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마법 국세청의 방문 (3)

by 달빛타래

바나비는 그날부터 며칠 밤을 새워가며 한 달 치의 마력 수치를 분석했다.

하지만 조사가 깊어질수록 바나비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보통 이런 마력 관리법 위반 의심 사례는 자연의 마력을 무리하게 갈취하거나 마력을 담은 물건을 암시장에 팔아치우는 밀매의 형태를 띤다. 하지만 에드먼드의 산장에서 감지된 수치는 그 상식을 역으로 거슬렀다.


“어째서 마력 전이 지수가 양수가 아니라 음수를 띠는 거지?”

그 말은 에드먼드가 숲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게 아닌, 오히려 자신의 마력을 숲에 쏟아붓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행정적으로 정의하자면, 이것은 ‘미등록 마력 사용’ 위반이었다. 허가 없이 마력을 자연에 방류하는 건 생태계의 변동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고서를 앞에 둔 바나비는 한참을 망설였다.


만약 이대로 상관에게 보고서가 올라간다면, 숲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가볍게는 과태료를 내며 경고 차원에서 그치겠지만, 사항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결계를 해제하라는 집행 명령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물론 어느 경우든 바나비의 실적에는 한 줄이 늘어날 테지만, 그 대가로 숲은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 정의로운 법의 집행만이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이끈다고만 믿었던 바나비는 처음으로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에디의 산장이잖아? 기어이 여기까지 건드리는군.”

그때,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토드가 바나비의 어깨너머로 보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평소라면 남의 보고서를 훔쳐보는 그의 무례한 행동에 화부터 냈겠지만, 에드먼드를 아는 듯한 토드의 말투에 무심코 물었다.


“아는 분입니까?”

“잘 알지. 같은 마법학교 동창이거든.”

“에드먼드라는 분은, 어떤 마법사입니까?”

바나비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던 토드는 평소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지우고 진지하게 답했다.


“능력이 뛰어나고 심성이 올곧은 녀석이야. 그래서 원치 않게 다른 사람들의 원성을 사는 편이지.”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쓸수록 혼자가 되어갔던 바나비는 에드먼드라는 마법사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녀석도 한때는 압살드라에서 일했지만, 마법 평의회의 심기를 건드린 뒤로 자리에서 물러났거든.”

“심기를 건드려요?”

“당시 에디는 부당한 명령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고, 거기엔 우리의 상관도 얽혀 있지. 이번 조사는 단순한 감사가 아니야. 과거의 앙금을 털어내려는 비겁하고도 사적인 보복이지.”

토드의 말에 바나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제야 상관이 서류를 넘기면서 보이던 수상한 모습이 이해됐다.

“만약 이 보고서가 그대로 제출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글쎄? 아마 좋게 넘어가진 않겠지. 최악의 경우 숲의 결계를 없애라는 명령이 떨어질 테고.”

바나비의 머릿속에 끔찍한 광경이 연이어 떠올랐다. 마력의 공급이 끊긴 나무들이 서서히 말라가고, 보금자리를 잃은 정령들이 정처 없이 떠돌다 소멸하고, 산장과 별채 위로 붉은 압류 딱지가 덕지덕지 붙었다. 토드는 새로운 사탕 하나를 입안에서 굴리며 표정이 심각해지는 바나비를 바라봤다.


“그래서, 우리 수석 조사관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 법대로 집행할 건가?”

“... 하지만 법은 지켜져야 합니다.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질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바나비의 목소리는 힘없이 잦아들었다.


“원칙이 생명보다 우선이라는 건가? 법이란 분명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제정됐을 텐데, 참 모순적이군.”

토드의 뼈 있는 한마디는 바나비의 가슴에 콕 박혔다. 법이 보호해야 할 대상이 과연 질서인지, 생명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처럼 들렸다. 바나비가 손을 바르르 떨며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자, 토드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정 고민되면 직접 가서 보자고. 종이에 불과한 서류 너머에 진짜 숨 쉬고 있는 현실이 어떤지 말이야.”


* *


수첩에 적힌 내용은 웬디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그곳에는 에드먼드의 죄목이 아닌, 산장에서 발생한 마력 파동을 수식으로 분석한 데이터가 있었다. 수첩 중앙에 적힌 복잡한 수학 기호를 본 웬디는 눈을 찌푸렸지만, 다행히 뒷부분에 그녀가 읽을 수 있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특이사항] 산장지기 에드먼드는 숲의 생명체에게 마력을 통한 활력을 공급하고 있음. 이는 개인의 선의로 보이나, 마력 관리법상 ‘미등록 기부 마력’에 해당함. 이는 명백히 처벌 대상이긴 하나, 만약 절차대로 상부에 보고를 올릴 경우, 숲의 생태계 파괴가 우려됨.

