 했기에. 그 덕에 꿈만 꾸었던 교사가 되었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고, 책도 낼 수 있었으니 그 고집은 내게 특별한 삶을 주는 것이기도 했다. 더더욱 고집을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용기를 내지만, 하고 싶은 걸 하며 살 수 있으리라 생각조차 못하고 살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 정해준 삶에 묻혀 사느라 내가 주체적인 사람임을 모르고 살았던 그때. 타인이 정해준 삶이 매번 마음에 들진 않았기에 불평불만은 가득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크게 드러내지도 않고 순응하며 살았다.


한편으론 그런 삶을 편히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탓보다 남 탓하며 정신승리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남 탓만 하며, 생각하지 않을 편안함을 누리다 모든 관계가 단절되었을 때, 그때서야 이대로 살아선 안된다는 걸 생각해냈다. 내 삶은 내가 꾸려나가야 한다는 걸 그제야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로는 하고 싶은 건 해보려 노력하며 살아왔다. 수동적으로만 살던 내가 능동적이 되기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지만 아주 조금씩, 정말 아주 조금씩 용기를 내었다.


정말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면 그런 의심은 빨리 머릿속에서 지우려 다. 내게 결코 도움되지 않을 생각이니까. 지워도 금세 다시 생겨나는 의심에 허탈해지기도 지만 그저 지워낸다. 의심이 고개를 다시 드는 주기가 길어지기를 바라며. 덕분에 의심이 들어도 가끔 막무가내로 일을 추진하게도 되었고, 어떤 성과를 내기도 했으니까. 정말 이렇게 해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많이 엄격한 편이라 칭찬도 큰 맘먹고 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얼마 전엔 소리 내어 말해주었다.


진짜 대단하다. 너무 잘했어, 윤희야.


아마 앞으로도 고집쟁이로 살겠지 싶다. 큰 맘먹고 한 칭찬이었지만 울컥 눈물이 터질 만큼 기뻤으니까.

나는 누군가에게 증명해 보이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해할 수 있기를 언제나 바란다. 그게 나 자신에게로 가는 길의 도착점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 언저리에 서서 미소 지을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이겨내야 할 유혹도, 거절해야 할 용기도, 나다움을 선택할 때 포기해야 할 기회비용도 한 번쯤은 감수해가며 나다워지는 길에서 이탈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싶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내 아이도 이렇게 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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