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셋의 시선이 주방을 향해 있다. “엄마, 제발 쫌!!!” 돌아가며 엄마를 부르다 결국 표정은 일그러지고 짜증이 터져 나온다. 접시를 겹쳐야 하나 싶게 상은 이미 가득한데, 엄마는 딱 맞게 익은 동치미를 깜빡 잊었다며 식사가 시작되고도 한참을 주방에서 분주하다. “장모님, 얼른 오세요, 같이 드세요.”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막냇사위가 정신없이 고기를 뜯다 말고 벌떡 일어나 엄마를 끌어오자 그제야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호호 웃으며 아빠 옆 비워둔 자리로 온다. 드디어 자리에 앉는가 싶더니 세 명의 사위 앞에 각자가 좋아하는 반찬을 밀어주며 상을 재배치한다. ‘우리 큰 사위는~ 고기를 좋아하는데, 둘째 사위 게장은 이쪽, 셋째는 쌈 채소가 멀리 있네요. 요기에 있습니다~’ 음률을 넣어 노래 같은 혼잣말을 하는 엄마. 그러다 문득 큰 사위 국그릇이 거의 비워진 걸 발견한다. “국 맛있지? 무를 잔뜩 넣었더니 진짜 맛있더라.” 의사는 묻지도 않고 큰사위 국그릇을 휙 집어 들고 다시 주방으로. 처음 보다 훨씬 더 그득 무 건더기랑 국물을 채워온다. “마~니 마~니 드세요~” 딸들의 시선을 피하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또 노래. 큰사위는 처가만 오면 매번 식사 조절을 못 해 앉지도 서지도 못해 후회하는데, 오늘은 국을 두 사발이나 먹으니 아주 그냥 딱 눕게 생겼다.
국물이 뚝뚝 떨어지도록 가득찬 국그릇을 간신히 내려놓고 ‘아고고고’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는 엄마. 평소 안 좋은 무릎에 통증이 오는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상 밑으로 무릎을 주무른다. 자리에 앉고도 한참을 사위들, 손주들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 간신히 밥을 한 수저 뜨는가 싶었는데 엄마 수저에는 언제 들고 왔는지 모를 누룽지 끓인 밥이 올려있다. “아유, 다들 맛있게 먹으니 나는 너어---무 좋네. 안 먹어도 배가 불러.” 누룽지를 씹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엄마. 이 모든 상황에 아무 말씀도 없이 그저 식사에 집중하던 아빠가 엄마를 쓰윽 쳐다보다 한 말씀 하신다. “맛있게 잘했네. 응? 당신은 뭘 먹는 거야? 내 것도 있는가?” 어느새 ‘아고고고’ 엄마가 일어난다. 오늘도 역시, 환장의 콤비!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어지는 엄마의 단골 멘트다. 할머니를 모시고 외식하러 가서 네 남매의 먹는 속도로 결국 엄마 몫까지 덜어줘야 할 때, 메뉴가 생각보다 비싸 인원보다 적게 시키게 되거나, 나오는 음식량이 생각보다 적어 부족할 수 있겠다 싶을 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도 평소 안 먹던 특별한 요리를 할 때면 엄마 몫이 거의 남지 않도록 가족들에게 다 떠주고 엄마는 같은 말을 했다. 딸들이 그런 엄마를 보고 불편해하는 기색을 하면, 사실은 속이 좋지 않았다거나, 입맛이 별로 없다거나, 요리하면서 너무 많이 떠먹어서 더는 먹고 싶지 않다고, 그거 말고 개운하게 김치에 비벼 먹고 싶다고 했다. 누구도 엄마의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자기 것을 덜어내어 엄마에게 권한다 해도 절대로 받지 않을 거라는 거, 이런저런 실랑이로 식사가 지연되거나 음식이 식도록 두는 것은 엄마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라 결국 엄마가 정색을 하고 분의기가 싸해진 채 식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가족들은 몇 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미안함과 불편한 마음을 감사한 마음으로 대체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오늘이 이제까지 먹은 중 제일 맛있다’라거나 ‘어느 식당가도 이만한 음식을 먹을 수 없다’라거나 ‘엄마 요리 실력은 인정해 줘야한다’는 등의 말을 두세 숟가락에 한 번씩 하는 거다. 아, 식사를 다 마치고 마무리로 한 번 정도 조금 더 과장되게 표현을 해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의 표정을 볼 수 있다.
결혼을 하고 내가 엄마가 되고서야 ‘안 먹어도 배부르다’에 담긴 엄마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저체중으로 태어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먹는 일에 관심이 없고 종종 눈물까지 보이며 힘들어했던 딸을 키우면서 다른 건 몰라도 잘 먹기만 하면 그저 감사하고 좋았다. 식사가 시작되면 안 보는 척하며 딸의 식사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쩌다 가끔 딸이 잘 먹는 날에는 잘 먹는 반찬이 떨어지지 않게 중간중간 채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을 수 있게 하고, 잘 먹지 않는 대부분의 날에는 ‘그럼 이거라도 조금만 먹어보자, 이것도 싫으면 저거라도’하면서 식사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것을 권하느라 머리와 손이 바빴다. 그러다 보면 남편과 아들의 식사가 끝나고 내 그릇에 남은 식어버린 밥의 양과 상관없이 내 식욕도 저만치 사라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딸이 밥을 평소보다 잘 먹은 날에는 나도 평소보다 더 잘 챙겨 먹은 것처럼 포만감이 들었다. 그때 알았다. 이거구나,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게.
엄마는 딸 셋 모두 엄마가 되었는데 ‘엄마는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단골 멘트를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다행인건, 식사를 할 때마다 유난스럽게 배가 자주 불렀던 엄마를 보고 자란 세 명의 딸들은 (엄마 덕분에) 조금 더 빨리 알게 되었다. 그건 배보다는 마음이 부른 거라는 거, 안 먹거나 대충 먹은 날은 엄마도 당연히 배가 고프다는 걸. 계속해서 안 먹어도 배가 부르면? 병원에 가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식사 중간에 그릇이 비워질 새 없이 바로바로 채워지지 않는다고 해도, 가까이에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놓이지 않는다고 해도, 모두 비슷하게 덜고 난 메인 요리의 양이 조금 부족하다고 해도, 가족들은 엄마도 함께 앉아 느긋하게 즐기는 식사를 더욱 만족스러워한다는 걸 말이다.
사실, 글은 이렇게 쓰면서 ‘나’라는 ‘엄마’도 식사 시간이면 유난히 궁둥이가 가벼워지곤 한다. 어쩌면 우리 가족들이 이 글을 보고 ‘그걸 아는 사람이 왜 그러냐!’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기 전에 나부터 가족들에게 말을 전해 본다. “가족들아 내가 우리 엄마랑 꽤 비슷한 듯해도, 나는 안 먹어도 배부른 사람은 아니야. 내가 얼마나 먹고 마시는 일을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인지 알지? 그러니까 혹시라도 더 먹고 싶으면 내가 일어나기 전에 (나한테 더 있냐고 물어보지 말고) 스스로 일어나서 더 가져와 줘. 혹시라도 더 먹고 싶은데, 남은 게 없더라도 내 접시로 눈길을 보내지는 말아 줘. 특히 여보, 당신! 그리고 늘 지금처럼 식사 전에 한 번 더 날 불러줘, 다 같이 감사 인사를 하고 함께 식사를 시작할 수 있게, 나를 기다려줘. 엄마도, 같이,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