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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Oct 13. 2020

엄마, 작가가 되다

글쓰기가 가져다준 놀라운 삶

책이 출간되었다. 제목부터 비장한 <살기 위해 읽었습니다>, 나의 독서에세이.


출간 소식을 알리고, 지인과 잘 모르는 분들께 축하 메시지를 받으며 정신이 없었다. 이게 실화인가 싶어서. 그러는 동시에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흘러가는 것이 있었으니. 작년, 글 좀 쓰겠다고 고군분투하던 내 모습이었다.


나는 어쩌다 책을 쓰게 되었나.


아이가 4개월쯤 되었을 때, 이제 책을 읽지만 말고 써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며 어안이 벙벙했지만 나의 보물지도에 떠억 하니 붙어 있던 '작가'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떠올라 바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 써보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책을 쓴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직 아이가 통잠을 자지 않아 덩달아 통잠을 잘 수 없었던 난 일정한 시간에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게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 내가 완성한 책은 노트북 앞에서 쓴 것보다 집안 곳곳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쓰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한 꼭지, A4 10포인트로 두 페이지 하고도 반을 채우는데 3일 정도 걸렸다. 그래도 쓰겠다 생각하니 머리에선 의식적으로 글감과 사례를 예민하게 찾고 있었다. 순간순간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치고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바삐 손을 놀려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기와 에버노트에 기록했다. 아이에게 언제 내 손이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정말 신들린 사람처럼 적었다.

아이를 돌보다 또 생각나는 게 있으면 이전 기록에 덧붙이고. 또 덧붙이고. 그렇게 덧붙여진 기록이 꼭지 한 편 만들 수 있겠다 싶을 때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아이 낮잠 잘 때 주로 한 꼭지씩 완성했고, 마음이 급할 땐 아침잠을 이겨내며 아이 기상 전 몰입해서 붙이고 삭제하고 고쳤다.


글엔 내 인생이 깔려 있었다. 그동안의 내 삶. 내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삶부터 내 삶을 살아보겠다고 고군분투하던 삶까지. 글 속엔 내 삶의 흐름이 녹아 있었다. 떠올리기 싫었던 기억부터 너무 선명한 기억부터 흐릿한 기억까지.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 기억마저 뒤적이며 글을 적는데 쉽진 않았다. 남 이야기 하긴 쉬워도 내 이야기 하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그동안 꺼낸다고 꺼내왔는데도 막상 대놓고 꺼내려니 감춰진 내 삶이 많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당혹감, 슬픔, 환희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6개월 간 글에 파묻혀 살았다.


그러는 와중에 하나 깨달은 것은 내 삶에서 버릴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숨기고 싶을 정도로 하찮다 느껴졌던 내 삶이 글이 되자 별 일이 되었다.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아 시간 허비했다 생각이 든 날도 글에선 중요한 날이 되었다. 내가 가장 싫어한 날, 끔찍했던 날, 지루해서 답답했던 날 모두 특별해졌다. 글로 풀어낼 이야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나를 다독여줄 말, 누군가의 공감을 사는 말, 성찰의 메시지로 가득 채워져 오히려 글을 줄여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구나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싶고,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날들이 있기에 하고 싶은 말이 계속 늘어난 까닭이었다.


글을 쓰며 내 삶은 점점 특별해졌다. 아이와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반복된 하루를 살뿐이라는, 허탈한 마음도 글을 쓰는 순간 달라졌다. 아니, 글로 쓰겠다는 생각으로도 족했다. 이야깃거리 하나 더 만들어낸 내가 기특해서 좋았다.


그저 책을 읽다가도, 티비를 보다가도, 누군가 써놓은 블로그 글을 보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샤워하다가도, 잠자리에 누워 잠들려고 하는 찰나에도 부지불식 간에 글이 머릿속에 밀려 들어왔다. 덕분에 난 샤워하러 들어가서도 폰을 놓지 못했다.

쓰고자 마음먹으니 온통 쓸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내가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구나 싶어 놀랐다. 읽는 인간에서 쓰는 인간으로 승화되었다는 기쁨, 매일 무언가를 생산해냈다는 사실은 자기 효능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기 신뢰가 부족하여 삶이 괴로웠던 내게 이는 선물이었다.


글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쓰게 하니 고갈될 일도 없다. 매일, 별 일 없어 보이는 삶도 특별하게 만들어주니 어찌 안 쓸 수가 있을까.


한번 쓰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다. 글을 내보이기 부끄러울 때가 많지만 이 또한 자주 겪다 보니 얼굴도, 마음도 두꺼워진다.


이렇게 나의 오늘도 특별해졌다.

이렇게 내일도 특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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