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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Oct 07. 2020

그래, 좀 더러우면 어때

엄마의 느긋함으로 아이에게 자유를!

꼭 실험을 매트 바닥 위에서 해야겠니?


요 근래 얼룩덜룩해진 매트를 보며 울상 짓는 나와 달리 아이는 당당한 표정이다.

주스를 잘 먹다가 왜 빨대를 빼고 거꾸로 세워 흔들어대는 건지.


"그건 아니야~~" 외쳐봐도 전혀 거리낌 없는 태도에 " 으익!"  하다가도 나는 금세 너그러운 얼굴이 되고야 만다.


"그래, 우리 아기 그게 재밌구나? 실험하고 있구나? 그래도 기왕이면 매트 안 깔린 바닥에서 하면 좋겠다."


귀찮은 걸 참 싫어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눈앞에 보이면 조급 해지는 내가 느긋해질 수 있는 건 너무 깔끔하게 살지 않겠다는 다짐 덕분이다.

그 덕에 여기저기 흩어진 내 책과 아이 책으로 바닥이 다 뒤덮여도, 거기에 더 보태 책장의 책을 모조리 꺼내 집어던지며 노는 아이를 보며 그저 웃을 수 있는 여유 가게 되었다. 바닥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음식물들을 보면서도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을 만큼. 그 덕에 내 아이는 맘껏 어지르며 놀고,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다.


나의 엄마는 머리카락 한 올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도 두고 보지 못했다. 그러니 딸 둘 키우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손에는 테이프를 들고, 머리카락 한 올 떨어져 있는 거 얼른 치우라며 다급하게 외치는 엄마의 모습을 자주 보며 자랐다. 그러다 보니 한창 모래놀이를 즐겨해야 할 시기에도, 물웅덩이 보며 그냥 지나치기 힘든 시기에도 마음 편히 놀이를 할 수가 없었다. 화장실로 직행하여 탈탈 털리는 수고로움과 잔소리를 매번 감당하기 어려워 지저분하게 노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더랬다. 그래서 못해본 게 많다 아쉬움을 간직하며 컸다.


아이를 가지고 다짐했던 많은 약속들 중 하나는 너무 청결한 환경에서 키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면 내 아이에겐 제한을 많이 두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현재 나는 금세 또 어질러질 집 안을 그때그때 치우지 않으며 살고 있다(물론 매트 바닥에 흘린 주스는 예외다). 덧붙여 지저분해지는 바닥을 보는 대신 아이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기뻐한다.

이제 막 신기한 세상을 접하는 내 아이, 단순히 물건을 흐트러뜨리는 것에도 흥미를 보이는 내 아이. 얼마나 기특한가. 자기가 사는 세계를 탐구하고, 탐험한다 생각하니 아이의 행동을 제지할만한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단지 많이 위험해 보이는 행동에만 주의를 주면 되니까. 

그래도 조만간 매트는 바꿔야겠다. 이래서 비싼 물건 사는 건 꿈도 못 꾼다.


바닥에 음식물 범벅으로 엉망을 만들어도, 사인펜으로 예술 활동을 해도, 온갖 생활용품을 꺼내 난장판을 만들어도 나는 치우는 대신 같이 놀이하기를 택했다. 그 탓에 집에 누굴 초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괜찮다.

내가 느긋해지는 만큼 아이에겐 자유가 주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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