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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라 Oct 13. 2024

슬픔의 푸른색이 짙어져도 괜찮아  

슬플때 웃게 하는 사람을 생각하기 

어릴적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눈을 떴는데 어스름하게 해가 지는 풍경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눈물은 왠지 모를 설움이 되었고, 서러운 느낌에 흐느껴 울었었던 같다. 

그건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슬픔의 감정이었다.

그때는 그게 슬픈 감정인지 몰랐다. 

왜 슬픈지도 모르지만 그 붉은 노을과 어둑 어둑한 하늘과 

아침인지, 저녁인지 모를 그 개운치 않은 무거운 느낌은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에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가족을 잃는 슬픔은 많은 슬픔중에서도 깊은 슬픔이다. 

열 아홉살에 아빠를 잃었을 때에도, 이후로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 가슴이 조이는 

고통스러운 감정에 대한 기억이 있다. 

동생이 하늘나라로 갔을 때도 아주 슬펐다.  

그런데 동생이 하늘나라로 간 건 참 슬프지만, 그 애를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기도 한다. 

왜냐하면 동생은 웃긴 애였기 때문이다. 


동생은 어릴때부터 몸무게가 많이 나갔는데 항상 그 육중한 몸무게 때문에 어릴때부터 에피소드가 많았다. 학창시절에는 친구 녀석이 장난 친다고 똥침을 하다가

동생은 멀쩡한데 친구의 손에 금이 갔다고 한다. 아주 두껍고 단단한 살집을 가졌기 때문이다. 

20대의 대부분을 백수로 지내다가 일한다며 오토바이를 잠깐 타고 다녔었는데 

어느날 교통사고가 나고야 말았다. 

죽지 않은게 다행이라며 왜이리 일이 안 풀리냐면서 모두 걱정을 했었는데 

집에서 간식을 거의 사주지 않고 병원에서 주는 밥만 먹다보니 입원한 내내 살이 엄청 빠졌다. 

퇴원 할 즈음에는 몰라보게 살이 빠져서 옷을 모두 버리고 새로 사야 할 정도였다.

동생은 합의금으로 받은 돈으로 배낭 여행을 다녀왔고 

히말라야 가는 길에 올케를 만났다고 한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도예가로서 일을 하면서 대구에 사는 올케랑 연애를 했다. 


어느날은 엄마가 나한테 상기된 얼굴로 찾아 오셔서

"간밤에 태몽을 꾸었는데 분명 너한테 좋은 소식이 있을거야."라며

그 당시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난임 치료를 받던 나에게 희망의 말씀을 해 주셨는데

다음날 그 태몽이 나한테로 안 오고 동생한테 갔다며 동생이 아이가 생겼다고 했다. 

황당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그 곰같던 동생 녀석이 아기 아빠가 된다고 하니 어이가 없어서

엄마와 전화통화 하면서 깔깔 웃었던 생각이 난다. 

그 올케 뱃속에 있었던 아기는 지금 고등학생이 되었고, 밑의 동생은 중학생이 되었다. 


동생의 몸은 두 아이의 아빠로,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으로 살면서 다시 불어났고,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로 점점 안 좋아졌다. 

하지만 그애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항상 실없고 말도 안되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농담을 했다. 

투병 생활 중, 밤새 아파서 끙끙 앓다가도 며칠 지나서 전화를 하면 마치 전쟁터에서 싸우고 나와

자신의 용감함을 자랑하는 전사처럼 의기 양양하고 넉살 스럽게 농담을 해댔다. 

그러나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너머로 그 아이의 짙은 슬픔이 느껴졌다. 

그 슬픔의 색이 짙고 푸르고 깊게 자리하고 있었음을 나는 안다.


동생을 떠나 보낸 후  나는 괜찮다가도 가끔은 어떤 날은 무엇을 하든 마음이 무겁고, 

또는 마음 한켠이 저릿 저릿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움, 미안함, 스스로에 대한 원망, 엄마에 대한 안스러움,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 뒤로

나의 온전한 슬픔이 있다.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슬픔이처럼, 슬픈 감정 하나가  푸르게 내 마음에서 빛을 내면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고 항상 의욕에 가득한 나지만

그 순간은 참 슬퍼진다. 


죽음이나 절망을 경험한 영혼의 슬픔은 분명 일반인의 푸른 색보다 더 짙은 푸른색을 띌게 틀림없다. 

내가 좋아하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도 죽은 자를 본 사람만 볼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죽은 사람을 통해서 죽음이 가져오는 슬픔의 색깔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세계란 것은 

마치 마음의 눈에 다른 필터를 끼워 넣은 것과도 같다. 

깊은 슬픔을 이해하는 마음이 있어야 글이란 것도 써지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공감할 있는것 같다. 


하지만 슬프다고 해서 인생이 재미있지 않거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슬프고 힘들고 벗어나고 싶고, 고통스러운 삶도 웃고 싶을 때는 웃을 수 있다. 


"누나, 내가 진짜 겪은 이야기인데 말야. 내가 엄마 양평집에 혼자 앉아 있는데 한 밤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거야..근데 글쎄 어떤 할머니가 문 앞에 서 계시는데..진짜 너무 깜짝놀라서 심장이 내려앉는줄 알았거든 한참을 이야기 하고 가셨는데 다음날 엄마한테 물어보니 주변에 그런 할머니가 없대..나 귀신을 봤나봐..." 


"얘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또 이런 이야기를 해...진짜 엉뚱해갖고, 꿈 꾼거 아니니?" 


언젠가 동생이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엄마는 옆에서 기가 막히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시다 혀를 끌끌 차시다 하시는데, 나는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동생의 그 능글맞은 엉뚱함이 웃기기도 해서 옆에서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그 실없는 이야기를 해 줄 동생은 없지만 

동생의 추억을 이야기 하며 우리는 항상 웃는다.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나 평소에 자주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가끔 동생이 아주 많이 보고 싶을때 찾아오는 슬픔의 푸른 빛을 마주할 때를 대비한다. 

마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항상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헷갈리는 경험담을 하면서 

진지해지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던 동생의 익살스러운 얼굴을 떠올리면 그 애의 목소리가 들리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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