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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라 Jun 16. 2024

인생을 '누리는' 방법

가진것을 가치있게 나누는 지혜

엄마는 그곳을  '비움터'리고 불렀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 엄마는 서울에 있는 집을 팔아서, 일부는 남양주에 아파트를 경매로 장만하시고,

나머지는 저축해 두었다가 경기도에 마당딸린 집을 사셨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강가 바로 앞에 있던 집이었다.

말이 집이지 처음 그곳은 근처 건설을 하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숙소였고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가건물이었다.


마당도, 집고 치워야 할 쓰레기가 잔뜩이던 곳을 왜 사셨는지 모를 우리 남매들은 

엄마의 일이라고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엄마는 지인들을 동원하시기도 했지만 거의 혼자서 하나 하나 집을 고치시고

마당에 꽃도 심과 나무도 심으시면서 점점 예쁘게 가꾸셨다.

어떤 날은 거실 창문 앞으로 데크가 설치되어 있었고 또 어느날은 마당에 평상이 놓여져 있었다.

갈 때마다 조금씩 바뀌어 가고 점점 엄마의 손길이 들어서 제대로 모습을 갖춘 집은 날이 갈 수록 근사해졌다.

엄마는 주말마다 지인들을 초대하시기도 했고, 나중에는 지인들이 알음 알음으로 연락해서

가족단위나 여러 단체 단위로 머물러 가기도 했다.

그 당시만해도 팬션이나 리조트가 대세가 아니었던 시절이라

서울 근교에 어디 가서 쉴 만한 장소가 있다는데 지인들은 많이 기뻐들 하셨다.


넓은 마당과 바로 앞에 보이는 강과 주변에 별다른 소음 시설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주말마다 엄마는 기도회를 하기도 하시고 바베큐 파티도 하면서

그 곳을 제대로 누리셨다.



나는 그곳을 일년에 한 두번이나 겨우 찾을까 말까 했다.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그당시에는 내가 어디 한적한데서 쉴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도 했고

엄마가 마련한 곳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가 좋아서 벌인 일이시니 엄마가 알아서 잘 하시겠지 하는 마음 반,

내 일에 바빠서 무관심한 마음 반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쩌다가 일년에 한 두번 가족모임을 하러 갈때면

엄마가 가꾸신 꽃밭이나 강가 바로 앞에 펼쳐지는 뷰를 볼 때마다 감탄하곤 했다.

우리 남매들의 자녀들이 어렸던 시절이라 그곳에 모일때면 항상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났고, 

엄마가 잔뜩 준비하신 음식을 펼치며

동생들은 고기를 구웠다. 

즐겁게 웃고 이야기 하던 그 장소에서는 

말 그대로 걱정이 사라지는 듯이 마음이 비워졌다.


비움터에 있던 평상과 그곳에서 보던 뷰


엄마의 데크나 평상은 누군가의 기부였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엄마가 힘들게 번 돈들의 쓰임이었다.

엄마는 60이 넘은 나이에도 때로는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노인 요양보호사로 생계를 위해서 일하셨다.

그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엄마는 비움터를 20여년 가까이 유지하셨다.

엄마의 비움터 앞에 가건물이 세워져서 강 뷰를 모두 가리자, 기존의 비움터를 팔고

강이 바로 보이는 땅을 사셔서 집을 새로 짓기도 하셨다.

집을 새로 짓는다는게 말이 쉽지, 환갑이 넘은 나이로 자식들 도움 없이 모든 것을 알아보고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쓰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끝내 새로 집을 지으셨고, 

엄마의 바램대로 바로 앞의 이 보이는 큰 창문으로 흐르는 강물이 보이는 아름다움 뷰를 가졌었다. 

하지만 그 무렵 동생이 아프기 시작했고, 

엄마는 신경쓰실 일이  많으셨는지 20년이 넘게 누리셨던 엄마의 비움터를 파셨다.

새 주인은 돈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엄마가 힘들게 지은 집을 허물고 

그 강의 뷰가 더 잘 보이도록 높은 뷰를 지었다고 한다.


가끔 예전 사진을 들추다가 비움터에서 온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본다.

그 시절의 엄마와 어렸던 내 딸과 조카들, 건강했던 내 동생, 

걱정 없었던 막내 동생 부부의 얼굴 뒤로

낡았지만 아름다웠던 비움터의 모습에 마음 한켠이 아리고 그곳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엄마는 비움터에서 가끔 이런말을 하셨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이렇게 비움터를 하는걸 보고 

내가 재산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하지만 이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부자지만 인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 

엄마는 가난할지 모르지만, 내 얼마 되지 않는 재산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해줄 수 있고 이렇게 온전히 내것을 누릴 수 있다는게 참 감사해.

인생은 즐기는자, 누리는자의 것이란다.“


동생이 하늘나라로 떠나기 얼마 전에 엄마는 비움터를 판 돈을 은행에 넣지 않으시고

이번에는 가평에 작은 땅과 농막을 사셔서 작은 공간을 마련하셨다.

오랜 세월동안 엄마는 땅을 사고, 집을 마련하고, 꾸미면서

그 공간을 누리는 법을 터득하셨다.

이제는 가끔 가평을 찾을때마다 엄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것 같다.

그 공간에 해먹을 달아놓고 평화롭게 누워있으면 그 시간을, 

그 공간을, 그리고 그 모든 자연을 누리는것 같다.

진짜.. 인생은 누리는 자의 것이다.













가평의 새로운 농막집 

https://blog.naver.com/shela5/223481357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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