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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Oct 22. 2023

가족 스위트 족가

 가족가족가족가족가... 족가, 족가, 족가? 족가! 딱이네, 족가! ‘가족’이라는 정신 못 차리게 달콤한 거짓말, 알면서도 속게 되고, 결국 어쩌지 못해 스스로에게조차 합리화 해버리고 마는 그런 존재. 족가를 아십니까? 족가는 한자로는 足枷, 죄수를 가두어 둘 때 쓰던 형구(刑具)라고 한다. 두 개의 기다란 나무토막을 맞대어 그 사이에 구멍을 파서 죄인의 두 발목을 넣고 자물쇠를 채우게 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아, 소름! 이렇게나 완벽한 싱크로율이라니. ‘두 개의 기다란 나무토막’ 생물학적 엄마와 아빠겠지. ‘구멍을 파서’ 그렇지, 구멍을 파야 아기가 생기지. ‘죄인의 두 발목을 넣고’ 세상에 태어났다는(태어나졌다는) 원죄로. ‘자물쇠를 채우게’ 가족보다 견고하고 질긴 자물쇠를 나는 아직 모르겠다. 가족이 힘든 이유가 있었어. 그러니까 이제 대놓고 족가라고 해, 족가!     


 맞으며 자란 얘기를 뭘 그렇게 자꾸 글에다 쓰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 맞으며 자라기만 한 거 아니고, 다 자라고도 맞았는데. 그 얘기는 안 썼던가? 조금 더 성실하고 치열하고 상세하게 쭉 써야겠다. 정신 분열 증세를 보였던(어린 나는 이렇게 교양 있는 병명을 몰랐으므로 누구의 말처럼 그저 미친년이었던) 엄마 얘기를 쓰면서 온몸이 떨렸다. 오래되었지만 선명한 문신처럼 새겨진 두려움, 그녀조차 제대로 쏟은 적 없기에 그런 게 있는지, 있어도 되는지조차 몰랐던 분노, 여린 파랑 같은 슬픔이 아닌, 시커먼 크레파스를 가득 칠한 도화지를 미세한 도구로 긁어냈을 때 선명하게 올라오는 검붉음에 가까운, 끄어어어억 꺼어어억 올라와 기어이 터지고 마는 슬픔. 그것들이 뒤섞여 만드는 울림이었다. 글을 마무리 하고도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실, 떠올리고 있는 이 몇 문장으로도 그날의 여진이 느껴진다. 어린 나는, 어떤 것도 말 하지 않았다. 말 할 수 없었다. 손가락 따위는 걸 필요가 없었다. 누워서 침을 뱉으면 그 침이 어디로 떨어지는지, 침을 뱉어봐야 내가 더 험하게 맞고, 엄마가 더 미쳐갈 거라는 걸 잘 아는, 나는 영리한 아이였으니까.      


 그 아이는 자라서, ‘뭘 그렇게 자꾸 쓰냐’ 따위나 ‘굳이 그런 치부를’이나 ‘그때는 다 그랬지. 뭐 한다고 지나간 일을’ 같은 말에 아랑곳 않고 손으로 침을 뱉는 어른이 되었다. 여전히 영리하다. 입보다 손으로 뱉는 침이 훨씬 강력하다는 걸 안다. 아직 요령이 부족해서 일부가 내 근처에 떨어져 질척거리는 경우가 있지만 점점 많은 양이 점점 멀리까지 날아간다. 짜릿하다. 근래 들어서는 나의 침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생겼다. 침을 꽤 찰지게 뱉는다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 그들은 나의 침 가까이 다가와 기꺼이 부비적 부비적 거린다. 그리고는 각자의 족가를 향해 한 가득 침을 뱉어 낸다. 나도 가서 부비적 부비적. 함께 뱉으니 그야말로 뱉는 맛이 난다. 누군가(나인가) 말한다. “이렇게 서로에게 든든하고 달콤한 존재가 되어주다니, 가족 같아.” 아니, 그냥 족가라고 합시다. 가족은 함부로 건드는 거 아니지.      


 # 뱉어보기. 크하아아악, 퉤! 

“씨발년아, 그러니까 맞을 짓을 좀 하지 말라고!”     

