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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Oct 14. 2020

작은 학교가 좋아

작은 만큼 친밀하게

오죽 좋으면 교육청에 전화까지 했을까.


이 학교에 발령 내주시면 안 돼요?


첫 기간제는 여름 방학이 끝남과 동시에 계약 만료가 되었다. 아직 난 발령 대기 중. 다음 기간제  자리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발령이 많이 밀려 있는 탓인지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계약 만료가 되기 전, 구인 광고를 보고 또 봐도 적당한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이룬 처지에, 게다가 대출 왕창 받아 시작한 만큼 집에서 쉴 수는 없었다. 경험이 끊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고.

이대로 2학기가 시작되면 지금보다 더 가뭄에 콩 나듯 자리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초조해하던 차였다. 내가 기간제 하던 자리에 첫 발령받은 신규 선생님께 인수인계를 하러 교무실에 들렀는데 교감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기간제 구했나?"

"아뇨."

"그럼 여기서 거리는 좀 먼데 작은 학교 한번 가볼래?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덧붙여

"그 학교 교감하고 아는 사이인데 여기 일 잘하는 기간제 있다고 살짝 얘기해뒀다. 생각 있으면 지원해봐."

"감사합니다!"


혹시 취소하실까 냅다 감사하다 내뱉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인수인계까지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교실 문을 등지고 나온 내 마음은 마냥 편치만은 않았다. 섭섭하고 서운해서. 아이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이렇게 헤어질 수 있다는 걸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몸은 뒤돌아섰지만 마음은 차마 돌아서지 못했다.


그래도 재빨리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내겐 이력서를 정성껏 준비해서 얼른, 최대한 빨리,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지원한다는 인상을 남겨줘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지 마자 정성껏 자기소개서까지 써서 지원하는 학교로 출발했다. 국도를 타야 갈 수 있는,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학교였다.


조그마한 건물들이 즐비한 길목 끝에 위치한 학교. 첫인상부터 좋았다. 꼭 이 학교에서 일하고 싶었다. 시원한 나무 바닥을 밟으며 두근거리는 가슴 안고 들어선 교무실,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은 단 둘 뿐이었다. 두 명 모집 중이었으니 둘 다 뽑힐 터였는데 그땐 왜 그리도 떨리던지. 후들후들 떨며 면접을 보고 나오면서 이곳에서 매일 출퇴근할 모습을 상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면접에 합격했으니 학교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인수인계가 필요하니 잠시 와서 받으라고. 난 3~6학년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고, 5~6학년 아이들과 음악수업에서도 만나게 되었다. 미리 지도서도 챙기고, 업무 인수인계까지 받고 나니 벌써 소속감이 느껴져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며칠 뒤, 정식 출근을 시작했다. 둘째 날까지 가슴이 뛰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였다. 60명 넘는 아이들 이름을 빨리 외우기 위해 수시로 학생 명렬표와 아이 얼굴을 확인하고, 수업도 하느라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과학실을 둘러보며 지금 있는 기구들을 가지고 얼마나 실험 수업을 할 수 있을지 고민도 해보고, 혼자 수업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도서관 가서 책도 좀 찾아보고 아이들이 수업에서 활용하면 좋을 책도 빌려왔다.


낡은 실험 기구들이 많았고, 부족하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이전 선생님처럼 실험 영상만 보여주다 끝이 날 것 같았다.  당시 나는 수업 중 앉아있는 것도 안된다 생각할 정도로 열심이었기에 실험 영상만 보여주다 끝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도 지루할 수업을 아이들에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감정을 철저하게 숨기지 못하는 타입이다. 분명 지루한 수업을 더 지루하게 만들 터였다.


그래서 실험 도구들을 하나씩 사기 시작했다. 작게는 꼬마전구부터 화석 만들기 재료, 모래, 화학 약품 등 너무 비싼 현미경은 못 샀지만 나로서는 거금을 들여 실험 수업을 준비했다. 후에 교원평가에서 과학 수업이 너무 재미있었다는 아이들 답변에 좋아 죽을 뻔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이는 모두 학생 수가 적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큰 학교였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한 학년에 한 명, 그것도 15명 내외의 학생들 뿐이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붓한 공간에서 친밀하게 아이들과 지내는 나날이 너무도 즐거웠다.

게다가 교직원들도 좋아 함께 있는 시간이 편안했다. 교직 경력이 꽤나 긴 분들이라 나는 그야말로 햇병아리였지만 늘 존중받는 기분이었다. 함께 학교 이야기, 일상의 이야기들로 화기애애한 곳. 어렵게만 느껴졌던 교무실이 그토록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있으리란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곳, 구성원들과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은 만큼 내년에도 함께 하고 싶었다.


"윤희 이 학교에 발령받으면 좋을 텐데."


이 한마디가 어찌나 설레던지. 급기야 도교육청에 전화까지 해버렸다. 이 학교에 발령 내주면 안되냐고.

단칼에 안된다는 답을 듣고 낙담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도 있었다. 물론 그 기대만큼 정식 발령지 발표날 멘붕을 겪어야 했지만.


겨울, 종업식을 보며 눈물을 참으려 애썼다. 이윤희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다는 교장 선생님 말씀에 안 된다고 서운해하는 아이들 때문에, 어딜 가든 잘할 거라며 토닥여 주시던 선생님들 덕분에.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야 하는 직업임을 알았지만 마음을 나눈 만큼 헤어짐의 아쉬움은 생각보다 컸다.


사실 작은 학교가 근무하기엔 그리 좋은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때의 경험이 너무 좋아서일까. 나는 언젠가 작은 학교에서 또 정다운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고 있다. 그 날이 언제 올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남은 교직 생활 중 한 번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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