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고 있다. 지난 밤을 ‘안녕히’ 통과한, 딱 하루치 만큼의 오늘이, ‘아직까지는’ 살아있는 것들에게 공평하게 도착하고 있다. 조용한 제주의 작은 마을, 밭 여기저기 이른 식사를 하는 새들을 바라보며, 호기롭게 새벽 요가로 몸을 풀어보겠다고 나선, 부디 다시 들어가 누워야 할 거 같은 상태로 추정되는, (확실) 중년 (불확실) 여성 한 명이 매트 위에 쭈그리고 앉아 훌쩍거린다. 억울하다. 살아있으니 안녕한 거라고 믿었던(착각했던) 수많은 오늘, 놓쳐버린, 뒤늦은 후회. ‘나는, 안녕하지 않다.’ 안녕하지 않은 존재에게 도착하는 일방적인 ‘굿모닝’은 얼마나 폭력적인지. 식사를 마친 새들이 바쁘게 날아간다. 내가 도드라진다.
갑자기 비건 식당에서 주방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삼십 년 넘게 식당을 운영했던 엄마는 ‘하고 많은 일 중 왜 굳이’라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도 이미 알고 있었을 거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억척스러운 도전정신은 네 남매 중 내가 가장 엄마를 닮았다는 걸.
출근을 하고 꼬박 두 달 정도는 일을 배우느라 몸은 바짝 긴장이 되었지만, 고단함과는 별개로 몸(만) 쓰는 일의 명료함에 묘한 짜릿함을 느꼈다. 작년까지, 생계와 나의 희망 진로로서 돌봄노동을 꾸준히 해왔지만, 이십 년 넘는 경력을 쌓아갈수록 점점 더 내 노동의 가치가 나조차도 헷갈렸다. 변하지 않는 처우와 근무 환경, 잠시도 쉬지 않고 종종거려도 종일 뭘 한건지 한 눈에 표나지 않는, 그래서 내가 얼마나 이 일에 진심인지, 전문인지 생색내기도 어정쩡한... 집안일처럼. 그에 비해 식당의 주방일은 얼마나 명확한가. 내가 하는 만큼, 딱 그만큼은 보여지는 노동이라니. 팔다리가 후들거리는 채 퇴근하면서도 그날의 총매출에 흐뭇했다.
적신호는, 드디어 적응을 끝냈다고, 이제 제법 ‘쉐프 테’가 난다고 스스로를 우쭐해하던 무렵부터 슬슬 나타났다. 면역력이 훅 떨어질 때 신호를 보내주는 각자의 약한 부위가 있는데 나의 경우 피부다. 몇 년 전에는 접히는 몸의 부위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염이 오르내려 거의 일 년 동안 피를 보며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딱 얼굴, 그것도 코를 중심으로 한 중앙부위에 몰려 피부염이 왔다. 한 군데, 두 군데, 셋, 넷... 살짝 붉은 기운, 완전 붉어짐, 검붉음... 이물감, 가려움, 따가움, 부어오름과 열감.... 상태는 날이 갈 수록 점점 심해졌다. 일이 재미있고 동료들의 젊은 에너지도 좋아서 나름 괜찮게 지낸다는 나에게 ‘정말 괜찮은 게 맞는지’ 심각하게 되묻는 사람이 늘어났다. 딸이 요리한 비건 음식을 먹겠다고 두 시간 거리를 달려온 엄마는 음식 맛은 하나도 모르겠고 얼굴이 벌겋게 된 채 불 앞을 오가는 딸을 보며 모르게 몇 번이나 울었다고 했다.
6개월, 무모한 무한인지, 무한 무모한인지 모르겠는 나의 도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래, 아이고, 잘했다. 그게, 얼마나 힘든 건데... 엄마는 그걸... 아휴... (훌쩍) 어떻게 말로 다 하니. 내 몸뚱이 성한 데가 한 곳도 없어. 간신히 살고 있는걸... (훌쩍훌쩍) 나이 오십 먹고 니가 한다고 해서, 안쓰러워서... 내 마음이... 하이고야... (훌쩍)” 직장을 그만뒀다는 전화에 엄마가 많이 울었다. 본인은 칠순이 지나도록 해온 일을 고작 6개월만에 그만뒀다는 나이 오십 먹은 딸(아직 오십은 아니에요, 엄마)이 뭐 그렇게 안쓰러워서 자꾸만 눈물을 흘리시는지. 엄마가 삼십 년 넘게 식당을 하는 동안, 그 돈으로 네 남매 공부시키고 출가시키는 동안, 당신이 제일 의지하고 싶어했던 당신의 큰 딸은, 하고 많은 음식 중 하필이면 추어탕집을 하는 창피한 엄마를, 장사 끝나고 돌아온 엄마에게 느껴지던 찐득한 열기나, 장사가 잘 되었다며 매번 똑같은 맘모스빵만 사오는 엄마의 저렴한 안목, 빵을 떼어줄 때 언제나 엄마 손에 따라붙던 쨍한 마늘 냄새, 장사하기도 뼈가 빠질 거 같은데 집안일은 너희(특히 큰 딸인 나)가 좀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짜증과 강압적인 말투, 뭐든 돌아가는 게 엄마 마음 같지 않을 때마다 어김없이 따라붙던 매질과 매 맞은 상처보다 더 오래 남던 엄마의 독설까지 모두 모두 다 포함해서 당신을 얼마나 오랫동안 미워했는데, 엄마는 그런 거 하나도 알지도 못하면서. 바보 같이.
퇴사와 동시에 제주로 여행을 떠나왔다. 몸과 마음을 최대한 리셋하며 여행을 미친듯 즐겨보리리라 마음먹었는데, 완벽한 오만이었다. 여행 중 하루가 다르게 얼굴은 울긋불긋 전국구 꽃 잔치를 벌이고, 풀어진 긴장 탓에 머리, 어깨, 무릎, 발에 손가락, 발가락까지 이어지는 동시다발적 통증 릴레이. 참담했다. 아, 이정도였다니... 나는, 이다지도, 안녕하지 않았구나.
사바아사나(Shava-asana-송장 자세), 끼기기긱 거리는 몸을 펴고 오늘 매트 위 내가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해본다. 송장처럼 누워 다리 쪽부터 찬찬히 힘을 빼 머리까지 푸우우우 힘을 뺀다. 그저 호흡에 집중하며 올라오는 생각들이 흘러가도록 두... 흘러가도록 두어.... 야... 하아... 그래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6개월 여정에 엄마까지, 감은 눈앞에 순서 없이 맺혔다가 눈물로 떨어지고 있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야. ‘알아차림’만으로 충분해. 2023년, ‘쉰’ 앞 둔덕 위에서 제대로 덜컹거리는 중이지만 그 김에 잠시 쉬어가자고 나를 토닥인다. 이제 곧, 쉬어가도 좋을 나이, 그게 간절할 나이라, ‘쉬-인’이 아니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