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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Jun 05. 2023

월요일 저녁에
같이 빤쓰 내릴 분 구함

 나는 매우 정상, 나의 성별과 나이만 들어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되는 삶을 충실하게 단계 단계 밟으며 살고 있다. 이성과(만) 연애를 하다 결혼했고, 1년 정도 신혼을 누리다 출산을 했고 (아직) 이혼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꾸준한 정상 범위. 이십 대 중반, 어른들이 칭찬해 마지않는 ‘꽃다운’ 나이에 결혼했고 무척이나 쌩쌩하고 건강한 자궁으로 한방에 둘을 출산했으니 정상의 범주 안에서도 꽤 상위 퍼센트 안에 드는 매우 정상일 거다. 

 모든 게 당연했다. 다른 삶은 상상해 본 적도, 할 필요도 없었다. 나에게 ‘다른 삶’은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와 함께 인식되는 삶이었다. 내가 결혼하고 바로 뒤이어 결혼할 거 같았던 친구들의 결혼이 점점 늦어졌다. 친구들이 ‘노처녀’로 묶여 웃음거리가 되거나 주변의 걱정을 사는 모습, ‘노령 출산’을 하느라 대형병원을 찾아다니는 모습, 어렵게 한 결혼이 이혼으로 끝을 맺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내게는 누가 채웠는지 모를 ‘매우 정상’이라는 완장이 채워졌다. 싫지 않았다. 완장은 내 신분과 지위의 표식이 되어 주었다. 완장만으로도 사람들은 나를 안정된, (정신적으로) 건강한, 모범적인, 성실한, 노력하는 사람으로 인정해 주었다. 원한 적 없지만 가지고 보니 꽤 유용한 프리패스권, 누군가에게는 내가 가진 권위가 되기도 했다.       


“그럼... 언니... 라고 부르나?”

“응,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지금은 서로 이름으로 불러.”

순간적으로 엉켜버린 생각 더미를 뚫고 뜬금없는 질문이 나와 버렸다. 

 얼마 전, 딸이 동성의 연인과 연애 중이라는 고백을 했다. 잠깐의 버퍼링 후 요란하게 울려대는 경고음. 삐이- 삐이- 안전거리 내 이상 생명체 출현, 적색경보! 적색경보! ‘믿거나 말거나’ 같은 프로에 나오는 외계인 이야기처럼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지금 당신 옆을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외계인이, 아니 외계인 아니고 동성애를 하는 사람이 내 앞에 있다. 내 앞에는 딸이 있는데... 그러니까... 갸가 갸라는 얘기. 완장을 찬 팔이 욱신거린다. 정상의 권위로 이상의 범주 속 딸을 너그러이 인정해 주며 서둘러 보기 좋게 봉합한다.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핸드폰 검색창을 연다. ‘동·성·애’ 세 글자를 친다. 한참 스크롤을 내려 검색을 하다 딸이 남자와 여자 모두에 끌린다고 했던 말을 생각한다. 그런 경우는 검색창에 뭐라고 쳐야 하나 고민한다. 한참 만에 ‘양·성·애’ 세 글자를 떠올린다. 검색을 타고 또 검색, 검색, 검색... 내가 이렇게나 몰랐구나 싶다. 이렇게 몰랐구나 보다는 아는 게 별로(거의) 없다는 말이 맞다.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를 알지 못하는 상태. 그게 지금까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되는 사람, 매우 정상이니까.    


  LGBT? 음, 이건 안다. 그럼, 딸은 아마도 B(bisexual). 어? 이건 뭔가, LGBTQ? 아, 성적 지향을 확립하지 못하고 스스로 질문하는(questioning) 사람 또는 퀴어(qeer). 요거까지는 몰랐다. 스크롤을 조금 더 내리니 LGBTQ에 I(intersex)가 붙고, A(asexual)도 붙는다. 아... 어렵다. 소리 내 읽어본다. 반복해 읽어도 입에 잘 붙지 않는다. ‘다른 나라 말’이라 그런가 보다. 창을 닫고 새로운 글을 읽는다. 바이너리젠더, 시스젠더, 바이젠더, 에이젠더, 팬젠더, 젠더퀴어, MTF, FTM, 논바이너리, 데미젠더... 헤테로로맨틱, 바이로맨틱, 호모로맨틱, 에이로맨틱... 로맨틱은 감정적 끌림이고 성적 끌림을 말할때는 로맨틱 대신 섹슈얼로 바꾸어 써야 하니까 헤테로.. 섹슈얼, 바이로.. 섹슈얼... 아... 뭐 이렇게 복잡하냐. 존나 어렵구나, 정상 밖의 사랑.      


