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를 대가로, 긴 시간이라는 만족감을.
젖어든 공기가 한 겹 씩 피부 위로 내려앉는다.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온 작은 물방울들이 천천히 공기를 타고 건네져 온다. 찬 공기를 마주할 줄 알았던 새벽, 움츠리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오랜만이다. 함께 눈을 뜬 강아지는 아직 졸린지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미리 챙겨둔 짐을 확인하고, 강아지 물건들을 챙긴다. 사료, 그릇, 간식, 캔, 켄넬과 담요. 짧은 여정이지만 강아지를 위해 챙겨야 하는 물건들도 한가득이다. 고맙게도 여동생이 잠시 강아지를 돌봐주기로 하며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게 되었다. 강아지 물건들만 정리하다 시간이 훌쩍 지난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씻으며 외출 준비를 한다.
이른 새벽부터 분주했던 탓일까, 비행기 좌석에 앉자 몸이 아래로 끌어당겨지는 듯하다. 즐거운 시간을 위한 시작인데, 몸이 편치 않다. 아직 다 낫지 않은 감기 탓인지 비행기가 이륙하며 먹먹해진 귀가 쉽게 뚫리지 않는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른 시간의 비행기를 예매한 나 자신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빽빽한 일정이 시작부터 피로로 다가온다.
공항에 도착한 이후, 작은 핸드폰 화면을 응시하며 지하철을 찾아 헤맨다. 천장에 달린 글귀들과 화면에 적힌 글귀들을 비교하며 다리를 움직인다. 제주도에서 탈 일이 있었어야지. 두 번의 환승, 그리고 정류장에서 30분을 기다려서야 탑승한 버스. 이제부터 한 시간가량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단다. 혼자서도 찾아갈 수 있으니, 집에서 기다리라는 큰소리를 쳐 두었건만 헤매던 시간 덕분에 예상 도착시간이 꽤 늦어지고 말았다.
버스 좌석마다 하차벨에 충전 USB 홈이 파여 있는 것을 보며 작은 감탄을 내뱉는다. 제주도랑은 다르긴 하구나. 비행기에서부터 혹사당하던 핸드폰에게 쉼의 시간을 주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높은 건물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점차 황량한 산과 들이 펼쳐져 있다. 간간이 덜컹거리는 진동이 상념으로 잡아 이끈다. 부은 발이 욱신거린다. 익숙하지 않은 신발을 신고 한참을 돌아다닌 탓이다. 놀러 온 건데, 좀 여유로이 놀아도 될 텐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일정을 이렇게 잡은 거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다는 설렘이 나를 이끌었던 것이 분명하다.
두 시간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세 시간이 걸려버린 이동시간에 친구를 만나자마자 '밥'을 찾게 된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예의를 차리는 표현들의 필요가 없는 사이다. 전화와 문자만으로 충족되지 않던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나 진짜,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다가.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이른 시간에 비행기를 예매한 걸까. 그 생각했어."
친구가 웃음을 터트리며 알지, 알지. 맞장구를 쳐 준다. 이미 나누었었던 대화조차도 얼굴을 마주한 채 나누는 것은 다른 생각과 감정들까지도 이끌어낸다. 20년의 시간이 쌓여가며, 우리는 달라졌지만, 관계만은 달라지지 않았음에 감사함과 안도감이 찾아온다.
이른 비행기 시간은 가장 저렴한 가격대 내에서 고른 선택이었다. 친구를 만난 뒤, 다른 약속도 함께 있기에 조금 더 서두르기도 하였다. 짧은 여정이기에, 몸의 피곤함을 담보로 보다 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아마, 그때의 나는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선택들을 했던 것이 분명하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만족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 했던가. 최소의 비용으로. 그리고 피로와 분주함이라는 비용을 지출함으로써 보다 긴 시간이라는 최대의 효율을 이끌어내는 내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잠시의 침묵조차도 편안한, 그리고 자주 만나지 못하는 관계에서의 아쉬움들이 함께 한 공간 속에서 천천히 흩어진다. 이 시간의 만족을 위해, 나는 새벽부터 그리 분주했던 것이 분명하다.
15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한 친구와 남편의 표정은 밝다.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며 나에게도 그 행복이 전해진다. 여전히 사소한 것으로 다툰다고, 언제쯤 서로가 통할지 모르겠다는 친구 남편의 말에 5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말을 건넨다. 20년쯤 되면, 웬만한 건 다 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