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단순히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시간 움켜쥐기.
아이를 낳고 나니 시간을 움켜쥐고 싶었다.
생각보다 아이는 빠르게 자랐다. 어제 새로운 행동을 하더니 오늘은 새로운 언어를 내뱉었다.
뒤로 드러누워 칭얼대기, 내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리기, 이쁜 짓 하기, 윙크하기, 검지 손가락을 위로 치켜들며 "꺄아!" 소리 내기, 여기저기 손가락질 하기, 내 손가락 붙들고 끌고 가기, 흩어져있던 고양이 캔 사료 종이가방에 모아 와서 탑 쌓기 하기, 엄마 아빠 하기, 안녕하기, 이봄이(아이 이름)어하기.
아니, 대체 이건 어디에서 배운 거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아이는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엔 사진으로 남기려고 애를 썼다. 재빨리 스마트폰을 들이댔는데 그럴 때면 꼭 행동과 말을 멈추어 자주 놓치고 말았다. 한 번만 더 보여달라고 사정해도 소용없었다. 앨범에 남은 건 없고, 두 눈으로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결국 아이의 새로움을 그저 놓치는 꼴이 되었다. 그래서 점점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는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의 모습을 두 눈으로 빠짐없이 보고 반응해주는 걸로 만족하기로 하고, 혹 아이가 오래 하거나 반복하면 이미지를 남겨두기로 했다. 그래도 그 이미지들이 내게 기쁨과 뭉클함을 주니 포기하긴 아쉬웠다.
아이가 자랄수록 더 많은 기억, 추억을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들이 내 시간, 그리고 아이의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관망하다 "쟤가 언제 저렇게 컸지?"하고 놀라기는 싫었다. 그래서 하루의 노곤함 속에서도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포기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손을 잡기는커녕 내가 잡으면 뿌리치기 바빴던 아이다. 그런 아이가 이젠 내게 매달리고 먼저 손을 잡아준다. 하루하루 놀랍고 즐거운 일 투성이다. 그러고 보니 봄이가 태어난 후부터 집안에 웃음소리가 더 깊어졌다. 한번 터진 웃음은 길게 이어지곤 한다. 이렇게 속 시원하게 매일 웃어본 적이 있던가.
내 시간은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아니 아이의 존재를 확인한 후부터 마냥 흐르기만 하지 않았다. 특별한 기억들로 붙잡혀 있기 때문일 터다.
나는 현재의 시간이 내 과거와 미래를 만든다는 사실을 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 어느 위치에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과거와 현재, 미래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현재의 선택이 중요함을 안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떤 감정으로 대할지, 행복할 것인지. 내 시간, 세상을 특별하게 만들 것인지, 그저 흘러가게 두고 볼 것인지.
더 많은 기억을 붙잡을수록 내 삶, 세상은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안 뒤로 나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붙잡을 시간들을 가졌다. 너그러워졌다. 그럴 때면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존재'함을 생생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고는 시간을 더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특별함으로, 행복함으로. 그래서 지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에 최선을 다해 본다. 이게 바로 현재의 내 삶이고, 과거와 미래가 될 테니까.
노력이 필요함을 알기에 고민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다. 중대하고 확실한 행복을 위해서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시간을 움켜쥐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