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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저 Aug 24. 2023

이혼 후 평생 친구로 남은 그들 부부

#1. 긴 시간을 돌아 다시 보니 오래 못 본 친구를 만난 기분인 거야…


그녀가 퇴근길을 서둘렀다. 무슨 약속 있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웃으며 오늘 전남편이 전구를 교체해 주러 저녁에 잠깐 들른다고 해서 일찍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편이 전구를 교체하러 집에 온다고?? …. 속으로 그녀의 말을 되풀이하며 다음말을 기다렸다.

원래 어제(일요일) 와서 전구도 갈아주고 발코니로 나가는 큰 창문도 고리가 망가져 그것도 고쳐주기로 했는데, 전남편이 리옹에 사는 여자친구집에서 너무 늦게 출발하여 파리에는 밤늦은 시간에 도착하기 때문에 오늘 월요일 저녁에 오기로 한 것이라고 그녀가 설명했다.


내가 알기로는 그녀는 이혼 후 딸아이를 혼자 키웠는데 이쩨 그녀의 딸은 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그녀는 혼자 살고 있었다.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이 년 전 이별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주욱 지금까지 솔로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이혼한 전남편과는 이제 친구로 지내고 있으며, 혼자 사는 그녀는 자신의 집안일을 포함하여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전남편 찬스'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무슨... 할리우드 영화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하였다. 물론 이곳도 한국이 아닌 프랑스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며칠 후 그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다시 그녀의 전남편 이야기가 나왔다.

전구는 갈아주고 갔지만 결국 발코니 창문 고리는 그날 바로 고치지 못해서 이번주 토요일에 만나 새로 교체할 고리를 함께 사러 가기로 했다고 하였다.

어떻게 이혼한 사이인데 그럴 수 있지? 하는 듯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들도 이혼하고 처음부터 이렇게 쿨하게 지내지는 못했다고 하였다.

전남편과는 이혼 후 몇 년 동안은 아이에 관한 문제 외에는 서로 연락을 안 하고 지내왔다고 했다.

그들 부부가 헤어지게 된 이유는 '처음처럼 타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발단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녀로부터 시작된 그런 감정들은 곧바로 그녀의 남편에게도 전이가 되었는지 한쪽의 사랑이 식자 다른 쪽도 차갑게 식어 버려 그들은 더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이혼을 결정하였고 합의 끝에 딸은 그녀가 키우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렇게 딸아이 문제 외에는 연락 없이 각자의 인생을 살았던 그들은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르자 서로에게 섭섭했던 마음, 원망, 미워했던 마음들이 지나온 시간들 속에 어느 정도 희석이 되었고, 예전의 두근거리는 설렘대신 이제는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서로가 편해졌다고 하였다. 내 딸의 엄마, 내 딸의 아빠라는 연결고리가 그들 사이에 계속 남아 있어서 그런 사이가 될 수 있었는지,,, 그들 부부의 이런 모습이 나는 솔직히 이해가 잘 안 가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혼이라는 과정에서 양육비며 재산분할문제며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서 얼마나 합리적이고 분별력을 갖고 그 긴 터널을 지날 수 있는지, 잘 헤어지기 위해 서로에게 자신의 바닥을 보이지 않으려고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컨트롤할 수 있는지,,, 내가 직접 이혼해 본 경험은 없지만 엄마 아빠의 이혼 과정을 지켜본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그 시간은 천년처럼 길었고 마음은,,, 그냥 이게 꿈이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시간들을 뛰어넘어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니...


#2. 사랑이 간 자리에 우정이 찾아왔다.


너는 그게 돼?
이혼하고 친구로 남는 게??


- 친구로 남는 게 아니고 진짜 친구가 되는 거야!

우리는 열렬히 사랑을 했어, 하지만 그 사랑은 식었지.

그래서 우리는 싸우면서 평생을 함께 하느니 현명하게 헤어지는 쪽을 선택했고,

누구의 문제라고 불평하지 않았어.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런 거야, 영원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거야.

받아들이고 편하게 놓아주는 것,,, 그래야 부모의 이별을 아이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한때는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았던 우리가 이제는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거야.


그렇게 사랑이 간 자리에 우정이 찾아온 거지... C'est la vie!  쎄 라 비! 인생이 다 그런 거야!


저녁을 먹고 남편은 설거지를, 나는 남은 반찬들을 정리해서 냉장고에 넣는다.

퇴근 후 거의 똑같이 반복되는 우리 부부의 일상이다.

남편에게 그녀와 그녀 전남편 이야기를 하며 우리가 만약 헤어지면 우리도 그렇게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내 질문에 남편이 대답했다.


글쎄, 나 같으면 친구로 지낼 수 있는 정도면 그냥 안 헤어지고 살 것 같은데?

친구라는 관계도 그냥 다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보통은 다들 잘 지내려고 이해하고 어느 정도는 양보하고, 이런  노력들을 하면서 우정을 지키게 되지.

친구처럼 지낼 만큼 괜찮은 관계라면 그냥 헤어지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위해 노력하며 사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해..


- 그래?,,, 난 그래도 사랑 없는 친구 같은 부부사이는 별로인데?

난 만약 그렇다면 이혼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렇게 시작된 우리 부부의 의견 차이는 자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지만 결국 아무런 결론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은 침대에 누우며 시계를 보면서 남의 일이고, 우리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쓸데없는 일에 대해 괜히 시간을 쏟았다고 투정을 부렸고,

나는 시간을 쏟은 게 아니고 우리는 대화를 했을 뿐이라고 말하며 이불을 내쪽으로 휙 잡아 끌어안고 그에게 등을 돌려 누웠다.


... 하아,,,,  우리도 역시 현실부부!




인터넷에서 우연히 어떤 영상을 보았다.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그 말이 너무 마음에 와닿았다.


세상에 영원한 게 있을까?

살다가 혹시 내 마음이 변할지, 그의 마음이 변할지, 혹은 또 다른 어떤 이유로 우리가 계속 부부로 남을지 어떨지,,, 우리 부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는 서로의 마지막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안다. 정말 표도 안 나고 사소한 것들이지만 나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우리 부부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그의 수많은 노력들을 나는 알고 있고 느끼고 있다.


언젠가 끝날 시한부 같은 인생에서 가끔은 사소한 것으로 티격태격하고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의 마지막이 되기 위해 우리는 노력하며 소소한 일상을 함께 나누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랑이 간 빈자리를 우정으로 채우고 싶지는 않기에 나는 더 노력할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and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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