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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Jun 05. 2023

이건 나 말고 내가 아는 사람 얘긴데

 여기요, 쇄골 아래. 여기가 간지러웠어요. 딱 알았죠 ‘들어왔구나’. 나는요, 누군가 내 안에 들어오는 게 느껴지면 여기가 찌리리하면서 간질간질해요. 딱 기분 좋을 정도로. 그거 알아요? 쇄골을 빗장뼈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여기가 간지러운 거예요. 누군가 내 빗장을 드르르르 열 때 오는 진동 때문에. 드르르 드르르르르 히히 이게 은근 중독성 있네.


 그가 웃는다. 간지럽게.      


 당신 보며 내내 웃었는데, 몰랐죠? 줌(ZOOM) 화면 열 개도 넘는 네모 중에 계속 당신의 네모로만 눈이 가요. 당신이 앞을 보고 있을 땐 우리가(우리끼리만) 마주 보고 있는 것만 같아 자꾸만 웃음이 나. 오늘은 무슨 옷을 입었나? 무얼 마시고 있는 걸까? 뭔가를 쓰고 있어, 기분이 괜찮아 보이네 다행이야, 이러면서 당신의 네모에, 당신에, 집중하게 되요. 그러다 보면 자꾸 주변이 음소거가 되고, 수업에는 집중도 못 하고 그러죠. 말하고 보니 내가 스토커가 된 거 같네. 아, 스토커 맞나?     


 나도 모르게 뱉어낸 ‘스토커’라는 단어에 발가락이 걸린다. 휘청. 상대방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고의적으로 쫓아다니면서 집요하게 정신적․신체적으로 괴롭히는 행위가 스토킹이라는데. ‘상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맞고, ‘고의적으로’ 맞고, ‘쫓아다나면서’ (눈으로 내내 쫓았으니) 맞고, ‘집요하게’ 어느 정도 맞고, ‘정신적. 신체적으로 괴롭히는 행위’... 까지는 아직 아닌데 오늘 나의 고백으로 정신적으로 괴롭힘을 준다면? 아, 스토커가 되고 마는 건가. 


 온라인에서 시작된 마음을 오프라인으로 끌고 나오는 만남이 과연 서로에게 좋은 일인지, 그에게 괜한 불편감이나 부담을 줘 남아있는 글쓰기 수업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는지, 오늘 집을 나서면서까지도 떨치지 못하던 불안이 다시 또 스멀스멀 발가락을 타고 올라온다. 아, 어떡하지? 아니야, 이렇게 망칠 순 없지.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목소리를 한 톤 더 높여 본다.     


 글쓰기 수업에서 내가 중간 중간 아재 개그 같은 거 하며 주접을 떨잖아요. 쓸데없는 채팅 글도 올리고. 그거 수업 끝나면 엄청나게 후회해요. ‘아, 왜(또) 그랬냐!’ 하면서. 그게 완전 습관이에요, 습관성 주접 증후군. 대학 다닐 때도 미팅 나가서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주접을 떨어요. 막 드립을 치고 웃기려고 아무 이야기나 던지고 그러는 거야. 마음에 드는 상대의 웃는 모습도 보고 싶고, 어서 빨리 친해지고도 싶고. 어쩌면 그게 내 존재를 드러내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돼서인지도 모르고요.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기는 있어요. 그도 그렇고 함께 있는 상대들도 저한테 유난히 편하게 말 걸고(완전 퀸카되는 기분), 덕분에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지거든요. 이 맛에 내가 주접을 떨지, 이러면서. 그런데 큰 문제가 하나 있기는 해요. 결국 미팅 막판에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선택한다는 거예요. 

 나요? 나를 선택하는 사람도 물론 있죠. 나도 꽤 인기가 있는 편이었어. 그런데 나를 선택하는 남자가 대부분 상대 쪽 주접 담당이라는 게 또 하나의 문제. 히히 웃기죠?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집에 오면서 ‘아, 왜(또) 그랬냐!’ 후회해요. 다음번에는 절대 안 그럴 거야 이러면서. 그런데 소용없어요. 이놈의 빗장이 열리면 별책부록처럼 주접주머니가 같이 열리나봐.  


