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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Aug 29. 2023

너의 결혼식

 사회자가 결혼식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서서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이 분주하게 자리를 잡는다. 결혼식 참석이 몇 년만인가? 되짚어 보려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몇 년 동안 결혼식 참석을 꺼리기도 했고, 열린다고 해도 가까운 가족들 위주로 하거나 인원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아서 굳이 참석하지 않고 축의금만 보낸다해도 결례가 되지않았다. 때문에 이런 격식(?) 차리는 자리는 정말 오랜만이다. (미리 구입해 놓은) 평소와 다른 화사한 옷을 입고 화장에 공을 들이며 밖으로 나서기 전부터 괜스레 설레었다.    

 

 한강뷰를 자랑하는 예식장 근처에 도착하자, 저 멀리에서 보일 정도로 (한강대교에서도 보인다고) 어마어마하게 큰 현수막이 예식장 외벽에 걸려있다. 현수막에는 오늘 결혼하는 두 사람의 전신 사진과 이름, 그리고 ‘today’ ‘wedding’ 같은 영어가 블링블링한 글씨체로 적혀있다. 결혼식장 위치를 찾기에도, 만천하에 행복한 결혼식을 알리기에도, 현수막의 원래 용도로는 아주 그만이겠지만, 나라는 꼰대는 저 거대한 하루살이 물건의 오늘 이후 행방이나, 사이즈별 옵션이라는 현수막 크기만큼 거한 가격을 떠올린다. 예식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느껴지는 이물감. 예식이 열리는 홀 안으로 들어가니 신랑신부가 입장하는 무대를 중심으로 좌우로 나뉘어진 하객석이 있다. 어느쪽에 앉아야 하나 잠시 고민. 오른쪽? 왼쪽? 아, 일행이 오른쪽에 있군, 신부가 오른쪽인가 보다. 요즘에는 구분없이 양쪽 하객의 비율을 맞춰 앉거나, ‘오늘부터 우리 가족이죠?’ 뭐 이런 문구를 적어 놓고 아무쪽이나 앉으라고 한다던데... 내 결혼식때는 어떻게 했더라? 까지 생각이 이어지다 슬쩍 포털창에 검색해 보는 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저 길다란 무대이름이 ‘버진로드’였군...‘버진’이라... 이길 지나면 ‘논버진’이 되는건가? 내가 아는 협소한 의미만은 아니지만, 여튼 ‘순결한 길’이라는 의미. 그리고 또 하나 알게된 건, 하객 방향이 (원래는)반대다. 여자가 왼쪽, 남자가 오른쪽이라고. 그렇게 된 이유는, 약탈과 납치로부터 여자를 보호하도록 하기위해 남자의 오른손을 비워놓기 위함이란다. 참나...       


 슬쩍 딴생각에 빠져 있던 사이 식이 시작된다. 첫 순서는 화촉점화. 붉은 계열 한복을 입은 신부엄마와 푸른 계열 한복을 입은 신랑엄마가 (굳이) 손을 맞잡고 ‘버진로드’를 지나간다. 화촉점화는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이 지나갈 길을 두 어머니가 미리 닦아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두 분 다 반짝이는 장식을 한 올림머리에 화사한 메이크업을 했다. 중간중간 인자한 미소를 짓기는해도 긴장때문인지 얼굴이 굳어진다. 꽤나 긴 순결의 길을 (긴 한복 치마로 잘 닦으며) 지나, 드디어 초에 불만 밝히면 되는데 신부쪽이 몇 번을 시도해도 점화기가 켜지지 않는다. 도와주는 직원분이 켜봐도 마찬가지. 당황한 신부엄마의 어색한 웃음. 신랑쪽 점화기를 빌려 간신히 초에 불을 켜고 두분은 좌우로 나뉘어 각자의 자리로 가 앉는다.      


