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큰 변화는 없지만 자잘한 일상을 글로 적던 나는 요즘은 똑같은 하루를 보내서 쓸게 없다는 생각, 그리고 아이 보느라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쓰기를 게을리하고 있다. 일곱 시 반~여덟 시 사이에 일어나는 아이의 엄마 엄마 소리로 시작하는 아침, 가볍게 먹는 아침밥. 역할놀이(주로 난 고양이나 콩순이에 나오는 콩콩이 역할을 한다..)를 하고 나면 지루함에 몸부림치는 딸과 나를 위한 tv 시청, 밥은 이제 그만 하고 싶은데 굶길 수는 없어 겨우 짜내듯이 점심상까지 차려내고 나면 따분하기 짝이 없는 오후가 시작된다.
너무 집에만 있어 가뜩이나 마르고 활동하는 걸 싫어하는 아이의 체력이 걱정되어 이틀에 한 번은 가벼운 동네 산책을 하고 있다. 텅 빈 놀이터를 보면 괜스레 마음이 아프다. 아마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 여기저기 피어나는 노란 산수유 꽃망울을 봐서 더 그런 것 같다.
자주 가던 카페도 발길을 끊은 지 3주가 지나간다. 목요일쯤엔가 아이를 데리고 오래간만에 커피를 사러 카페에 들렀다. 늘 친절한 점원은 조카들도 어린이집에 안 가고 있다는 얘기를 했고 난 너무 답답하고 유치원 휴업이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며 커피를 받았다.
"마스크 쓰고 일하기 불편하시겠어요."
"아. 처음에는 엄청 이상하고 답답했는데 이제 적응이 됐나 봐요. 안 불편해요."
얼굴의 반은 가려져 있었지만 빼꼼히 나온 눈은 환히 웃고 있었다. 아이에게 살뜰하게 잘 가라고 인사하는 점원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역시 카페는, 커피는 사랑이다. 고작 오분도 안 되는 시간을 머무르며 라테 한잔 받아왔더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자주 가서 글을 쓰고 책도 읽고 이것저것을 공책에 끼적거리던 그 장소가 오랜 친구와 재회한 것 같은 반가움과 익숙한 그리움을 주다니.
이렇게 산책하며 커피를 사 오는 일은 흔치 않다. 대부분은 휙 동네만 돌고 서둘러 집으로 온다. 혹시 모를 감염을 예방하는 것인데, 하루 한잔 꼭 커피를 마시는 습관 탓에 카페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초반엔 스틱커피를 타 먹었는데 영 성에 차지 않고 시원한 '아이스라떼'의 맛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홈카페처럼 나도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먹자며 요즘 한참 유행 중인 '달고나 커피'에 도전했다. 하지만 계속된 아이의 참견과 팔이 빠질 것 같은 고통에 바로 포기해버렸다.
그래서 커피를 배달시켜 봤다. 커피=무조건 카페 가서 먹는 것 이란 공식 아닌 공식을 세웠던 나인데 배달 커피는 어떤 맛일까 궁금하고 워낙 후기가 좋은 곳이 많아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 아이스라떼와 딸기청 우유, 생크림 와플을 주문했다. 비싼 배달료에 망설였지만 커피 수혈도 하고 아이 간식도 먹일 겸이란 합리화를 하며.
산책 후 사들고 오는 커피만큼이나 현관문 앞에 살포시 놓인 배달커피는 역시나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아가 맛있는 거 왔어." 소리에 쏜살같이 달려 나와 본인 먹을 것을 야무지게 챙기는 아이. 같이 식탁 앞에 앉아 난 커피 아이는 딸기우유를 마시며 생크림 와플의 생크림만 찍어먹는다.
하루 중 가장 달콤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