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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싫다, 겨울.

아직 어린 마음이 안타까운 탓이다.

by 연하일휘 Mar 09. 2025

채 마르지 않은, 머금은 열기가 흩어지려는 살갗 위로 얹어질 보들한 감촉을 상상한다. 조금 도톰하면 좋겠어. 무릎까지 금세 식어버릴 몸을 감싸줄, 목욕 가운 하나를 두고 고민만을 이어간다. 욕실을 나서며 난로 앞으로 달려가는 시간마다 욕구가 커진다. 장바구니에 넣었다가도, 새로 마음에 드는 제품으로 교환을 하다가도. 매년 봄이 찾아오며 사라지는 고민이다.


얼굴을 폭 감싸는 후드를 눌러쓴 채, 난방텐트 앞에 널브러진 얇은 패딩 하나를 걸친다. 으레 그렇듯, 아침마다 밤사이 벗겨진 수면양말을 찾아 조심스레 이불을 들쳐본다. 평소라면 저 구석에 엉켜 놓여있으련만, 오늘은 잠든 강아지 밑에 깔려있는 모양이다. 조용히 텐트를 걷고 나와 새 양말을 하나 꺼내 발을 데운다.


곤히 잠이 들었던 시간 동안 따스히 데워졌던 손과 발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식어버린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수족냉증 탓에, 겨울이면 조금 더 따스한 곳을 찾아 파고들게 된다. 충전식 손난로는 어느샌가 수명을 다 해 작별인사를 건네고, 그저 주머니에 손을 깊이 넣은 채 온기를 온존한다.


온습도계에 적힌 12.0이라는 숫자는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아직 해가 제 힘을 내기 전임에도 저 혼자 작은 따스함을 지닌 것을 보면 말이다. 커튼 틈새로 작은 빛들이 조금씩 스며든다. 아직은 차분한 어둠이 가라앉은 집안, 물이 끓는 소리가 집을 메운다.


겨울이 싫다. 한껏 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그 추위가 싫다. 여러 겹의 옷을 껴 입어도, 피부 위로 닿는 듯한 냉기에 몸을 쓸어내리며 온기를 옷 사이로 퍼트린다. 언제쯤 봄이 올까, 언제쯤 달라붙는 찬 공기들이 따스함으로 바뀔까. 봄이 성큼 다가옴을 느끼면서도, 느린 그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Pixabay


어릴 적엔 이 공간보다 넓었던 그 집은, 작은 등유난로 하나만으로도 훈훈한 기운이 집안을 맴돌았다. 여섯 식구가 옹기종기 모일 때면, 넓던 그 공간이 작아졌다. 서로의 온기로 메워진 집에서는 얇은 옷 하나만으로도 따스함을 느꼈었다. 난로 위에서 구워지던 도톰하게 썰린 고구마,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가래떡, 가끔은 고소한 크래커들이 달콤한 냄새와 함께 온기를 퍼트렸었지.


컵 위로 작게 오르는 온기의 흔적을 바라보다 두 손으로 감싸 안는다. 그 시절의 즐거움들이 그립다. 하지만 다시 되돌리기는 싫은, 모순적인 감정들이 함께 찾아온다. 기억한다. 행복으로 충만하던 시간들 이면에 아픈 기억들이 숨어있다. 하루씩 나이가 들어가며, 늙어가며 추억을 되새긴다. 과거는 미화되기 때문에 추억이라는 예쁜 한 장면으로 남는가 하였던가. 아름다웠던 장면 뒤로 묻어두었던 아픔들에 온전히 과거를 그리워할 수 없는 슬픔을 뜨거움으로 삼켜버린다. 어쩔 수 없었던 그 시절을 토닥인다.


겨울이 싫다. 나 혼자 견디는 추위가 외롭도록 사무치는 탓이다. 아름답던 추억만을 남기지 못하는, 아직 어린 마음이 안타까운 탓이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돌아가고 싶진 않아. 하지만 행복한 추억은 그저 행복만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어느새 잠이 깬 강아지가 타박거리며 곁으로 다가온다. 손에 쥔 컵의 온기를 내려놓고, 묵직한 따스함을 품 안에 담는다. 응. 네가 있으니, 누나는 혼자가 아닌데.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에 아가를 더 품 안으로 끌어당긴다. 추위가 싫다. 한 구석에서 해소되지 못한 아픔들이 추억들을 햘퀴는, 채 자라지 못한 마음으로 견디는 겨울이 싫다. 햇살이 집안으로 가득 스며들기를, 그 온기에 창판 위로 닿는 맨 살이 다시 느껴지기를 바라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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