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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라 Sep 05. 2024

아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육아하는 것

사춘기 딸을 내 마음에서 미리 독립시키는 법

아이가 6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 아침

이 아이가 내가 키우던 그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싹 변해 있는걸 느꼈다.  

매일 살을 부비고 엄마 아빠한테 인사하고, 잠은 엄마랑 자고 싶다고 조르던 그 아이는

어느날 갑자기 거울 앞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더니

아침밥도 필요 없다고 대충먹더니 이것 저것 물어보는 내 질문에 쌀쌀맞게 답변하다가 

친구와 함께 학교를 가기로 했다며 일찍 나가버렸다.

저녁에 “엄마랑 같이 잘까?”라고 묻는 내 질문에

“내가 왜 엄마랑 자?” 라며, 마치 엄마랑 자는 일이 너무 수치스러운 과거를 들춰내는 일처럼

인상을 구기겨 오히려 나한테 반문한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밤마다 이불을 덮어준다거나, 잘자라고 안아주고 뽀뽀해주는 것도 거부하고

예전에는 그냥 넘기던 내 말에 모두 ‘잔소리’라는 프레임을 끼워 넣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의례 친구들과 약속이 있고, 방과 후에 친구들과 노는것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워낙 여러 친구들이랑 어울려 노는걸 좋아하긴 하지만, 이렇게 아이가 달려졌나 싶어서

주위 사람들한테 물어 봤더니, 그래도 아직은 엄마한테 붙어 있거나

친구보다는 가족들이랑 있는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내 아이만 유독 달라진 것 같아서 내내 섭섭하던 즈음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을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최대한 늦게 생겼으면 하는게 바로 이성 친구일텐데..

털털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또 어떤 매력을 보여서

남자친구가 있는걸까 내심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저녁때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고 다그치면 아이가 오히려 숨길 것 같아서

방에 들어가서 학교 생활은 어떤지 물어보다가 

예뻐졌다고 칭찬을 계속 했더니 아이가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엄마, 내가 할 말이 있는데 절대 화 내지 마.”

“뭔데 그래? 괜찮아. 절대 안 낼께.“

“나, 사실은…남자 친구 생겼어.”

“진짜? 와…그렇구나. 축하해!“

축하해라니..나도 모르게 아이가 그래도 나한테 말해준 사실이 기뻤는지 축하단다는 말이 나왔다.

사실 그 남자 아이가 어떤 아이인줄도 모르는데 그런 말이 튀어 나왔다니..

스스로도 놀라고 당황하던 차에 딸 아이가 환한 얼굴로 말한다.

“아..이제 참 속 시원하다. 엄마한테 계속 말하고 싶었는데 못 말해서 참 답답했어.“

사춘기가 되어서 뭔가 달라진 아이의 태도와 눈빛에만 반응하던 내 안에서 뭔가 뭉클 한 마음이 솟아났다.

예전에는 사랑만 해주고 보듬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안아주면 되었던 아이의 육아가

이제는 아이의 머릿속에 일어나는 많은 지각 변동처럼 

내 마음속에도 한번 요란하게 변화가 일어나야겠다는 생각..

기존의 방식으로는 이제 아이를 제대로 양육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 아이가 지금처럼 자신의 감정과 고민을 나와 함께 나누고 

스스로의 성장에 도움을 받기위해서 나를 찾으려면

나도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육아해야한다.


세 명의 각기 다른 아이들을 키운 엄마는 한명 한명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리하거나

디테일하게 일상을 물어볼 시간이 없으셨다.

게다가 내가 한참 사춘기일때는 아빠가 암 수술을 하시고 요양 차원에서 

서울 외곽쪽에 집을 얻으셔서 주말에는 거의 거기 사셨고

평일에도 거기에서 출 퇴근 하곤 하셨기 때문에 밥이나 빨래 같은 집안 일은 거의 할머니가 해 주셨다.

그래도 마음속에 고민이 있거나 뭔가 해결해야 할 일 이 생기면 항상 엄마랑 상의를 했고,

엄마는 그때마다 진심으로 내 마음을 만져주고 대안을 제시해 주시곤 하셨다.

그때 그렇게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었기에 

나는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엄마는 나한테 화가 많이 나면

“너 닮은 똑같은 딸래미 낳아봐.”라고 말씀 하시곤 하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 딸은 나와 많이 닮았다.

가끔 너무 쌀쌀맞은 행동을 하거나 말투가 아주 건방질때 보면, 

엄마가 “너는 뭐 그렇게 잘나서 건방이 하늘을 찌르니?”라고 나한테 말하던 게 생각난다.

나를 닮은 딸은 낳은 것은 축복일까 벌일까?


요즘에는 자꾸 블로그에 기록해 놓은 사랑스럽고 예쁘던 아기 시절의 딸을 보고 또 본다.

이제는 고사리손으로 나를 위로해주고 안아주고 사랑의 말을 하던 귀여운 아기는 없다.

그 아기는 사춘기 딸 몸 속의 어딘가에서 튼튼한 뼈로 자리잡아서 

지금 이렇게 건강하고 독립적인 아이로 잘 자라게 밑바탕이 되고 있을거다.

너무나 아쉽고 아쉽지만…이제 나도 중고등부 엄마로 이직 할 차례다.


새로운 직장에서 새롭게 맞이하는 우리 아이를 어떻게 대할것인가..엄마 공부는 끝이 없다.

아직까지 나를 육아하는 엄마를 보면, 이 공부는 내가 눈 감을 때까지, 

아이가 계속해서 성장하는 한 끝이 없을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다 자랐고 늙어가고 있는데도 엄마가 나를 이렇게 육아 하시는 것을 보면 

엄마도 계속 계속 성장하셨을 거다.


나도 나의 엄마처럼 아이를 늦게까지 육아하려면 성장을 멈추면 안 될 것 같다.

그야말로 뛰는 엄마 위의 나는 엄마다.

나도 마흔이 넘은 내 딸을 육아하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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