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 같은걸 보면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는 베스트 프렌드가 등장한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외국의 드라마에서도 자매나 형제보다 가까운 사이로 등장하는 친구 역할의 배역들이 있다. 주인공과 너무 가까운 친구들을 보고 있다보면 가끔 저 드라마에서 제일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러고보니 나에게도 마치 연인처럼 매일 전화 통화하고, 일상을 공유하고 만나면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던 좋아 죽는 친구들이 있었다. '있었다'는 것은 과거형이다. 확실한건, 내가 말하는 과거형처럼 드라나마 영화속에 나오는 비현실적으로 가깝던 친구 사이도 긴 인생을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멀어져야 하는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중학교때부터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중학 시절만 해도 사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걸 좋아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어릴땐 더 심했다. 그때는 그냥 실없는 장난치는게 좋고 함께 있는게 즐거워서 친해진다. 그러다가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서로를 보면 정말 우리는 많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우리가 친한 친구 사이라는 것을 주위 사람들은 안다. 묘하게 색깔이 비슷하기도 하고 둘 사이에 흐르는 편한 공기가 친구사이임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도 즐겁고 좋았던 친구였지만 점점 서로의 인생을 살다보니 만나기만 하면 의견이 너무 안 맞고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가 둘 사이에 너무 생각이 다른 사건이 발생했고 그 일로 인해 우리 둘은 7여년을 연락을 안하고 지냈다.
처음에는 그 친구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가득했다. 그러다가 한 해, 한 해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미움의 감정들은 그리움으로 변해갔고 어느 순간에는 너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연락을 준 그 친구였다. 친구가 카톡 메세지에 남긴 글을 읽고 있으니 반가움과 미안함에 눈물이 차올랐다. 당장에 답장을 하고 전화 통화를 하고, 울고 웃으면서 그동안 밧줄매듭처럼 꽁꽁 묶여있던 응어리를 풀어나갔다. 그리고 그 친구와는 다시 언제든지 웃으면서 만나고 목욕탕고 가는 사이가 되었다. 여전히 서로의 의견이 팽팽해져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서로 이해를 못하는 부분도 많지만 서로 건들지 말아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조심하게 되었다.
얼마전부터 딸래미가 밤마다 울고 힘들어 해서 거의 한 두시간씩 이야기를 해줘야 했다. 학교에서 친한 친구에게 손절을 당하는 일을 겪었는데, 14년의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시련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어릴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라서 서로 모든걸 공유하는 그야말로 찐 베프였는데 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지 괴로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딸 아이가 슬픈 이유는 둘 사이의 추억때문이었다. "엄마, 아직도 나는 그애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올라서 너무 슬퍼. 즐겁게 놀고 웃던 기억들이 생각나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나. 그애는 왜 그렇게 매정할까. 왜 그렇게 정이 없을까?"
어릴때부터 친구들이랑 놀다가도 헤어질때가 되면 울고 불고 할 정도로 친구에 대한 감정이 강했던 딸의 성향상 쉽게 극복이 될 수가 없었다.
"테레사야. 너희는 이제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면서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는거야. 어릴때는 너희를 잘 모르지. 하지만 커가면서 네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가는거야. 특히 친구를 통해서 너를 알아가게 되는데. 이렇게 생각이 다르고 마음이 맞지 않는 과정을 통해서 아, 그럴수도 있구나. 이 친구는 이렇구나, 나는 이 아이와 생각이 다르구나. 하면서 사람을 배워가는 거야. 그 친구도 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거야. 물론 잘 해결해서 잘 지내면 좋겠지만 너무 생각의 차이가 클 때는 이렇게 서로를 멀리서 지켜보는것도 좋은거야. 대신 서로 누군가에게 나쁘게 말하지 말고 더이상 잘 지낼 수 없을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 친구의 의견도 존중해 줘야해."
딸 아이를 달래며 해 줬던 이야기였지만 이 이야기는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기도 했다.
서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뇌에서는 그 사람이 나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자꾸 통제하려고 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 화가 더 잘 나고 실망도 많이 하게 된다. 어쩌면 친구한테 속상하고 미운 마음이 들고 만나고 싶지 않다면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극히 옳은거다.
내 상태가 복잡하고 힘든 상황에 또 다른 자아인 친구가 개입되어서 가뜩이나 힘든 마음을 뒤집어 놓으니까.
친구는 또 다른 나다.
오랜 시간 친구를 만나지 못했던 이유는 내 마음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혹은 내가 성장하는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알아가는 그 시기에 나를 흔드는 친구가 있다면 당연히 그 기간동안은 연락을 하지 않는 게 나에게 옳다.
요즘에는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참 그립다. 얼마전에는 30년 전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오래 연락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기도 한다. 가끔은 연락을 해도 그쪽에서 나를 손절했는지 답장도 대답도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 내가 그들이 그립다는 것은, 이미 그 시간을 극복하고 내가 성장했다는 뜻이다. 마음이 더 넓어지고, 그 친구 본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는 뜻이다. 그렇게 만난 오래된 친구들은 때로는 새로운 친구들같은 느낌이 든다. 그 전에는 몰랐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더 사랑스럽다. 이 세상에는 묵은지같이 오래 지나야 알 수 있는 맛이 있다. 매일 만나지 않아도, 일상을 공유하고 무슨일이든 다 함께 하지 않아도, 인생을 같이 늙어갈 수 있는 진짜 친구들을 만나면 알게 된다. 그 깊고 아련하고, 새로운 맛을. 우리 딸도 알게 되겠지. 친구란, 한 40년은 지나야 진짜를 알 수 있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