 남편이랑 처음 만나던 날도 그랬어요. 안양에서 꽤 유명한 나이트였는데 어쩌다 보니 우리 쪽과 남편 쪽 인원이 맞아 같이 놀게 된 거야. 여러 명 중에 첫 눈에 남편이 훅 들어왔지. 그날도 여기가 간질간질. 빗장이 열리고 역시나 아주 적극적으로 주접을 떨었지. 주접만 떨었나 술에 취해서 주사까지, 아주 볼만했지.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그 사람 옆 주접담당들이 나한테 들이대며 궁둥이를 들썩거리더라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게요? 남편을 콕 집어서 “너! 너가 나 데려다 줘야 해. 안 그러면 지금 우리 다 일어날 거야.” 이랬죠. 그런 다음 내내 눈에 띄게 챙기고 찾고 화장실도 못 가게 막고 그랬지. 여차저차 원나잇이 오늘부터 1일이 되거죠, 뭐. 어머! 뭐야. 나 왜 남편 얘기까지 하고 있어. 또 빗장이 제대로 열렸나봐. 아으, 창피해.     

 그가 나의 긴 이야기를 듣고 있다. 중간 중간 낮은 소리로 ‘우와’ ‘세상에’ ‘어떻게’ 같은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소리 내어 웃기도 하면서. 화면 밖에서도 그는 주로 듣는나. 화면 속에서처럼 내 이야기에 들어간 쉼표 하나 느낌표 하나까지도 허투루 하지 않을 그다. 이런 그와 오늘은 한 개의 네모 속에 있다. 단둘이. 스피커가 아닌 내 목을 통해 나오는 소리를 듣고, 컴퓨터 화면이 아닌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가, 나만. 

 ‘조금 더 들려줘요, 당신 이야기가 더, 더, 궁금해요.’ 그의 눈이 말한다. 내 쪽으로 한껏 기울여진 그의 몸이 말한다.      


 나요, 처음 화면 속에서 당신을 보고, 당신 목소리를 듣고 정말 오랜만에 흥분이 됐어요. 당신 앞에서 빗장은 자동문처럼 드르르 열려버리고, 어김없이 막 간지러운데 쩌릿쩌릿한 통증 같은 것이 가슴인지 더 아래쪽인지 아니면 두 곳 다였는지, 꽤 한참 동안 머물렀어요. 아주 옴팡 빠져버린 거죠. 사실, 내가 당신한테 빠진 건 당신을 보기 전 부터에요. 당신의 글을 처음 만난 날. 휘리릭 다 읽고 나서는 ‘아...’ 했고, 바로 이어 찬찬히 꼭꼭 씹으며 읽고는 ‘하아...’ 했어요. 읽는 동안 숨 쉬는 것에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 글은 숨 막히게 특별하고 당신만의 매력이 흘러요. 너무 날 것이라 당장은 소화하기가 어렵지만 그래서 내내 다시 떠오르고, 그 안에는 말갛고 보드라운 당신의 속살이 보여요. 한 번 보면 자꾸만 눈이 가고 나도 모르게 손이 뻗어지고... 안 보면 내내 궁금하고 기다려지고. 당신 글이 그래요. 그런데 화면 속에서 당신 글을 꼭 닮은 당신을 본거예요. 당신임을 확인하는 순간, 내가... 얼마나... 하아...     


그가 가까이 다가온다. 우리 사이 빈 공간을 없앤다. 서로의 눈을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조금씩, 더, 가까이,     


 소설을 썼다.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 가진 불륜체험을 거의 사실 그대로 고백하여 쓴 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을 읽고 난 후다. 쓰고 보니 그녀가 왜 소설의 형태로 그들의 사랑을 고백했는지 완벽히 이해가 간다. 그녀와 달리 나의 사랑은 일방이지만. 소설 속이라면 나도, 나와는 입장이 달라 신분을 밝히지 못하는 그도 적당한 거리에서 3자가 된다. ‘이건 아는 사람 얘긴데’로 시작하는 이야기처럼. 덕분에 나는 안전하게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지금 난 내 글에 달린 그의 부비부비(합평을 글방에서는 이렇게 부른다)를 읽고있다. 부비부비 속에 고스란히 그의 체온이 전해진다. 체온을 다해 이렇게나 가까이로 부비는 행위라니... 아... 오줌 마렵다.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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