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릴 수 없는 슬픔 한 조각 마음에 담는 법
아직도 아침이나 저녁때 마음이 울적해지고 그녀석이 보고싶어서 눈물이 난다.
가끔 꺼이 꺼이 울때도 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깊은 슬픔이다.
휘발적으로 날아가는 어떤 감정이 아니다.
바닥에 깔린 슬픔들이 스폰지 같은 마음을 마치 젖은 액체처럼 잔뜩 머금고 있는 그런 느낌이다.
나는 원래 엄청 긍정적이고 어떤 일이 있어도 인생이 즐겁다며 금새 웃는 사람인데
이 느낌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스무살때 아빠가 돌아가셨을때의 느낌과는 다르다.
그 때는 많이 슬프기도 했지만 무언가 조금 억울함이 있었다.
아빠가 없는 세상을 동생들과 엄마와 살아가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이라는것, 엄마 아빠가 다 온전히 있는 삶이라는 걸 살 수 없다는게 뭔지 모르지만 억울했다.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동생이 죽는 것은 나의 몸 어느 한 쪽이 뭔가 기능이 안 되거나 없어지는 느낌과도 비슷할것 같다.
간이나 심장, 팔 다리 같은거 아주 치명적이거나 주요 부위는 아니다.
콩팥이나 쓸개라든가 혹은 젖 가슴 한쪽이 없는 느낌이려나?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가 없어지니 너무나 허전한데,
없어진 순간내가 온전한 내가 아닌것 같은 그런 느낌..
물론 그런 상태가 되어 본적은 없어서 글로 쓰면서도 그런 느낌이 어떤건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부모의 죽음이면 그냥 부고를 돌릴텐데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은
지인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조차 고민하게 된다.
애매하면서도 미안하고 남들에게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없는,
그냥 나만 이해할 수 있는 슬픔이 확 들어오는 느낌이다.
내가 더 잘해주지 못한게 미안하고, 어릴때 그애를 섭섭하게 했던 게 떠오른다.
얼마전에 나와 통화하고 싶어서 전화 했었는데
내가 받지 못하고 다시 전화 해야지 하다가 못했던게 계속 떠올라서 또 눈물이 난다.
왜 자주 가 보지 못했을까? 왜 좀 더 자주 통화하거나 용돈이라도 주지 못했을까?
그애의 웃는 목소리가 들리는것 같은 기분이 들면, 그냥 눈물이 난다.
엄마는 오랫동안 아팠던 그 애가 3년 전에 중환자실에 갔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하고 나왔을 때,
엄마 집 바로 옆에 방을 얻어서 동생 병수발을 시작하셨다.
올케와 조카들이 동생 아픈 모습 보고 서로 힘들어 할 것을 미리 생각하셨다.
아프면 실컷 소리지르고 아이들에게 아프고 힘들어하는 아빠의 모습이 아니라
밝고 유쾌하고 유머 가득했던 아빠의 모습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 하길 바라셨다.
대신, 엄마는 자신의 아들을 끝까지 책임지셨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끈끈한 형재애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가끔 조카들을 챙기고 얼굴을 보러 들리거나 전화 통화를 하긴 했지만, 그냥 멀리 떨어져 있었다.
마음속으로 괴롭고 미안하고 기도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내가 책임을 질 일은 하지 않았다.
아픈 형제가 있는 경우에는 나를 완전히 희생하거나
아니면 나와 내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하게 선을 긋는 것, 둘중에 하나다. 어정쩡하게는 안된다.
나는 물론 후자에 가까웠다. 그런 나조차도, 형제라고 그 애가 가고 나니 마음이 쓰려서 문득 문들 울컥하고 허무하고 몸에 일부가 떨어져 나간 느낌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어떨까? 나는 그 슬픔의 무게를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자식을 잃는 다는것... 자신이 낳아 기른 그 고운 아기를 잃는 다는것..
