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64 댓글 10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운이 좋은 '낙첨'

5,000원의 운세값

by 연하일휘 Mar 17. 2025

30개의 숫자 중 단 하나에만 동그란 표시가 걸려 있다. 다른 29개 숫자는 단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아쉽게도, 낙첨되었습니다.


'낙첨'이라는 글자에 큰 실망감이 들지 않는다. 복권은 그 두근거림으로 일주일을 버티게 하는 하나의 낙이라던데, 이번에 지출한 5,000원은 '기대감'에 대한 지불이 아닌, 운세값이다.


평소에는 복권을 구입하지 않는다. 낙첨이라는 글자에서 오는 실망감이 싫어 지레 손사래를 치는 덕분이다. 내게는 '당첨운'이라는 것 없이 살아온 날이 긴 탓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가끔 지불하게 되는 요 녀석은 종종 복채의 의미를 지닌다. 내가 꾼 '좋은 꿈'이 당첨운일지, 혹은 나쁜 일을 피하게 해 줄 운일지를 홀로 점쳐본다.


그 어느 날, 3일 연속으로 좋은 꿈이 이어졌다. 하루는 피가 낭자하던 꿈, 하루는 새하얀 이무기가 나타나는 꿈, 마지막으로 새끼돼지들 사이에 둘러싸여, 한 마리를 손으로 낚아채는 데 성공한 꿈이었다. 마지막 꿈을 꾼 날 아침에는 종종거리며 로또 한 장을 사고 집으로 들어섰다. 좋은 꿈에서 오는 기대감이 잔뜩 묻어난 작은 종이를 지갑에 넣어 두고, 작은 망상에 빠지려던 찰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작은 아버지로부터,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는 전화였다.


아무도 없던 부두 한가운데에서 쓰러졌던 아버지는 운이 좋았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 사람이 있는 곳으로 와 다시 쓰러졌다. 처음 정신을 잃었을 때, 아버지가 깨어나지 못하였다면 예후가 좋지 않았을, 아니. 이른 시기에 우리 곁을 떠났을 것이 자명했다. 작은 기대감으로 들떴던 기분이 산산이 부서진다. 집으로 돌아와 터져 나오던 울음 속에서 평탄치 않은 삶에 대한 원망을 토해냈다.


아버지의 회복이 순조로워지며, 뒤늦게 구입했던 복권이 떠올랐다. '낙첨'이라는 두 글자에도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내가 꾸었던 그 꿈들은, 최악의 상황을 비켜가는 운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힘듦 속에서 좋은 꿈이 찾아올 적이면, 가끔 복권을 구입했다. '당첨'이라는 글자를 본 적은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최악의 상황들이 아슬아슬하게 옆을 비켜갔다.


나에게 행운이라는 것이 쉽게 찾아오지 않음을 알고 있다. 행운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행복에 대한 욕구를 키워 나간다. 힘들어도, 간간히 웃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살만한 것임을 깨달아간다.


PixabayPixabay


"괜찮아?"


출산일을 앞둔 여동생의 몸이 좋지 않다. 조산방지제를 먹고, 온 가족이 조카를 함께 돌보며 여동생의 몸을 살핀다. 학원과 여동생네 집을 오고 가는 시간들 동안 쉬지 못하는 나에게 여동생이 미안함을 표한다. 몸의 힘듦보다도 여동생의 아픈 모습을 보는 마음이 더 힘든 시간이다.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어나며, 복권을 구입해야겠다는 예감이 든다. 당첨에 대한 기대보다는, 여느 때처럼 운을 점쳐보는 역할이다. 30개의 숫자 중 단 하나의 숫자에만 표시가 된 용지를 보며 작은 안도를 한다. 나쁜 일은 없겠구나. 이번에도 나쁜 일은 비켜가려 꿈이 먼저 보여준 것이겠구나.


이른 아침, 여동생이 응급 수술을 한다며 연락이 왔다. 본래 예정했던 수술 날짜보다 일주일 정도 앞당겨진 날이다.


"둘째도 오빠 꼭 닮아서, 딱 일주일 빨리 나오네."


"그러게."


주말사이 나빠진 몸상태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는 여동생이 덤덤하게 말을 한다. 이번만은 나쁜 일이 비켜가는 것이 아닌, 좋은 일이 있으려 찾아온 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든다. 예쁜 아가를 만나려고, 엄마도 아가도 모두 건강하려고.


조카를 돌보기 위해 저녁 수업을 조정한다. 제부와 교대로 여동생과 조카 옆에 있을 시간을 정한다. 드디어 딸 아빠가 되는 것을 축하해- 나의 축하 인사에 어둡던 제부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오른다. 걱정과 기대를 꾹 눌러 담은 듯한 제부는 평소보다 더 분주하다. 첫째는 태어나자마자 제 엄마 판박이였는데, 둘째는 어떠려나. 걱정보다는 기대로 기다리는 시간. 바쁘지만 두근거리는 하루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의를 베풀 수 없는 사회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