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대로 잘하고 있다
똑같이 키우지 않아도 된다
요즘은 육아서를 잘 읽지 않는다. 대신 고전이나 자기계발, 혹은 부모의 성찰이 담긴 책을 즐겨 읽는다. 아직 엄마 이력이 짧지만 그 사이에도 육아엔 답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까닭이다. 처음 부딪히는 문제를 겪어야 하기에 조언 내지는 충고가 필요할 때도 많지만 결국 그 조언과 충고도 각자 다르고 모두 자신이 경험한 틀 안에서만 말하기 쉽다는 걸 알았다. 언제 또 육아서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나와 내 아이, 내 남편을 관찰하고 눈에 담아둬야 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을 나의 철학, 기준이 세워져야 할 시기이다. 이리저리 흔들리기보다 나를 키워가야 할 시기. 한동안 맘카페 글을 보며, 육아서에 쓰인 공식을 보며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줏대 없이 생각들이 뒤섞여 있었는데 그게 참 나를 지치게 했다.
으이구. 좀 부지런하게 키워.
꼼꼼하게 아이를 케어하지 못하는 나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배변을 언제 했는지, 밥은 얼마나 먹었는지 매일 기록하고, 주어야 하는 간식의 개수를 셀만큼 꼼꼼쟁이인 친구의 말이 내 가슴을 후벼 팠다.
난 게으른 엄마라는 거야?
부지런한 꼼꼼쟁이 엄마보단 느긋하고 여유 있는 엄마가 되기를 바랐건만 질책처럼 느껴지는 조언은 나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이거 이건 꼭 사야 해.
아직 이것도 안 샀어?
이건 이렇게 해야지.
저건 저렇게 해야지.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해.
이건 왜 안 해?
주눅이 들기도 했다. 나 진짜 너무 무심한가 싶어서. 나의 강점은 '잘 관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것도 아닌가 싶어 침울해지기도 했다.
동시에 화도 울컥 치밀었다. 아이 키우는 일에 무슨 공식이 있다고. 왜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두는 것이야!라고.
나와 남편이 만들어가는 가정의 문화가 있고,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방식, 쌓아가는 사고의 방식, 삶의 형태가 타인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 내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걸 언제 줄 것인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타인의 시선이 가끔은 부모보다 더 객관적일 때도 있지만 그 시선이 필요한 시점 또한 내가 판단할 일이라고. 그러니 나는 그저 내가 가지는 확신에 성찰을 더하며 아이를 키우고 싶을 뿐이라고 말이다. 잘 관찰하며.
요즘은 육아 전문가 같은 엄마들이 워낙 많고 여러 정보들을 쉽게 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알고자 하지 않아도 훅 들어오는 정보들에 갈팡질팡 하느라 내 생각과 행동은 머뭇거리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결핍을 주기 두려워하는 엄마의 입장에서 이는 참 버겁다. 내가 아이의 발달을 방해할까 봐, 지금 내 모습이 예측하기 어려운 아이의 미래에 나쁜 영향을 끼칠까 봐 결정이 힘들어진다. 그러다 보니 또 외부의 의견에 매달리게 되고.
물론 나는 완벽하지 않다. 실수하고 깨지고, 후회한다. 이게 맞을까 고민하다 하루가 다 가기도 한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 생각이 정답이, 아니 해답이 될 수 있을지 확신도 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부족한 엄마라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부족한 이윤희는 괜찮지만 부족한 엄마라는 생각은 날 더 힘들게 한다. 육아에도 자신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주눅이 들어버리면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과 행동 쉽게 부자연스러워지곤 하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키우는 일에 더 열심이고 싶다. 어떤 조언이나 충고에도 쉬이 흔들리지 않고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기에.
나는 나대로 잘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오늘도 되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