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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Oct 22. 2023

장래 희망은 불온한 베짱이

나는 지금 먹고 살만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쭉, 이만큼이나마 먹고사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월화수목금 직장에 나갔다. 혼자 벌어 혼자 쓰다, 결혼하고 얼마간은

둘이 벌어 둘이 쓰고, 쌍둥이를 낳고 나서는 둘이 벌어 넷이 썼다. 최근 아이들이 성인이 되

고부터는 다시 둘이 벌어 둘이 쓰는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는데 최근에 나의 건강이 나빠져 일

을 그만두게 되면서부터 혼자 벌어 둘이 쓰는 (남편의 입장에서는 매우) 안타까운 상태다. 그

러니 현재 나의 먹고살 만한 상태는 많은 부분 남편에게 의지 중이고, 결국 ‘나’가 먹고살 만

한 상태라기보다는 ‘우리’라고 표현해야 맞는지 모르겠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득바득 돈을 모아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금을 진하게 꾹꾹 눌러가며 즐기는 삶을 추구하는 편이다. 그래서 큰 지출을 동반하는 결정

이라도 나를 위해 필요하다 생각되면 오래 주저하지 않는다. 두 번 없을 거 같은 여행이나,

아이들 역시 학창 시절을 온전히 즐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초중고 대안교육, 내내 붙어

살고 싶은 이웃을 따라간 갑작스러운 이사나, 동생과 둘이 ‘의정부에서 아이 키우는 엄마들을

접수해 버리자’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던 키즈카페 사업(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동업은 하는

거 아니라는 참교육 받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등. 어쩌면 나의 씀씀이는 밑 빠진 독에 돈 붇

기에 가깝다. 덕분에 하고 싶은 거 해가면서 재미나게 잘살고 있다고 위안 삼긴 한다. 하지만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날, 춥고 배고파진 베짱이가 개미네집 문을 두드리는 동화 속 장면이

혹시라도 내 삶에 다큐로 재탄생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때도 없지 않다. 그래도 어쩌겠나,

그것이 베짱이의 숙명이라면. 쨍한 여름 신나게 잘 살았으니, 밥 대신 추억을 곱씹으며 사는

수밖에.


“벌 수 있을 때까지는 벌어야지. 이 나이에 나를 써주는 곳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해.” 아파

트 경비 일을 하시는 80 넘은 시아버지는 말씀하신다. 이틀에 한 번 밖에서 잠을 자는 이교대

근무, 건장한 청년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 아닐지 짐작만 한다. 정년이 넘어 타의로 퇴사하셨

는데, 일하시던 아파트에 갑작스러운 빈자리가 생겨 계약직으로 다시 재취업을 하시고, 해마

다 계약을 갱신하며 근무 중이시다. 내년에 나를 또 써줄지 모르겠다고 해마다 연말이 되면

걱정하신다. 아버님의 재계약 소망과는 달리, 자식들은 인제 그만 재계약이 되지 않아도 좋겠

다는 바람이 있다. ‘벌 수 있을 때’가 도대체 언제까지인지 알 수가 없고, 아버님의 ‘벌 수 없

을 때’가 결국 ‘무엇도 할 수 없는 때’가 되면 어쩌나 걱정하기 때문이다. 시아버님이나 얼마

전까지 30년 넘게 식당을 운영했던 친정엄마는 나의 곁 대표적인 개미이다. 시아버지는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하는 사람인데...’ 라고 노래처럼 읊조리시지만 2교대에 좀처럼 근무를 바꿀 수

없고 휴가조차 마음대로 낼 수 없어 일 년에 한 번 가는 여행도 크게 마음 먹어야 가능하다.

친정엄마는 미루고 미루다 건강 때문에 결국 식당 일을 접었다. 몸을 돌보고 좀 쉬시면 좋으

련만 어림없다. 말을 듣지 않는 허리랑 팔, 다리를 ‘간세니’ (엄마는 간신히를 힘주어 말할 때

이렇게 발음한다.)움직여 철 따라 수확한 텃밭 작물을 자식에게 정기배송 하는 게 새로운 낙     

이 되었다.


