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으며 얼마나 고개를 끄덕였던지. 밑줄 긋고 메모를 한 페이지에는 귀접기를 하며 읽는데 이 책은 귀접기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통제와 절제, 비우기기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고미운 책이다.
20대를 통째로 날려버렸다는 생각 때문인지 욕심이 과해진 터라 더하기만 열심히 해오던 내게 브레이크가 걸리게 된 것은 아이를 기르며 만나는 선택의 문제들 때문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늘 선택의 연속이었지만 차이라면 지금은 중요한 것들 중 더 중요한 걸 가려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달까.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것들 중 우열을 가려야 하는 고달픔이 생겼달까. 대결구도로 삼고 싶진 않지만 한동안은 '나의 일 VS 육아'의 상황이 지속되었다.
사실 아이 낳기 전에는 아이 키우며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못하는 건 핑계라고.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오만도 그런 오만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선택이 더 어려워진 것은 물론이고 선택하고 개운치 않은 상황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멋진 나로 살고 싶어 내 일에 열중하면서도 그 멋진 나에는 멋진 엄마도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일은 늘어나고 해야 할 일은 늘어났고(워킹맘이 되고 이는 더 심해졌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것이 본성인지라 선택의 어려움을 자주 느끼곤 했다(사실 선택의 고민을 한다는 것도 의지가 필요했다). 무언갈 빼야 한다는 걸 느끼면서도 그럴 시간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나는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이전이라면 미니멀 라이프 관련 책을 읽었겠지만 이번엔 시간관리에 관한 책이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알차게 보내는 법에 대한 책들은 많이 읽었지만 <시간 전쟁>은 그들과는 조금 다른 부류의 책 같았다. 이 책에는 여백을 강조했고, 소중한 일에 시간을 들이는, 음미하는 일에 대해 자주 말해주었다. 딱 지금 내게 필요한 이야기들이었다. 시간관리도 결국 철학과 관련된 일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할지에 앞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봐야 함을 알았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곧 '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것에 가치를 두고 그 일에 충분히 시간을 들일 것인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고민 끝에 나는 몇 가지 물건을 비웠고, 일부 물건들은 자리를 재배치함으로써 중요도를 달리했다. 물건뿐만 아니라 강의, 프로젝트 모임도 하나씩 비웠다. 비움으로 생긴 여백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휴식의 시간, 자연을 즐기는 시간, 천천히 독서하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내 삶에 여백을 만들지 못한 이유로 난 다시 '나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들에 끌려다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순간의 필요로 인한 일들에 휘말리게 되었고 이는 결국 다른 사람의 삶에 편승해가도록 만들었다.
참 신기한 것은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더하면 더할수록 더 더하고 싶어 진다는 것이다. 아니, 무의식적으로 뭘 더 가져야 하는지 찾게 된다. 더해질수록 시간에 쫓기게 되고, 시간과 기억의 깊이는 얕아지고. 바쁘게 살아도 만족이 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일에 최선을 다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괴감을 느끼고, 마음이 허전해져 다른 일을 더 찾게 되고. 빼야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까지 악순환은 계속 된다.
바쁘게 지내는데 시간을 허비한다는 기분이 든다면 잠시 멈춰야 한다. 그리고 내가 지키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반드시 빼야 할 것이 보인다. 그것만 비워도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그러면 비로소 중요한 것들로 채울 수 있다.
요즘 열심히 비우고 있다. 비울 땐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비우면 채우는 행복이 뒤따라옴을 알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오늘 중요한 일들로 하루를 채우고 있다. 참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