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풍뎅이 Jan 30. 2020

엄마는 왜 맨날 검은 바지만 입어?


- 엄마는 왜 맨날 검은 바지만 입어?


등원하는 길에 아이가 묻는다. 등원시킬 때 매일 검정 레깅스 두 개와 남편 티셔츠 몇 개를 돌려 입으며 검정 롱 패딩으로 쏙 가리고 다니는데 오늘은 내 모습을 유심히 보더니 저런 말을 한다.


- 엄마는 검은색을 좋아해.


사실 원피스 라던가 니트, 슬랙스 같은 것들은 아침에 차려입기 귀찮다. 오늘은 민낯으로 나갔는데 화장 안 한 얼굴엔 그런 옷들이 맞지 않는 느낌도 든다. 게다가 집에 오면 스트레칭도 해야 돼서 레깅스가 편하고 아무리 롱 패딩이 가려준다 해도 양심상 엉덩이는 가리고픈 마음에 남편의 따뜻하고 큰 티를 입는다. 


난 아가씨 적부터 무채색을 좋아했다. 회색. 검은색. 갈색 어쩌다 아이보리 색. 작년 늦가을 무렵 겨울옷을 꺼내놓으려고 옷장 정리를 했었다. 겨울 니트를 다 끄집어냈더니 온통 검은색이고 딱하나 진한 빨간색 니트가 있었다. 심지어 검은색 옷들은 비슷한 디자인의 목폴라 티였다. 아마 추위를 많이 타서 목이 따뜻해야지 하는 생각에 목폴라티만 사들인 것 같다.  지금도 옷을 살 땐 '그래도 제일 무난한 색은 검정이지 딱 기본이잖아' 라며 검정을 많이 선택하게 된다. 사람은 참 쉽게 변하질 않는다는 걸 옷 사면서 느낀다.


반면 우리 아이는 분홍색을, 분홍도 색이 진할수록 더 좋아하는데 원하는 취향대로 사주다 보니 아우터 빼고는 분홍 옷이 많다. 요즘 신는 신발도 빨강과 분홍색이다. 남편과 종종 제발 분홍색 좀 안 샀으면 좋겠다 못마땅하게 소근 거리기도 했다. 무조건 분홍만 입겠다고 아침에 전쟁을 치르는데  "다른 색들이 슬퍼하잖아. 다른 색들도 예뻐해 주자. 다른 색도 엄청 예뻐"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그 말을 하고 나면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은 기분이 든다. 가만히 곱씹어보면 다른 색을 안 좋아하는 건 딸아이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라 결국 말의 끝은 날 가리키고 있다. 


이제 겨우 13킬로그램이 조금 넘은 작은 아이에게도 취향은 있다. 난 내 얼굴에, 그리고 나이에도 가장 무난한 무채색을 좋아하고 아이는 뽀얀 제 얼굴에 가장 잘 맞는 분홍색에 꽂혔을 뿐이다. 그러니 서로의 취향은 존중해 주기로, 그래도 가끔 우리 둘 다 다른 색도 예뻐해 줄 겸 새로운 옷을 입어보는 도전도 해봤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일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