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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라 Mar 16. 2024

마흔 둘에 직장을 구하는 딸에게

용기와 격려가 필요할 때 


마흔 셋을 앞두던 11월의 어느날 마흔 마섯의 남편이 도저히 회사를 다닐 수 없을것 같다고 호소했다.

몇년 전부터 회사일을 힘들어 하긴 했는데 

그해 일년 내내 그 이야기를 들었기에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며 또 지나가는 넋두리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남편의 상사가 여자인데 보아하니 

나이도 많고 딱히 능력도 출중하지 않았던 남편이 탐탁지 않았는지

어떻게든 회사를 나가게 하려고 수를 쓰는듯 했다. 

벌써 몇년 째 승진은 되지 않았고 부서를 옮기려고 해도

너무 시기가 늦어서 마땅히 티오가 있는 곳도 없었다.


남편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었고

유난히 힘들었던 그날, 잠깐 동안 기억을 잃었다고 했다.


이럴수가.. 몸 하나 건강한게 그나마 남편의 최대 장점이었는데

그렇게 죽도록 하기 싫은 회사생활 하다가 

몸도 마음도 많이 상할것 같아서 그날 바로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바로, 당장 회사 때려쳐!!”    

육두문자로 그 상사를 욕하고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 줬더니 

남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고 좋아하는게 보였다.

진짜 마음같아서는 남편 회사앞으로 찾아가서, 니가 뭔데 남의 귀한 남편을 그렇게 무시하고

여우같이 수를 쓰냐며 한마디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그래도 이십년 가까이 다닌 회사라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손을 내저으며 남편이 나를 진정시켰다.

다급한 말투와는 달리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지어졌다.


그리고는 진짜 다음날 바로 상사를 만나서 사표를 내던졌고, 

12월까지만 일한다고 했단다. 

다행히 바로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1월까지 다니기로 했다며 나에게 참 고맙다고 했다.

아주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일처리가 어찌나 빠른지..


남편이 그렇게 회사를 때려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영어 강사로 오래 생활하다가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이것 저것 

하고 싶은일을 하면서 동네 아이들도 몇명 가르치면서 용돈도 벌고 블로그 활동도 하고, 

아이와 놀러다니면서 유유자적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제 내가 회사나 학원에 들어가서 일주일 동안 

정해진 규격과 규칙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다행히도 쉽지는 않았지만 그동안의 경력이 있었기에, 

결과적으로는 원하던 회사에 취직을 했고 2월부터 출근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출발이 설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6여년간 자잘한 일들을 하긴 했지만 

공식적인 직장생활은 오랜만이었고 직책과 상사가 있는 회사는 결혼후에는 처음이었다.

주위에서는 남편 대신 나름 경제적인 가장이 되는 나를 위로하기도 했고, 

힘내라고 응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는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엄마는 남편대신 전쟁터에 끌려가는 병사처럼 응석을 부리며 짜증을 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네가 하나도 안 불쌍해. 네가 하나도 안 걱정돼.

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네가 가진 능력으로 원하는 직장을 얻었잖아. 

그리고 네가 니 가정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을만큼 씩씩하고 멋있잖아.

나는 남편한테 직장 그만두라고 소리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네가 참 멋있었어.

예전에도 너는 내 자랑스러운 딸이지만, 

지금은 더 자랑스러워. 너는 분명 잘 해낼꺼야.”


엄마의 응원은 나에게 깊은 울림이 되었다. 

엄마의 말을 들으니까 나도 내 자신이 참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가정을 위해 그렇게 다니기 싫었던 직장을 

이십 여년이나 다녀준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 말처럼 일년 내내 남편의 힘든 회사 생활을 외면하려고 했던 내 자신보다

이렇게 열심히 직장을 구하러 뛰어다니고 결국 직장을 얻었고, 

앞으로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회사를 다니게 될 내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예전 내가 서른살이 되던 해에,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대신에 

영어연극을 하는 극단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에도 엄마는

네가 한살이라도 젊었을 때 원하는 것을 해 봐! 

어차피 하다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그때 그만두면 돼잖아.” 라며 응원을 해 주었다.

사실 그때는 진짜 그 일이 하고 싶었던 마음보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던 거였다.

갈팡 질팡하는 딸의 마음을 알았는지 엄마는 그때에도 

나에게 새로운 길을 가는 발걸음이 더 값질 수 있게 나에게 힘을 주었다.

결국 나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고, 

많이 깨지고 한계에 부딪치고 후회도 했지만, 결국 많이 배우고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으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길을 걷지 못했으면 얻지 못할 값진 경험과 경력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에는 반찬을 만들어 주고 언제나 걱정해주는 엄마가 있다면,

내 엄마는 내가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무언가 두려운 것을 만나 위축되어 있을 때 

등불 같은 존재처럼 나의 앞 길을 보여주며 응원해주는 존재였다.

아주 어릴때뿐 아니라, 스무살때도, 서른살때도, 사십대의 끝자락에 있는 지금까지도

엄마는 나를 정성껏 양육하고 있다. 

맛있는 밥으로 나를 먹이고 마음으로 응원해주고, 힘이되는 말로 나를 밀어주고 사랑해준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참 멋있다. 엄마를 닮은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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