...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숲의 생태계를 파괴할 자격이 있을까?


웬디는 고뇌의 흔적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문장들을 읽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차가운 기계 같은 바나비 조사관이 법과 양심 사이에서 남몰래 갈등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바나비 씨를 잘 설득하면...”

“잘 설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갑자기 웬디의 등 뒤에서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소스라치게 놀란 웬디는 수첩을 등 뒤로 감추고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토드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토드 조사관님! 이건, 그러니까!”

웬디가 눈알을 굴리며 변명거리를 꺼내려 하자, 토드가 진정하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진정하세요. 웬디 씨의 행동을 보고도 모른 척한 건, 수첩을 가져가라고 보낸 무언의 신호였으니까요.”

“왜 저를 도와주셨나요?”

토드는 대답에 앞서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리곤 봉지 사탕을 꺼내 웬디에게 보였다. 웬디는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한쪽 볼이 볼록해진 토드가 말했다.


“바나비 조사관은 아주 우수한 인재입니다. 너무 우수해서 가끔 법과 현실 사이에 생기는 괴리감을 깊게 고민하곤 하죠. 만약 바나비 조사관이 정말 냉철한 성격이라면, 애초에 이곳을 오지 않고 강제 집행 명령만 내렸을 겁니다. 그런 편이 우리에게도 훨씬 수월하고요.”

토드는 웬디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그녀에게 때론 사무실의 서류들이 담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청사에 단순히 유능한 조사관은 많지만, 직접 현장까지 나와서 사정을 들으려는 조사관은 부족하거든요.”

토드의 가벼운 말투 뒤에는 바나비 조사관을 향한 신뢰와 애정이 숨어 있었다. 웬디는 편견에 빠져 토드를 의심했던 자신을 떠올리고 속으로 반성했다. 그 사이, 웬디의 앞에 멈춰 선 토드는 손을 까딱여 수첩을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퍼뜩 정신을 차린 웬디는 수첩을 꼭 쥔 채 물었다.


“만약 수첩을 돌려주면 이 산장은 어떻게 되나요?”

의심이 물씬 느껴지는 웬디의 눈빛을 본 토드가 양손을 내보이며 항복하는 시늉을 했다.


“믿지 않겠지만, 저는 제 친구가 처벌받기를 원하지 않아요. 특히나 재능 있고 착한 친구라면 더욱이요.”

“두 분이 친한 사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나요?”

“증명이라. 에디는 학생 때부터 엉뚱한 구석이 있었지만, 동시에 낭만이 넘치는 친구였죠. 에디가 예전에 저지른 사고를 좀 알려줄까요?”

토드는 장난스럽게 윙크하며 물었다. 웬디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긴박한 상황이라는 걸 알지만, 에드먼드의 과거에 대한 호기심이 앞섰다. 토드는 손으로 턱을 짚으며 생각에 잠겼다.


“음, 가장 유명한 일화는 에디가 학교 뒤뜰에 다 죽어가는 꽃 한 송이를 살린 일?”

“꽃을 살리는 게 유명한 일화라고요?”

“녀석이 그 꽃을 살리겠다고 학교의 귀한 재료인 성광석 가루를 훔쳐서 비료로 만들었거든요. 그 일로 정학을 당하면서도 자기가 살린 꽃을 보며 바보처럼 웃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후로 토드는 에드먼드의 과거에 대해 짧은 일화들을 알려주었다. 남들이 파괴적인 마법을 배우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때 혼자 꽃을 빠르게 개화하는 마법을 개발한다든지, 자연과 친해지기 위해 방학 기간 내내 숲에 들어간 탓에 수염이 덥수룩해졌다든지, 얼핏 보면 괴짜의 기행 같지만, 그런 행위의 결과가 이 산장이라는 걸 알고 나니, 웬디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어쨌든 이 정도면 웬디 씨에게 신뢰를 줄 정도는 되었을까요?”

“... 여기 수첩이요.”

웬디는 고민 끝에 수첩을 그에게 건넸다. 에드먼드에 대해 줄곧 호의적으로 말하는 그라면, 믿어도 된다는 어떤 확신이 들었다.


“바나비 조사관은 오늘 ‘증거 분실’이라는 보고서를 쓸 겁니다. 증거가 없으면 조사는 당연히 종결되겠죠. 상관의 비난을 듣고 바나비 조사관의 자존심에도 약간의 상처가 남겠지만.”

