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쉬라 Mar 24. 2024

동화속에 사는 사람

빨간머리 앤으로 살면 생기는 일 

엄마는 밝고 언제나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이다. 

MBTI가 ENFP 그 자체로 어딜가나 사람들을 몰고 다닌다.  

좀 업되고 코드가 맞는 사람이 한두명 있으면 전체 분위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그 나이대로는 드물게 형제가 없는 외동딸인 엄마는 항상 잘 웃고 친구도 많고 

나 인정받는 좋은 사람이어서 나는 엄마가 어릴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엄마가 나에게 말해준 엄마의 어린시절 이야기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불우했다. 

언제나 단정하고 얌전했던 할머니와는 달리 활달하고 

노래도 잘해서 동네에서 인기 많고 덜렁거리며 서글서글하게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엄마를 

할머니는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종가집으로 시집가서 아들도 못 낳고, 이런 저런 이유로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았던 할머니는 

무능력한 남편이 사업한답시고 집안 재산을 거덜내고 다니는 동안 그 스트레스를 

가엾은 엄마를 구박하는 걸로 풀었다고 한다. 

방에 가두어 놓고 엄마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나에게는 한없이 다정했던 내 할머니와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엄마 말로는 할머니는 엄마가 결혼한 후 손녀와 손자를 본 이후에는 

완전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엄마는 함께 그 상황을 공유할 형제나 자매도 없었고 

시댁스트레스와 무관심한 아버의 태도에 상처입은 채 한없이 곪아가고 있었다. 


그 시절에 엄마가 봤던 책이 바로 빨간머리앤이었다. 

빨간머리앤은 천애 고아로 고아원에 있다가 이집 저집 떠돌면서 구박과 학대를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을 지키는 강인하고도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소녀다. 

우리 엄마는 그 앤을 보면서 어쩌면 엄마 자신이 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예전부터 빨간머리앤을 읽으면 다른의미에서 우리엄마가 떠오르곤 했다. 

어린 시절 우리엄마는 우리 삼남매들에게 항상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동화책도 재미있게 읽어주었다. 

나중에 안거지만 우리를 키우면서 자신이 받은 학대를 

절대로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워낙 어릴때부터 동네 아이들을 돌보든게 익숙하기도 하고 엄마 특유의 맑은 영혼때문인지 

엄마는 아이들을 무척 사랑했다. 

나를 스물 한살에 낳은 젊은 엄마는 항상 우리와 함께 놀고,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주고 친구처럼 대해줬다. 

엄마한테 언젠가 

"엄마는 왜 그렇게 상상력도 많고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즐거워 했어?" 라고 물었을 때 

엄마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가 어렸을 때 너희 외할아버지가 인쇄소를 하셨었어. 

그런데 저녁에 집에 오실때 나 보라고 인쇄하다 만 동화책을 주셨던거야. 

책이 귀했던 시절이라 아버지가 갖고오신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한참 읽다보면 

글쎄 중간에서 딱 내용이 끊기는거지. 

아버지가 갖고 오신 책들은 모두 파본이라서 제대로 된 책이 하나도 없었거든. 

나는 그 뒤의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미치겠는거야. 

아버지한테 다음 내용 좀 보게 제발좀 제대로 된 책을 갖다 달라고 해도 말을 들어주시겠니? 

그때부터 엄마는 그 이야기의 다음이야기를 매일 매일 상상했어. 

빨간머리 앤이 있지 않는 공주를 상상해서 친구를 삼았던 것처럼, 

나는 그 이야기들에 나오는 동화속 주인공들을 잔뜩 불러다가 친구로 삼았지." 


할아버지가 가져오신 뒷 내용이 잘린 동화책들을 읽으면서 

동화속 주인공들을 상상하던 우리 엄마는 아마도 그 상상의 세계에서 

주인공들과 더 친해졌으리라. 

매일 밤 동화속 친구들과 친구삼아 상상력을 키워가던 우리 엄마는 결혼을 하고, 

우리를 낳고나서야 제대로 된 동화책을 많이 많이 읽을 수가 있었다. 


엄마는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 뒤로 엄마는 색동회라는 단체에서 하는 동화구연대회에서 입상하고 

이후로 동화구연가로 꽤 오랜기간 활동하셨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한 활동이었는데, 

울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본격적으로 엄마의 직업이 되었다. 

우리 삼 남매를 먹여살리기 위한 밥벌이가 되었다. 


어릴때 부모님 직업 조사란에 항상 아빠는 회사원, 엄마는 가정주부라고만 적었었는데, 

아빠가 돌아간 후에 엄마의 직업란에 동화구연가라고 쓰는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다른 엄마들은 기껏해야 회사원이나 자영업 같은 직업이 대부분이었을텐데

 (그 당시 우리 동네가 아마도 그랬을듯) 우리 엄마는 동화구연가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서 

왠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엄마는 동화구연가가 자신의 직업이 되리라고 그 어린시절 상상이나 했을까? 

그 당시에는 그 직업이 있지도 않았었겠지. 


그 뒤로 엄마는 동화구연가로서 유치원에서부터 문화센터, 초등학교, 다문화 센터, 

대학교까지 안 서본 강단이 없을 정도로 왕성환 활동도 하시고, 후배 양성도 많이 하셨다. 

지금은 현장에서 은퇴하시고 또 여러가지 직업을 섭렵하셨지만, 

나에게 있어서 엄마는 동화속에 사는 사람이다. 여전히 빨간머리 앤이다. 


얼마전에 엄마랑 빨란머리앤 이야기를 하는데 엄마는 빨간머리 앤이 

나중에 부모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부분은 기억을 못하셨다. 내가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빨간머리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잘 버티고 영혼을 아름답게 지킬 수 있었던 

그 부모가 앤이 태어났을때 엄청 많이 사랑해주었기 때문일거야. 

엄마도 아마 누군가의 큰 사랑을 많이 받아서 지금처럼 이런 모습일것 같아." 


마흔이 넘은 나는 우리 엄마를 사랑할 줄 안다. 




작가의 이전글 하늘의 별이 되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