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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Jul 02. 2023

여보, 나, 설레는 사람이 있어

      

“여보, 나 연애하고 싶어.”

“응... 그러면... 다시 태어나.”

몇 해 전 남편과 산책하다 나눈 대화. 

‘그런데 여보, 나, 설레는 사람이 있어.’

앞서 걷는 남편을 따라가며 혼잣말을 했다.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고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했을 때 나의 연애 전적을 속속들이 아는 친구들일수록 축하보다 앞서 조심스럽게 걱정의 말을 했다. 별나도록 부지런한 나의 연애 세포가 결혼과 함께 저 깊고 깊은 지하 감옥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영영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었다. “당연하지!” 결혼 앞에서 나는 쿨하게 연 애세포와 안녕을 고했고 얼마 안 가 결혼했다. 남편과는 평생 ‘연애하듯’ 살자며 손가락 걸고 도장을 찍었다. 

 결혼생활을 ‘연애하듯’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손가락 도장은 어떤 효력도 발휘할 수 없다는 걸 그때의 우린 정말 몰랐을까? 일 년 정도 신혼 기간을 지내고 임신, 출산, 양육의 시간을 보내며 우린 ‘진짜 가족’이 되었고 가족끼리는 연애하고 그러는 거 아니니까, 우리의 ‘연예하듯’은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다. 더불어 설렘이니 들뜸이니 달달함이니 열렬함이니 하는 감정도 함께 사라졌다. 딱히 말은 안했지만, 남편도 비슷한 시간을 보냈겠지. 당시에는 아쉽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우리만 그런 거 아니니까. 결혼하고 자식 낳으면 대부분 이렇게 사니까.      


  며칠 전 우연히 본 기사, ‘유부녀인데 동료 남자 직원(유부남)이 신경 쓰여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워킹맘 A씨 이야기. ‘상대방은 아무 생각 없는데 저 혼자 제 삶에 작은 활력소가 생긴 느낌이다. 어떻게 해보고 싶다 이런 건 아니고 그럴 마음도 전혀 없다. 그냥 이렇게 마음으로 연예인 보듯이 지내는 것도 안 되는 거냐’ 라는 내용으로 글을 올렸고 이에 대해 누리꾼들의 반응이 뜨겁다는 내용이다. 조회 수 6만을 넘어 갔단다. 

 뜨끔했다. 그동안 내게 설렘 유발로 ‘신경 쓰였던’ 사람이 촤라락 생각났다. 대부분 만인의 연인인 연예인이었지만, 나도 가끔은 A씨처럼 알고 지내던, 더 가끔은 처음 만난 일반인에게 같은 이유로 신경 쓰였던 적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 또한 A씨처럼 어떻게 해보고 싶다 이런 거 아니었고, 연예인 보듯 지냈지만 일정 기간 삶에 작(지만은 않)은 활력소가 되어 주었던 건 사실인데. 이게 뜨거울 내용이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안 되나?’ ‘마음속에 설레는 사람 한 명쯤 데리고 사는 거 안 되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그걸로 얼마간은 설레고 들뜨고 달달해지고 뜨거워지는 나를 보는 일이 내게는 여전히 콩닥콩닥 살아있는 연애 세포를 만나는 유일한 창구인데. 그러려면 차라리 남편과 헤어지라는 내용의 댓글도 있던데 그게 뭐 그렇게까지 해야만 가능한 일일까? 내가 보기에 나의 남편은 ‘하트시그널’ ‘나는 솔로’ ‘솔로 지옥’ ‘돌싱글즈’ 같은 커플 매칭 프로를 빼놓지 않고 보던데 남편에게는 그런 프로들이 연애 세포를 소환해 보는 창구가 아닐지...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측을 해 본다. (솔직히 말해봐, 맞지?) 


 어쩌면 A씨 글에 달린 뜨거운 반응 중 나와 비슷한 뜨끔 반응자가 꽤 많지 않을까? 공감도 가고 누구보다 이해도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응원의 댓글까지는 달지 못하는, 그런 소심한 뜨끔 반응자. (솔직히 말해봐, 맞지?)  이글을 통해 나와 나의 남편을 비롯한 소심한 뜨끔 반응자들에게  “거봐요, 우리 안에 여전히 이렇게 연애 세포들이 남아있다니까요. 그게 뭐 그렇게 숨길 일인가요? 안 그래도 나이 들어 자꾸만 세포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결국엔 연애 세포든 뭐든 다 사라질 텐데... 각자의 방식대로 남아있는 연애 세포를 반갑게 사랑해주며 살면 안 될까요?” 말하고 싶다. 이 글에 뜨거운 반응이 달리든 아니든, 욕을 먹든 아니든, 난 꾸준히 소심하게나마 나의 연애 세포를 만나며 살 거 같다. 그건 마치 매일 아침 나를 깨워주고 화장실도 가게 해 주는 뜨거운 아메리카노 같은 것. 끝까지 포기 못 해,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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