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존재로서 인정해주기

나처럼 독립적인 인간이며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

아이를 가지고 줄곧 생각해온 하나는 아이를 타인의, 나의 관점으로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토록 내가 독립적으로 살기를 바랐던 것처럼 아이도 독립적인 존재로 보자는 것. 이를 위해선 아이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하고 나에겐 인내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직업이 교사이다 보니 아이를 낳기도 전에 아이를 키우는 일이 무엇인지 맛보기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시간을 지낼수록 희망보단 절망이 느껴졌다. 나는 참 감정 분리가 안되는구나 싶어서. 한 존재로서 인정해주기보다는 내 관점, 내 감정에 금세 이성까지 물들어 후회할 언행을 쉽게 하곤 했다. 그런 나를 알아차릴수록 괴로웠지만 차차 나아지게 하자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갖고 보니 조금 조급해졌다.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내가 얼마나 감정과 생각에서 자유롭지 않았던지. 내 생각이나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살았다.

"조그만 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울지 마. 그게 뭐 울 일이야!"

언제나 나의 생각과 감정은 어린것이었기 때문에 발산하기를 격려받지 못했다. 오히려 야단맞을 일만 될 뿐이었으니 감추려 애쓸 수밖에. 난 그저 어른들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인형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내 생각과 감정보다 더 크다 하는 어른들의 그것이 썩 옳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주 냉소적이 되곤 했다.

'모르는 건 어른들이야.'

나를 제외한 사람들, 특히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자 그들의 뜻대로 움직이는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다. 자기 신뢰라는 것이 사라진 삶은 행복할 수가 없었다. 세상도 밉고, 나도 밉고. 즐거울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인간관계를 끊고 게임만 하며 사는 삶을 택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와 타인에 대해 기대할 것도 없이 감정적인 교류를 할 필요가 없는 게임 속의 관계가 너무나 편하게 느껴졌다. 바깥세상에선 고개 숙이고 다니느라 목이 다 아플 지경이었는데 온라인 세상에선 고개를 숙일 필요도 없었다. 기대할 일이 없으니 실망할 일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게임을 꽤 잘하는 편이었다.

내가 다시 꿈을 꾸고,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다짐한 한 가지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선생님이 되자는 것이었다. 어른의 눈으로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지 말자는 결심을 했다. 나와 꼭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인정하고,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해주자 생각했다. 감정을 보듬어 주되 그 감정을 잘 다루는 법을 알려주자 다짐했다.

하지만 교사가 되고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게 되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하기란 영 힘든 일이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내게 했던 대로 하려는 나와 계속 싸워야만 했다. 그 싸움에서 지든 이기든 나는 에너지가 곧잘 소진되곤 했다. 감정의 문제였다. 울화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속으로 '나는 그렇게 크질 못했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노력해야 해?' 하는 말을 쏟아내곤 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얼굴은 붉어졌다. 자책도 하게 되었고, 자신감도 떨어졌다. 매일 후회와 성찰로 보내는 날들이었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계속되는 후회와 성찰 속에서도 내가 한 다짐들을 떠올려야 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기 때문이었다. 계속 나를 다듬어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이게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미워했던 어른들처럼 내 식대로 아이들을 보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아이를 갖고 나니 '독립'이라는 키워드가 더 절실해졌다. 아이를 독립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아이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나와 다른 존재임을 먼저 확실히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었다. 아이를 낳고 보니 이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임을 금세 알게 되었지만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리라.

가장 어려운 것은 아이의 감정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었다. 아이가 울면 내가 너무 슬퍼졌고, 아이가 화를 내면 내가 너무 화가 났다. 이런 감정의 연결로부터 초연해질 필요를 느꼈다.

뭐, 여전히 어렵다. 무의식적인 나의 반응이 아이와 나를 동일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 번씩 그런 나를 알아차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한 번씩은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내 다짐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남편과 했던 이야기들도 종종 떠올리며 말이다.

"아이가 독립할 준비가 되면 우리 아이한테 매달리지 말자."

그러려면 내가 먼저 독립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래서 공부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나는 다짐을 쉽게 잊는 사람이라 계속 깨우쳐줘야 한다는 걸 안다.

앞으로도 공부해야만 사는 엄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엄마로서도, 결국엔 나로서도 잘 살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공부하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