... ... ... 쿠헥.. 켁... 케헥....하아, 하악, 하아, 하악...

나의 몰아쉬는 숨소리로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오빠는 마지막 말을 뱉으며 방을 나간다. 오빠는 선을 넘지 않는다. 살아는 있을 정도로만 때린다. 다른 건 모르겠고, 그 부분에서 오빠는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 넘어갈 듯 넘어갈 듯 넘어간 적이 없다. 덕분에 나도 내 동생들도 맞아 죽지 않고 결혼해서 집을 나올 수 있었다. 우리가 맞는 이유는 하나였다. 맞을 짓을 하니까. 그러게, 오빠의 씨발년들은 왜 매번 맞을 짓을 하는가. 다 큰 년이나 어린년이나 똑 같이. 늘 궁금했다. 답을 모르니 매번 맞을 수 밖에. 

 그런데요, 오빠,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요. 머리를 많이 맞으면 세포가 죽어 머리가 나빠진대요. 어쩌면 우리 셋 다 머리가 나빠져서 계속 맞을 짓을 했던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건... 닭이 먼저인가요, 달걀이 먼저인가요?      


# 다르게 뱉어보기. 쿠후우우움, 퉤! 

엄청 헷갈리는 수수께끼.

첫 번째 문제, 갑자기 머리끄덩이 잡혀서 끌려 들어가 맞는 거랑, “너 오늘 뒤질 줄 알아, 따라 들어 와.”라는 말을 듣고 따라 들어가서 맞는 거랑 어떤 게 더 무섭게?

두 번째 문제, 문 잠긴 방에서 오빠한테 손으로 맞는 거랑, (맞을 짓은 분명히 오빠가 했는데) 네 남매 일렬로 세워두고 손에 잡히는 아무거로나 순서 없이 엄마한테 맞는 거랑 어떤 게 더 기분 더럽게?

세 번째 문제, 흰머리 나는 지금까지도 오빠한테 대차게 큰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냥 내내 피해버리고 싶은 건, 무서워서 그러게? 더러워서 그러게? 


# 욕같이 뱉어보기. 에라이, 캬학 퉤! 

지난 겨울, 엄마를 뒷자리에 태우고 운전을 하던 오빠가 엄마 때문에 빡쳐서(엄마도 그때의 우리처럼 맞을 짓을 했나 보다) 차를 좌우로 흔들어 재꼈다. 오빠는 이번에도 선을 지켰고, 엄마는 다행히 살아계신다. 팔과 무릎에 입은 상처보다 마음에 맺힌 상처가 깊어서 며칠 동안 딸들에게 조차 말도 못하고 혼자 울었다고 했다. 엄마가 용기내 말을 했던 날, 엄마의 아들도 없고 나의 오빠도 없는 자리에서 엄마랑 나는 한마음 한뜻으로 ‘미친 새끼’ 욕을 했다. 그리고 나는 당당히 선언했다. ‘나는 앞으로 오빠를 보지 않을거야.’ 엄마도 그러라고 했다. 그날은. 

 얼마 후, 눈치를 살피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나는 알겠더라. 엄마는 ‘미친 새끼’를 용서했구나. 자식이니까, 가족이니까, 어쩌겠냐고. 여기까지는 자식 낳고 키우는 나니까 조금은(아주 아주 아주 조금) 이해한다. 그런데 이어지는 엄마의 말이, 본인 때문에 자식들 사이가 안 좋아 진 거 같아서, 가족이 갈라진 거 같아서 속상하시단다. 가족은 무슨, 족가라고, 족가!     


 아, 어지럽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뱉자. 역시 가족이랑 엮이면 피곤하다. 가족 얘기는 꽤 뱉은 것 같은데도 여전히 퐁퐁 솟는 샘물 처럼 뱉을 것이 생긴다. 가끔은 뱉어 놓은 것 속에서 또 다른 뱉을 거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면 여기서 생기는 또 하나의 수수께끼, 이렇게나 무한 글감이 되어주는 원가족이 있다는 건, 나에게는 다행인걸까, 불행인걸까? 아, 머리가 나빠진 나는 도저히 모르겠는데... 머리는 맞은 적 없는 오빠한테 물어봐야 하나? 응, 좆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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