잠깐 말을 멈춘 토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사소한 동작이 에드먼드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 보였다.


“그녀도 이 산장의 평화가 깨지길 원하지 않으니, 잘 극복할 겁니다.”

토드는 수첩을 양복 주머니에 챙긴 뒤, 본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다시 돌아갑시다. 바나비 조사관이 당신을 의심하기 전에요.”

웬디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시간 차를 두고 밍크와 함께 본관으로 돌아갔다. 식당을 통해 비스킷이 담긴 새로운 쟁반을 챙긴 웬디는 사태가 진정된 듯한 프런트를 목격했다. 펠의 무자비한 깃털 공격에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바나비 조사관이 씩씩거리고 있었고, 에반은 촉새처럼 말을 멈추지 않고 서류의 틀린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


“아, 웬디 씨! 마가렛 여사님이 비스킷을 더 구워주셨나요?”

토드는 웬디를 향해 능청스럽게 말을 걸었다. 웬디는 쟁반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사관님들이 힘드실 것 같다고 조금 더 챙겨주셨어요.”

웬디는 바나비에게 갓 구운 비스킷을 내밀었다. 바나비는 분실된 수첩 때문에 안색이 창백했지만, 웬디가 건네는 비스킷의 향기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래서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는 수첩은 찾으셨습니까?”

에드먼드가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묻자, 바나비는 비스킷을 한 입 베어 물고 풀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무래도 소동 중에 어디론가 사라진 모양이네요.”

“그러면 이번 일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웬디가 참지 못하고 불쑥 물었다.


“기록되지 않은 데이터는 증거로 채택할 수 없고, 서류는 저 소년에게 완벽히 논파 당했으니, 이번 조사는 ‘증거 불충분’으로 잠정 종결하겠습니다.”

바나비의 표정은 아쉬움이 가득해 보였지만, 그녀의 수첩을 열어봤던 웬디는 그 표정 속에 숨겨진 미묘한 안도감을 눈치챘다.


“잘 됐군, 에디.”

토드는 에드먼드의 어깨를 툭 치며 껄껄 웃었다. 본관을 가득 채웠던 서늘한 긴장감은 비스킷의 부스러기처럼 부드럽게 흩어졌다. 그렇게 비스킷을 마저 먹은 바나비와 토드가 산장을 떠나고 난 뒤, 힘이 빠진 웬디와 에드먼드는 응접실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웬디, 자네의 그 오류 지적은 아주 훌륭했네.”

“에반이 시선을 잘 끌어준 거죠.”

웬디는 이번 일의 공로를 에반에게 넘겼다. 실제로 에반이 없었다면 바나비의 손에서 수첩이 떨어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수첩을 빼돌릴 타이밍을 만든 건 자네였지. 혹시 그것도 마트에서 배운 기술인가?”

“도둑질을 가르치는 마트라면, 영업 정지 처분을 받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 산장은 지켰지.”

에드먼드의 말에 웬디는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곧 옆에 서 있는 에반에게 말했다.


“고마워, 에반. 네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에반은 웬디의 말에 잠시 침묵하더니, 교복 소매를 매만지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아침에 숲을 산책할 때와는 다소 달라져 있었다.


“저 결심했어요. 오늘 바로 학교로 돌아가기로요.”

놀란 웬디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벌써 돌아가도 괜찮겠어? 거긴 네가 힘들어했던 장소라면서.”

그녀의 걱정 섞인 목소리에, 에반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더 이상 무언가에 쫓기는 자의 것이 아니었다.


“도망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제가 배운 지식이 이 산장처럼 소중한 곳을 지키는 방패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그러니 더 많이 배우고, 더 성장하고 싶어요. 그래서 오늘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당당하게 맞서서 이 산장의 평화를 지켜줄 수 있을 테니까요.”

에반은 두 사람을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감사했습니다.”

에드먼드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에반을 빤히 쳐다봤다. 평소라면 싱거운 농담을 했을 에드먼드였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우수에 찬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잠시 후, 에드먼드가 묵묵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따라오거라.”

에드먼드는 웬디에게 짧은 눈짓을 보낸 후, 앞장서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향했다. 웬디는 그들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3층 다락방과 연결된 계단 앞에서 에반은 뒤를 돌아 웬디를 바라봤다. 웬디는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만나, 에반.”

“네. 꼭이요.”

다음을 기약하는 에반의 얼굴은 더욱 밝아졌다. 웬디는 에드먼드와 함께 계단을 오르는 에반의 모습을 끝까지 눈에 담았다. 아지랑이 같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을 보며, 웬디는 저 똑똑한 소년의 앞날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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