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인선생님의 상담 신청서를 받아 들고
성문종합영어나 맨투맨이 아닌 리더스 뱅크, 리딩 튜터와 같은 독해집으로 영어 공부를 했던 우리 세대의 학부모들한테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같은 격언들을 기억한다는 이유로 노땅 취급을 받는다면.
온갖 참고서, 문제집, 깜지 노트 겉장에 씌여질듯한 명언들. 햇빛이 쨍한 학교 운동장, 체력 약한 여학생들 한둘은 픽픽 쓰러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되던 월요일 아침 조회에 나올법한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
소년이여, 야망을 갸져라!
기말고사가 끝나고 며칠 후 아이가 담임 선생님의 수시 입시 상담 신청서를 내밀었다.
말이 짧은 아들.
'여기, 월요일까지 제출'
담임선생님이 보낸 상당신청서 용지 앞장에는 지원하고 싶은 대학, 학과, 전형 방식, 50%~70% 컷의 점수 등을 자세하게 작성하고, 뒷장에는 상담 신청 날짜와 상담 시 주요하게 질문하고픈 내용을 적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주말 동안 고민하고 작성해서 제출할 일이던가?
나는 아이에게 월요일 제출은 힘들 것 같다. 하루 늦춰서 화요일에 제출하자 했다.
가고 싶은 대학이야 세고 쌨지.
가고 싶은 학과 전공이야 쌔고 쌨지.
그런데
그 마음을 모두 표현하고자 하니 이건 뭐 나 자신이 너무 겸언쩍여진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가 슬퍼졌다.
우리는 자녀에게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인가?
우리는 제자에게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고 말할 수 있는 교사인가?
우리 아이가 가진 내신 점수와 모의고사 점수를 바탕으로 어느 대학의 어느 전형이 더 적합한지를 산술적으로 따지는 입시.
우리 아이는 경쟁의식이 없는편이고, 어느 대학이든 상관없다는 기조를 가지고는 있지만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성적의 학생들이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을 어름 잡아 가늠하고는 있었다.
상담신청서를 작성하면서
입시 진학 사이트에 일정액의 돈을 지불했다.
후회했냐고? 노노노노~ 너무나 많은 정보에 머리가 어질, 가슴이 훌렁~, 또 다른 세상.
아이가 3학년 마지막 내신 '언어와 매체'에서 낮은 등급을 받았지만, 그래도 기대하는 바가 있었는데 아니었다. 더군다나 대학별로 내신 산출 방식이 다른데 가입한 사이트에서는 바로바로 대학별 내신점수를 비교할 수 있었다. 아이고~ 오히려 안정권이라고 생각했던 대학의 전형에서 난관이 예측됐다.
어렵게 어렵게 상담신청서를 작성했다.
가입한 사이트에서 우리 아이의 생활기록부까지 AI로 분석해서 점수를 매겨주었다.(우리 아이의 생기부 점수는 AI의 평가대로라면 비슷한 내신 점수대의 학생에 비해 하위권이었다. 나름 열심히 진로, 세특, 동아리 활동 내용을 채웠는데...ㅠㅠ특히 공동체 영역에서 점수가 낮았다. 3년 내내 교실 분리수거를 하고, 동아리나 조별활동에서 벌어지는 온갖 문제를 도맡아 해결하곤 했는데..그저 반장, 부장이 아니리고 공동체 점수가 낮은건가?)
남편한테 얘기를 했다.
태평한 남편은..
'걱정하지 마, 대학 입시에는 몰라도 실제 사회생활에서는 00이 같은 사람을 더 좋아해'
아무튼
담임선생님의 수시 상담 신처서를 작성한다.
야망....
자녀의 입시를 겪어내는 아줌마들이여 야망을 가져봐요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자녀도 서울대생이 될 수 있다~
헛소리. ㅋㅋㅋ
야망을 가질 수 없는 사회.
이걸 좋다고 해야 해? 나쁘다고 해야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스템의 힘을 믿는 사림이니까..
좋다고 보자~
그래... 그러니까... 야망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