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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Feb 03. 2023

내 세상을 바꾼 아이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난 아주 작아." 두더지가 말했어요.
"그러네." 소년이 말했지요.
"그렇지만 네가 이 세상에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야."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에서 이 구절을 읽으니 처음 봄이의 존재를 알게 된 날부터 봄이가 세상으로 나와 처음 얼굴을 마주하게 된 날까지의 일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봄이가 이 세상에 없었던 때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 작은 아이는 내게 많은 경험과 감정을 겪게 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러할 거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도 조그맣지만 더 많이 작았을 때, 그러니까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매일 야릇한 기분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 같다. 특히 임신 초기에는 배도 볼록하니 나오지 않아 더욱 그랬다. ‘정말 내 몸속에서 아이가 자라고 있단 말이야?’ 하는 의심이 들어 임신 테스트기도 여러 번 할 정도였다. 간지러우면서도 어색한 이 기분. 그러면서도 불안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이렇게 복합적인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매일, 수시로 다양한 감정에 젖어들곤 했다.      


아이를 계획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한 방에(?) 아이가 생길 줄은 몰랐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거니 마음 놓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를 계획하고 있어서였는지 내 몸의 상태 변화를 빠르게 알아챌 수 있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졸음이 쏟아졌다. 사실 이게 다였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임신 테스트기로 흐릿한 두 선을 확인하고는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달래느라 혼났다. 너무 일찍 가면 어차피 초음파상으로 확인이 안 된다며 테스트기에서 임신을 확인했어도 1~2주 뒤에 병원을 가라는 조언을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이때부터 계속되었다. 배 속에 아이를 만나기 위해선 여러 날을 기다려야 했다.      


내가 다니던 산부인과는 다행히도 질 초음파 대신 배 초음파로 아이 상태를 확인해 주는 곳이었다. 굴욕 의자에 앉기 싫었던 나는 그 일이 꽤 감사하게 여겨졌다. 젤이 내 배 위에 문질러졌을 때 차가워 조금은 위축이 되긴 했다. 하지만 아이를 볼 수 있다는 설렘이 더 크게 느껴졌다. 젤의 차가운 느낌은 좋지 않았지만 금세 따뜻해졌고, 동시에 나는 아이를 볼 수 있었다. 그저 콩알처럼 보이는 아이가 어쩜 그리 예쁘던지. 딱 한 장 받아 든 초음파 사진이 아쉬워 보고 또 보다 다음 진료일이 언제 오나 목을 빼고 기다렸다.      


임신 초기에는 배가 아플 수도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콕콕 쑤실 때마다 피가 비치지는 않을까, 잘못되는 건 아닌가 걱정을 사서 했다. 그 당시 왕복 2시간 40분 거리의 거제도로 출퇴근을 하고 있던 터라 더욱 불안을 느꼈더랬다. 그러고는 기다리던 진료일, 잘 자라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초음파로 확인하며 감사해했다. 초기에 입덧을 하기도 했지만 그 기간이 길지는 않았다. 아이는 기특하게도 매일 장거리 운전을 하는 엄마를 단 한 번도 힘들게 하지도 않았다. 그래선지 지금 아이가 떼를 쓰고 화를 내며 힘들게 해도 그때, 뱃속에서 잘 참아주었던 아이를 떠올리면 화가 누그러지곤 한다.     


‘네게 사랑을 듬뿍 줄게’

‘항상 너의 곁에 있을게’     

초음파로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아이였다. 그래도 손이라도 움직이면 마음이 울렁거렸다. 심장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한 생명이 내게 와주었음에 감격했다. 제일 좋아하는 회나 초밥을 먹지 못해도 괜찮았다. 이 조그마한 아이가 세상에 있고 난 후부터 내 세상은 아주 많이 달라졌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졌고, 이 아이를 지킬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이를 소중히 대할 수 있는 마음 자세도 지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나는 마음공부 등 여러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와 만날 날이 더 가까이 다가올수록 나의 하루는 더욱 활기차졌다.      


봄이를 낳은 날, 이제 흐릿해질 때도 되었지만 여전히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그날.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면서도 두려움이 조금 더 강하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나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에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이상하게도 나는 출산의 고통을 배나 회음부보다 꼬리뼈로 느끼고 있었다. 그 통증이 말끔하게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글 속에서 보던 생생한 분만 이야기가 내게도 적용되고 있었다. 남편은 언제 들어왔는지 아이의 탯줄을 자르고 있었다. 감격해선지 잘 자르지도 못하고 있었다. 간호사 한 분이 남편 탯줄 자르는 걸 도와주고 계셨다. 얼떨떨한 와중에도 내 온 신경은 아이에게 쏠렸는데 이제 막 태어난 아이의 처치에 걸린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아이 얼굴을 볼 수 없는 그 1분 1초가 굉장히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시원한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어 답답했다. 목에 걸린 이물질이 상당했었는지 그를 빨아들이고 나니 방 안이 아이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아이는 초록색 천으로 감싸져 있었다. 간호사가 아이를 내게 데려오는 동안에도 얼떨떨한 기분이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내게 오는 도중 뜬 건지, 아이는 한쪽 눈을 뜬 채였다. 아이의 눈을 볼 수 있어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품에 안기자마자 울음을 그친 아이였다.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너무나도 복합적이어서 명확히 설명하기가 어려웠지만 이미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만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도 종종 남편이 찍어 준 그날의 사진을 보곤 한다.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의 모습이 아쉽게 느껴질 때마다 빨리 지나가 버린 시간을 아까워하면서. 육아가 버겁게 느껴질 때마다 작은 이 아이가 내 세상을 얼마나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었는지를 생각하면서. 봄이를 낳고 눈물도 이전보다 많아지고, 생경한 몸의 통증들도 겪곤 한다. 펑펑 울고 싶을 만큼 하루가 버거울 때, 뼈마디가 시리고 아파 겁이 덜컥 날 때 잠시 아이를 낳기 전의 나를 돌아보기도 한다. 불과 몇 년 전의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걸 보면 엄마가 된 내 모습에 적응을 잘한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엄마가 되기 전의 나보다 엄마가 된 후의 나를 더 좋아하게 된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만 생각하던 이전보다 어떤 때는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하게 된 지금이 나를 더욱 성장하게 했다는 것이다.      


“넌 성공이 뭐라고 생각하니?”
“사랑하는 것.”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에 나오는 이 구절에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게 되었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봄이가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써 내가 경험하는 행복과 사랑은 대단히 깊어졌다. 나는 아이가 엄마를 선택해서 이 세상에 온다는 말을 믿는다.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아이 귀에 자주 속삭여준다. 상처가 많고, 나밖에 볼 줄 모르는 내게 와준 아이에게 고마워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줄 알게 해 준 것이 감사해서. 이제 제법 말을 하는 아이는 “응, 엄마 사랑해”라고 답하며 나를 꼭 껴안아 준다. 웃는 얼굴을 내 목에 파묻고 비빈다. 이럴 때 느끼는 감정, 행복이 엄마로서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이제 두려워도 한 발 더 내딛는 용기를 가지려 노력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에 이전이라면 못했을 행동도 기꺼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공부하는 삶을 살기로 선택했다. 이렇게 작은 아이의 존재는 내 세상을 더 크고 좋게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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