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민주주의인권법
홍콩 시위 관련해서 한 번 정리해 보도록 하죠. 홍콩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분들에게는 아쉬운 내용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11월 11일 경찰의 총격 사건으로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했었는데요. 사태가 악화돼서 시위가 격화되고, 어쩔 수 없이 중국이 군사 개입에 들어가면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연합해서 개입에 나서는 선까지 갈 수도 있으니까요. 엄청난 불확실성이 생길만한 일이었는데요.
우려했던 군부대 투입까지 진행되진 않았습니다. 저도 홍콩에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현지의 분위기가 어떤지 확인을 해 봤었는데, 의외로 센트럴 쪽에서 거주하고 근무하는 분들은 아예 별 영향이 없다는 정도의 피드백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지난 일요일 대규모 경찰이 홍콩이공대를 포위하는 작전을 시작하면서 결국 시위는 끝나가고, 사태가 점점 마무리를 향해 가는 것 같습니다. 중국이 군사 개입을 했다면 자국민 보호의 문제라던가 미국도 개입할 명분이 조금 더 생겼을 텐데 일단 그 선까지 안 갔으니 내정의 문제에 감놔라 배놔라 하긴 힘들죠. 대규모 경찰 작전에 대해 홍콩 시민들이 오히려 대규모 시위로 맞선다면 사태가 악화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더군요. 음….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셨으리라 믿고.
항셍 지수는 보시다시피 11일부터 13일까지 총 6%가 좀 못되게 빠졌었지만 14일부터 반등을 시작했습니다. 전화로 확인한 현지 분위기도 그렇고, 실제 주가의 움직임도 그렇고 시장이 사태가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1911200297Y
그런데 어제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중국 공산당은 홍콩과의 약속을 존중해야 한다"라며 "이들은 홍콩반환협정에서 약속된 자유와 진보를 원할 뿐이다"라고 뭔가 다 늦게 뜬금포를 날리더니, 오늘 새벽엔 홍콩인권민주주의법안이 미국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6월에 반송중 시위가 시작되자 미국이 중국 당국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로 즉각 등장했던 게 이 법안이었는데요. 이미 9월, 10월의 분위기로 보아 통과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죠. 뭐랄까 김 다 빠진 콜라병뚜껑을 여는 그런 느낌입니다. 한 열흘 일찍 하던가. 아니나 다를까. 오늘 홍콩 외환시장도, 증시도, 상해 증시나 위안화 환율도 모두 저 발표의 영향은 크게 받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물론 실제 트럼프가 서명하고 발효되면 어떨지는 그 때가서 또 봐야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불확실성이지만 시장은 차분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가 그다지 대단할 게 없나요? 이건 좀 궁금한데 잘 아시는 분이 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번 홍콩 시위를 1987년 우리나라의 6월 항쟁에 감정 이입하시는 분들이 계시던데, 직선제를 요구한다는 점만 빼면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과 대립관계가 아니었다는 게 아주 큰 차이입니다. 안보상의 이유로 미국은 우리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미국이 전두환 정권에 압력을 가할 경우 그 압력이 먹힐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볼 수 있다는 거죠. 시위가 커지고 혼란이 극심해진다면 미국이 전두환 정권에 압력을 가할 수 있고, 전두환 정권은 그걸 나 몰라라 할 수 없었죠.
중국은 다르죠. 이미 미국과 대립 관계에 서 있죠. 미국이 압력을 가한다? 이건 오히려 중국을 내부적으로 더 똘똘 뭉치게 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외적을 물리치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자 이렇게 말이죠. 그래서 미국이 적극적으로 압력을 가하기 힘듭니다. 설사 압력을 가한다 해도 그 결과가 어떨지 자신이 없으니까요. 미국 역시 중국의 국민들이 더 동요하기를 바라며 여러 가지 카드를 만지작거리겠지만 홍콩 시위대가 기대하는 그 정도의 카드는 없어 보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런 점에서 어쩌면 더 중요합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는 대통령 직선제를 거의 모든 국민이 더 선호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을 겁니다. 물론 모든 국민들의 생각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적어도 부패한 권력층이나 아예 무관심한 사람들을 뺀다면 직선제를 굳이 반대할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해도 무리는 없었죠. 실제 413 호헌 조치 이후 대학생들의 시위가 거세지면서 일반 시민들까지 시위에 동참했으니까요. 그런데, 중국은 조금 다릅니다.
국가의 분열 가능성에 대한 반감이 중국 본토의 일반 국민들에게까지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합니다. 언뜻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홍콩의 시위가 중국 본토의 국민들에게도 민주화 요구를 강하게 불러일으킬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1989년에 비해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한 중국 본토인들의 생각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중국 본토에서 만나봤던 사람들을 예로 들자면, 오히려 우리보다 중국 내부의 사정에 더 어두운 또는 무관심한 것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복잡한 정치 이런 것보다는 그저 우리네와 비슷하게 자녀 교육이나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기와 같은 것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습니다. 정보 통제의 영향인가 싶기도 했지만 또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죠. 만약 1987년 직선제의 이슈가 제주도의 독립 자치였다면 어땠을까요? 그 결과에 따라 강원도가 강원국으로 독립하겠다는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거나 했다면 말이죠. 서울의 일반 시민들이 시위에 동참할 동력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요?
홍콩 시위대는 미국과 영국의 국기를 들고, 미국의 국가를 불러가면서, SOS 사인을 보내 가면서 미국이 중국 정부에 더 강한 압력을 가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정부에 이게 먹히려면 중국 국민들이 동요해야 합니다. 중국 본토는 고사하고 홍콩 증시만 봐도 그렇게 동요한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홍콩인권법의 통과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판단할만한 데이터가 부족하니 일단 시장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데이터를 찾아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