 평소같으면 별 의미를 두지않고, ‘우와, 신랑이 엄마를 닮았네’ ‘점화기 점검을 미리 안했나?’ 정도의 생각만 했을 장면에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이 기운다. (간신히) 불이 켜진건 저 앞에 있는 두 개의 초인데 어쩐 일인지 내 머릿속에도 초 하나가 켜진다. 그 언젠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걸었던 저 길위에, (내 엄마가 그랬듯) 붉은 계열 혹은 푸른 계열의 한복을 입고, 한 두번 정도 일면식이 있는 아무개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걷는 나를 상상한다. 상대쪽 엄마에게 쳐지고 싶지 않아서 한껏 멋을 낸 내가. 최대한 우아한 움직임으로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인자함을 가득 품은 미소(이건 맹연습이 필요할 거 같다)를 지으며. 상상에 상상을 더하다 문득 정신이 든다. ‘아, 진짜 격하게 안하고 싶은 일이야.’ 고개를 젓는다.     


 이전 직장이었던 어린이집에서 만난 이십대 선생님들이 ‘빨리 결혼해서 일 그만하고 싶다’ 는 이야기를 해서 속으로 뜨악! 했던 적이 있다. 옆집 언니들은 아이들 결혼식비용이나 초기독립자금을 위해 진작부터 개별로 적금을 들고 있단다. 뿌린 걸 걷기 위해서라도 결혼식은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뿌린 거 걷은 비용으로 결혼식 비용 충당하면 그게 그거일텐데). 당연한걸 하지 않고, ‘결혼이든 독립이든 스스로 알아서’를 부르짖는 나를 무척 이상하게 바라본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도 결혼식 문화도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데 ‘많이’의 기준과 속도가 사람마다 그야말로 ‘많~이’ 다른가보다. 오늘 결혼식은 나의 결혼식과 비교해 훨씬 세련되고, 고급스러워 졌지만 기본 틀은 달라진게 없다.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상견례, 예단 등등)도 마찬가지. 무려 이십 삼년이 지났는데. 이런 거, 나만 불편한가?    


  얼마전 결혼도 출산도 안할거라고 했던 딸이 뜬금없이 “엄마, 내가 결혼한다고 하면 어떨거 같아?”하고 물었던 적이 있다. 결혼과 출산을 안하는 것도, 결혼만큼은 하겠다는 것도 어차피 다 너의 선택인데 굳이 내가 뭐 어떨게 있냐며 넘어가려 했다. “그럼 **이가 결혼한다고 하면?” 자신은 그렇다치고 쌍둥이인 아들에게도 똑같냐는 질문. 다를게 있겠냐고 대답을 하다가 “아니지, 찾아가서 이 결혼 정말 괜찮겠는지, 진심으로 고맙다고 복 받을거라고 해야하나?” 하며 딸이랑 웃었다. 그냥 심심해서 물어봤다는 딸과의 농담섞인 대화는 그정도로 마무리가 되었는데 가끔씩 드는 생각은, 나의 딸 아들도 그렇고, 우리 아이들과 결혼을 결심한 남의 집 딸 아들이나 그들의 부모님도, 한 번 뿐인 (결혼은 또 할 수 있어도 주인공은 바뀔거니까) 결혼인데 남들 하는 거 만큼, 남 부럽지 않게 해야한다고하면, 내 결혼도 아닌데 ‘안하고 싶은 일’이라고 거부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더 늦기전에 적금이라도 들어야하나 싶어지고.      


 어느새 오늘 결혼식의 마지막 순서, 신랑신부가 행진을 한다. 사회자가 ‘행진!’을 외치고 신랑신부가 ‘순결한 길’에 들어서자, 높다란 천정부터 내려온 거대한 암막커튼이 천천히 열리며 두사람 뒷쪽으로 반짝이는 한강뷰가 펼쳐진다. ‘우와!’ ‘이야!’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리고 하객들의 시선이 점점 펼쳐지는 한강뷰와 퇴장하는 신랑신부쪽을 바쁘게 오간다. 행진이 진행될수록 반짝이는 한강뷰와 점점 멀어지는 신랑신부, 시선은 하나 둘 쫙 펼쳐진 한강뷰쪽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결혼식이 그런거지 뭐. 주인공도 주인공이지만 그들 뒤를 받쳐주는 뷰를 보여주는 거.’ 테이블 위 와인잔에 남은 와인을 호로록 마신다. 크흠, 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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