 고추를(먹는 고추 아니고. 아, 이것도 먹는다고 표현하긴 하는데... 쨋든, 성기가 맞다.) 방생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또 멋지다며 그림으로 그리는 사람이 있다. 그림 속에는 서핑하는 고추(먹는 고추 모양 아니고. 아, 이것도 먹는다고 표현하긴 하는데... 쨋든, 성기 모양이다.)가 파도에 포옥 안겨있다. 둘(고추와 파도)의 표정에서 가득한 충족감이 느껴진다. 남의 고추에 충족감을 느낀다는 게 어쩐지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한참 동안 사랑스러운 고추의 표정에 눈이 머문다. 상당한 부분까지 부지런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얼마나 부지런하냐면 심지어 보지(see의 의미가 아니라 성기가 맞다.)까지 부지런해서 카카오톡 이름이 ‘보지런-보지가 부지런’이다. 그는 최근에도 꾸준히 부지런한, 아니 보지런한 일상을 지내는 중인 것 같다. ‘어중간아모리(풀리아모리와 모노아모리 사이 어디쯤)’라는 자체 제작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 자체 제작 발표회 날 많은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디어 찾았다며 너도나도 ‘어중간아모리’를 쓰려는 바람에 특허등록이 시급해졌다, 글을 쓸 때 늘 서두에 자신의 이야기가 결코 독자의 안전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밝히는 사람이 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글을 읽다 보면 안전이고 뭐고 그딴 것 하나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놀람, 경악, 분노, 슬픔, 안타까움...을 따라 글을 따라가면 특별한 정체를 가진, 특별히 다정한 그가 헤 웃고 있다. 꽤나 문란해 보이는 외모를 가진, 제대로 문란해지고 싶다는 사람과 전혀 문란 같은 거 싫어할 거 같은 외모를 가진, 역시나 제대로 문란해지고 싶다는 사람이 함께 있다. 굶주린 사람은 고상하게 식사할 수 없다며 게걸스러운 섹스를 고백하는 사람이 있고, 소설의 형식을 빌려 누군가에게 옴팡 빠진 오줌마려운 마음을 고백하는 유부녀가 있다. 아, 두 명의 애인과 살고 있다고 방방곡곡에 알리고 다니는 사람이 이끄미다. 경험한 적 없는 장관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이곳, 최근까지 완장 차고 ‘에헴~’하던 내가 얼마나 쪼.쪼.쪼랩 인간인지를 매주 새롭고 뜨겁게 배우고 있는 글방 이야기다.      


 글방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안전거리 내 이상 생명체 출현’으로 요란하던 나의 비상등은 생전 처음 겪는 절대다수의 (어쩌면 모두) 이상 생명체들 때문에 쉬는 시간 (쉬는 시간에는 조금 더 노골적으로 출현하기도 한다)도 없이 혹사당하다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망가진 게 아쉽지 않았다. 집중하고 싶은데 정신 사나워져 아주 부숴버리려 했는데 잘 됐다 싶었다. 그런데 최근에 비상등이 망가진 게 아니라 내가 더 이상 ‘그들’을 ‘이상’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매 주 책을 읽고 함께 쓰고 나누며, ‘이상’으로 쉽게 라벨링 하는 완장 찬 세상에 대해 (그건 때때로 나), 내내 ‘이상’이 될지라도 여전히 사랑하고 싶고 자유하고 싶은 간절함에 대해, 서로의 용기 낸 ‘이상’한 목소리에 대해, 결국 빤쓰를 내리게 되는 ‘이상’한 서로의 욕망에 대해... 격하게 부비적 부비적 하는 중이다. 타인의 ‘이상’을 쓰다듬다 보면 어김없이 손끝에 내 것이 거치적거리고 그걸 살살 꺼내어 글을 쓴다. 한 주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일주일 내내 이쪽저쪽으로 비비다가 가까스로 오르가슴을 느끼는 기분이 든다. 하아;;; 이건 몹시도 중독적!          


 하지만 비상등이 울리지 않는 지금도 여전히 난 그들을 온전히 안다고, 이해한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들의 사랑을 비틀지 않고 제대로 바라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여전히 이렇게나 못하겠고 모르겠는 것투성이면서 아무렇게나 선 그어 버리는 사람, 그게 나다. 그래서 난 내내 월요일을 기다린다. 글방이 열리고 서로의 오르가슴을 나누는 시간. 속으로 감탄사인지 질책인지 모를 이 말을 몇 번이고 되뇐다. ‘이런 사랑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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