명절이 되어 양가의 개미님을 만나고 온 마음이 편치 않다. ‘무엇도 할 수 없는 때’가 가까워

지는 두 분 눈에 나는 한창 일 할 나이인데, 이렇게 일을 쉬며 남편에게 의지 중인 베짱이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하지만 난 돈을 벌지 않을 뿐이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직장 다니며 소홀했던 집안일에 푹 빠져있다. 하루 종일 해도 별로 표시가 나지 않는데 하지

않으면 귀신같이 표시가 나는 신기한 집안일. 그리고 이번 쉬는 기간 동안, 먹고살 만한 나를

향한 새로운 고민을 해 보려 한다.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버는 일 말고, 돈을 벌어 누군가에게

먹는 일과 사는 일을 위탁하는 삶 말고, 나의 손으로 직접 먹고사는 일에 중심이 되는 삶을

상상한다. 나의 의식주를 돌볼 수 있음이 스스로에게 가장 큰 쓸모가 되는, 어쩌면 너무나 자

연스럽지만 쉽게 돈으로 대체되고 잊히는 삶. 그걸 찾아 내 것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

그 고민의 시작으로 나는 지금 이곳, 변산 공동체 마을에 와 있다. 2주 계획한 여정에 차비

를 제외하고 숙식을 포함한 소요 비용은 0원. 단, 오전과 오후 두 시간 정도 정해진 일(콩밭

매기, 들깨 송이 따기, 옥수수 털기, 단호박 따기, 그릇 빚기...)을 한다. 그야말로 먹기 위한

일, 살기 위한 일. 이런 일을 땀 흘려 하고 나면 말 그대로 ‘밥 먹을 자격’이 생기는 것 같다.

밥 한 숟가락에 들어있는 땅, 바람, 비, 해, 달, 땀까지 모든 맛을 음미하며 소중히, 감사하며

먹게 된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매운 눈 비비며 간신히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나면 ‘따뜻한

방에 누울 자격’이 생긴다. 한낮에도 남아있는 운기 어린 바닥에 바짝 등을 대고 누워 노곤노

곤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바닥의 온기가 가슴으로 옮겨붙는다. 내가 지금 제대로 먹고 제대로

살고 있다는 단단한 안정감.


아, 불온한 베짱이로 남고 싶다! 동화 속 베짱이처럼,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

으로 즐겁게 맞서는, 그런 불온함으로. 내 삶에 닥칠 겨울을 위해 돈 쌓기에 몰두하는 대신,

잘 말린 장작을 쌓아두고, 뭉근하게 데워진 바닥에서 함께 차를 나누어 마실 친구를 찾아 나

서는 배짱 두둑한 사람, 베짱이. 이곳 사람들처럼 또 오라고, 다시 오라고, 꼭 오라고, 마음

열어 또 다른 베짱이를 기다려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이렇게 같이 나누어 먹고, 같이 나누어

웃으며 살아보자고 그게 사람으로 태어나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하루하루 익어가며 배운다.


이제 오후 노동을 하러 간다. 오후에는 두 시간 정도 옥수수를 털 거다. 옥수수 털기는 처음

이다. ‘옥수수 턴다’는 건, 음... 대차게 싸움이 시작되는 장면에서 “야, 너 오늘 옥수수(강냉

이) 털리고 싶냐?” 하는 겁박용으로만 들어 봤다. 요령을 익히고 우수수수 털리는 옥수수 알

갱이를 보니 이런 기가막힌 은유적 표현이 있나 싶다. 어쩌면 그 겁박을 처음 만든 사람은 옥

수수 농사를 짓는 왕펀치 시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데 옆에 앉은 분이 옥수숫대는 잇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해 주신다. 알갱이 털린 옥수숫대가 잇몸에 좋다니... 이런 절묘한 우

연! 그야말로 버릴 것 하나 없는 친환경적인 겁박이라는 생각으로 피시시식 웃음이 난다. 큰

창으로 보이는 가을 하늘이 오늘만큼 더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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