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엄마도 독립한 사람이며, 가족 모두가 이 가정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모든 사회에 알려 가족 구성원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후손 엄마들이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이 선언은 엄마라는 존재의 시작과 함께 이어 온 역사의 힘으로 하는 것이며, 전 세계 모든 엄마의 염원을 모은 것이다. 우리들 가정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 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시대의 흐름이며,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정당한 권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 독립을 가로막지 못한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가부장제와 유교주의에 희생되어, 우리 엄마들은 역사 내내 억눌리는 고통을 받았다. 그동안 우리 스스로 살아갈 권리를 빼앗긴 고통은 헤아릴 수 없으며...
독립하고 싶다. ‘독립... 독립... 하아, 독립...’ 머릿속으로 ‘독립’이라는 단어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 ‘독립선언문’으로 까지 생각이 이어진다. 노트북에 띄운 3.1 독립선언문에 슬며시 ‘엄마’를 넣어 ‘엄마독립선언문’을 만들어 본다. 단어 몇 개 바꾸었는데 내용이 뭐 이렇게나 적절히 (다소 장황하긴 해도 ‘선언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들어맞나. 써야 할 글 마감이 코앞이고, 내일 출근하려면 가만히 숨만 쉬어도 온전한 충전이 될까 싶은 시간에 이런 걸 만들어 피시식 웃다가 중간 중간 가슴이 웅장해지고 한편으로 애잔해지기도 하는 걸 보면, 그동안 꿈꿔온 ‘독립’의 염원을 슬슬 꺼내어 실행에 옮길 때가 온 것인가. ‘아~~~~~~~ 독립이여, 오라!’
요즘 ‘백 세 인생’이라는데, 내가 앞으로 오십 년을 더 살아서 백을 다 채우게 될 거 같지는 않지만, 절반 정도를 내내 누군가와 복작이며 살았으니 나머지 반은(반의반이거나 반의반의 반이 될 수도) 독립해서 오롯이 나의 흐름에만 귀 기울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로 비롯되지 않는 어떤 자극도 없이, 나에게로 집중, 집중, 집중... 하루 중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온전히 나를 바라보고 토닥이며 정성껏 돌볼 수 있다면. 여기저기 앞 다투어 고장 신호를 보내는 나의 몸과 가을의 깊이를 동경하는 나의 생각과 여전히 남아있는 나의 욕망과 나조차 한 번도 말 걸어 보지 못한 내 안 깊은 곳까지 찬찬히 돌봐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독립을 하면, 그때는 가능할까?
올해 들어, 급여가 조금 더 많은 새로운 일을 시작해 적응하며 (그렇게 벌어도 대부분 잠시 스쳐 갔지만), 숨이 꼴딱 꼴딱 걸리게 힘이 들었다. 아이들이 고등과정을 끝낸 몇 해 전부터 그동안 학비로 지출되던 부분을 아파트 대출금 갚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내 급여까지 조금 더 많아지니, 힘든 것과는 별개로 상환에 속도가 붙어 그야말로 ‘갚는 맛’이 났다. 대출금만 다 갚으면 그때는 내가 꿈꾸는 ‘다른’ 삶을 살아 볼 수 있으려나, 막연한 기대감으로 위안 삼으며 성실노동자로 지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올해도 반이 훌쩍 지났다. 계절이 바뀌는가 싶으면 슬며시 찬바람이 불고, 금방 또 한 해의 끝을 향해가겠지. 개인이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자신의 나이만큼 기울어진 경사로를 자전거로 내려오는 속도와 같다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말에 실감이 난다. 아마 그 말을 처음 한 사람은 적어도 오십 살 이상이 아니었을지. 50이 가까워지니 느껴지는 속도감이 다르다.
작년 12월로 퇴사를 한 딸은 갭이어를 가지며 자신의 삶을 생태적으로 어떻게 디자인해 갈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평소 관심 있던 분야를 앞서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만나 배우고 나누며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딸과 이란성 쌍둥이인 아들은 가을의 문턱에서 입대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언젠가는...’ 하며 막연하게 아이들의 독립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올 해를 시작으로 아이들은 슬슬 구체적인 독립을 찾아가지 않을까 싶다. 비슷한 또래의 자녀가 있는 이웃 언니들 집에 하나둘 빈방이 늘어가고 있다. 빈방에는 슬며시 남편이 들어가 따로 잠을 자기 시작했다는 집도 있고, 점점 창고가 되어간다는 집도 있고, 언제라도 돌아와 쉴 수 있게 나간 그대로 보존하며 어쩌다 한 번씩 청소를 하고 있다는 집도 있다. 언니네 집 빈방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집에도 곧 생길 빈방을 생각한다. 나는(남편은) 어떻게 하고 싶나... 아이들이 독립하면 굳이 이 30평대 아파트를 아등바등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각자 가능한 선에서 독립을 한다면?
얼마 전, 밖에서 가족 식사를 하다가 아이들에게 독립선언을 했다. 너희들 둘 다 독립하는 즈음 엄마랑 아빠도 각자의 독립을 할 거라고. 남편과는 이후에 (아마도 서로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쯤?) 다시 함께 살게 되더라도 얼마간 각자의 공간에서 독립된 삶을 살아보자고 이야기를 끝낸 뒤였다. 일 년 정도 서로의 영역과 생활을 구분하는 ‘각방살이’를 꾸준히 해 오고 있던 터라 그런지 남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수긍을 했다. 자신은 욕실 딸린 단칸방에 침대랑 티브이, 에어컨, 전자레인지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즐겁게 살 거 같다는 매우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운다. 어쩌면 남편의 소박한(?) 독립계획은 그간 내가 흘리듯 반복해서 말해왔던 나의 (초기 자본이 많이 필요한) 독립을 염두에 둔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땅과 닿아 있는 단독주택, 가까이에서 텃밭 작물을 키울 수 있는 집, 개인 공간과 별개의 공용공간이 있고 그곳에 가족이든 벗이든 숙박이 필요한 손님이든 머물다 갈 수 있는 아담한 방이 있는 집. 나는 그런 집에서의 독립을 꿈꾼다.
공식적인 독립선언을 결심하면서 아이들의 반응이 어떨지, 혹시라도 ‘가족의 해체’ 쯤으로 생각하지는 않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럼 우린 집이 네 개가 되는 거네?” “서로 돌아가며 이집 저집 놀러가도 재미있겠다.” 며 ‘엄마의 독립’을 포함한 우리 가족의 독립을 쿨~ 하게 인정했다. 평소 서로의 생활패턴을 중심으로 각자의 공간을 상상하며 “너희 집은 지저분해서 아무도 안 갈 거 같아.(다 같이 웃음)” “아빠 집에는 티브이만 있으면 되는 거 아냐?(다 같이 인정)” “엄마를 초대할 때는 대청소를 해야 할 듯!(엄마만 웃음)” 농담 섞인 대화를 나누며 한참 즐거웠다. 과연 독립의 시점이 언제쯤 오게 될지, 독립을 해 가는 구체적인 과정이나 각자 독립을 해서 자신의 일상을 온전히 책임지며 사는 것이 얼마큼의 에너지가 들지, 그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지만, 그날 우리는 모두 ‘곧 각자의 독립을 하게 될 거다.’ 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게 독립을 위해 한 걸음 내딛었다. “여보, 얘들아, 나(도), 곧, 독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