어릴때 그 환하게 웃던 얼굴이 떠올라 사는게 과연 사는걸까?
두 명의 다른 자녀가 있다고 해도, 과연 엄마가 그 슬픔을 견딜 수 있을까?
나는 사실 동생보다 엄마가 걱정이 되어서 매일 전화를 했다.
엄마는 항상 목소리에 에너지가 있다. 이런일을 겪고도 엄마의 목소리는 맑고 곱고 부드럽다.
엄마는 어떤날은 괜찮기도 하고, 어떤날은 울다가 받은듯 목소리가 잠기기도 했다.
엄마에게 어떠냐고 물으면 엄마는 이야기 했다.
"장군이가 너무 너무 보고 싶을때는 그애가 아파했던 날들을 떠올려.
너무 아프고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볼 때면 하느님께 기도했어.
제발 내 아들을 안 아프게 해 달라고,
이렇게 아플거면 차라리 하느님 품으로 데려가시라고..
이제 그애가 아프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좀 편해져.
나는 그애가 천국으로 갔다고 생각해.
하늘나라 가기전 90일 정도 상태도 점점 좋아졌고,
나에게 전화할때마다 매일 엄마, 나 행복해요. 엄마도 행복하세요. 사랑해요. 이런 말을 했어.
진짜 얼굴 빛이 달랐어.
덕분에 사랑이 가득해서 가족들에게도 매일 사랑한다고 하고,
아이들에게 축복해주고 가기 전에 사랑만 주고 갔어.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그애는 젊은 나이에 죽었으니 안타깝지.
그런데 하느님의 시간으로 보면 그런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 고통중에서도 그 고통을 전쟁이 일어나는 나라를 위해서 봉헌했고,
자신의 동생과 누나와 엄마인 나를 위해 기도했어.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묵주기도를 하면서 미소를 지으던 그애의 얼굴이 떠올라.
그 고통중에서 자신의 영혼을 지키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던 내 아들을 존경해.
중요한 건 자신의 영혼을 파괴시키지 않고 고귀하게 지키는 거야.
우리가 생각하기에 오래산다고, 부자로 산다고 그렇게 영혼이 지켜지는게 아니란다.
그애는 분명히 천국에 있어. "
영혼을 지킨다..그 고통중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하늘나라로 갈 수 있었던건 엄마의 기도와 사랑때문이었을 거다.
마지막까지 병원에서 엄마를 부르며 불안해 하던 그 손을 잡고 위로해 줬던건 엄마니까.
"오늘 오면서 하늘을 보니 진짜 별이 많더라.
해균이는 저기 하늘나라에서 별이 되었을거야. 그래서 이야기 했지.
해균아, 너 별이 되었니? 거기서 지켜보고 있지? 잘 지내! 엄마도 잘 지내! 사랑해! 이렇게 말야.
그러니 너도 울지마. 해균이는 별이 되었으니까."
2022년 11월 15일, 내 첫째 동생은 그날 새벽 하늘의 별이 되었다.
어릴때부터 나의 가장 큰 라이벌이었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속에서 살았던 그애.
나에게 사랑하는 조카 두 명을남기고 카톡 마지막 메세지에 "누나 사랑해"라는 말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갔다.
나는 아직까지 그애가 많이 보고싶고, 미안하고 많이 슬프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일상을 살아가고 감사하고, 문득 문득 행복하고 자주 웃는다.
그애의 죽음이 슬프지만, 불행이나 슬픔에 잠식되어 살고 있지는 않다. 씩씩하게 살고 있다.
이 동네는 밤에 별이 잘 보이지 않지만...언젠간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게 된다면 인사할거다.
내 동생 별은 어디 있을까?
그애의 몸처럼 제일 뚱뚱한 별을 찾아봐야겠다. 평소에 먹는 것을 좋아하던 녀석에게 말해줘야지.
“야! 별은 뭘 먹고 사냐? 뭐가 되었든. 실컷 먹어라!
그리고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