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국세청에서 연락도 없이 어떤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에드먼드가 불쾌한 감정을 한껏 드러내며 묻자,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유들유들한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다가왔다.
“오랜만이야, 에디. 내 파트너 바나비가 자네 산장에 관한 서류를 읽다가 이상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말이야.”
남자는 에드먼드와 구면인 듯 너스레를 떨었지만, 에드먼드의 미간은 좀처럼 펴질 줄 몰랐다.
“토드. 공무를 하는 건 이해하지만, 이런 식의 돌발 수사는 납득하기 어렵군.”
“마력 소모 급증은 긴급 조사 항목이라 미리 언질을 못 준다는 걸 알지 않나? 내 입장도 좀 이해 해줘.”
토드라고 불린 남자는 친근하게 굴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애썼다. 그 사이 바나비는 두 사람의 대화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들고온 가방을 열었다. 가방에서 나온 물건은 복잡한 눈금과 버튼이 달린 기계 장치였다. 주변의 마력을 세밀하게 측정하는 분석기였다.
“마법 국세청 수석 조사관, 바나비 로랑입니다. 최근 이 산장의 마력 방출량이 국제 표준 허용 범위를 두 배 이상 초과했다는 데이터가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명백한 마력 관리법 위반이자, 잠재적인 마력 밀수 혐의에 해당합니다.”
분석기를 조작하며 내뱉는 바나비의 목소리는 기계가 글자를 읽어 내려가듯 무미건조했다. 그녀가 꺼낸 ‘밀수 혐의’라는 단어에 에드먼드는 눈살을 찌푸리며 곧바로 반박했다.
“이곳은 결계석을 통해 마력을 상시 유지하는 특수 구역입니다. 숲의 상태에 따라 수치가 일시적으로 등락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게다가 이런 식의 강압적인 조사에는 협조할 수 없습니다.”
바나비는 측정 화면에 요동치는 붉은 선을 에드먼드에게 들이밀었다.
“자연 현상으로 치부하기엔 지금도 마력의 파동이 지나치게 불안정하군요.”
“시간대가 아침이라 그렇습니다. 새벽마다 정령들이 내뱉는 마력이 기계에 혼선을 주는 겁니다.”
“원인을 알면서도 방치하셨다는 거군요?”
“방치라니요. 정령들이 숲에서 숨 쉬는 걸 막기라도 하라는 겁니까? 수치가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에드먼드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되물었지만, 바나비는 꼿꼿한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그래야겠죠.”
두 사람의 설전은 이후로도 평행선을 달렸다. 에드먼드는 결계로 유지되는 숲의 특수성을 강조했고, 바나비는 원칙을 앞세우며 예외 사항을 둘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두 사람의 말다툼에, 로비의 긴장감은 점점 팽팽해졌다. 침을 꿀꺽 삼키며 상황이 좋게 흘러가기만 기도하던 웬디는 기묘한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시선의 주인은 토드였다. 눈이 마주쳤음에도, 토드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눈썹을 까딱이며 느긋한 인사를 건넸다. 웬디는 순박해 보이는 그 표정에서 알 수 없는 꺼림칙함을 느꼈다. 그녀는 왠지 토드가 상황을 일부러 방치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스릴러 영화 속 흑막이 목적을 감추고 친절하게 구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식으로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저희는 에드먼드 씨를 더욱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웬디가 토드를 경계하고 있는 사이, 에드먼드와 바나비 사이에서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를 흘렀다. 그때, 복도 전체에 달콤한 냄새가 풍기는가 싶더니, 마가렛이 비스킷이 담긴 작은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으신데, 이것 좀 먹으면서 하세요. 빈속에 화를 내면 서로 기분만 상한답니다.”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조사가 우선입니다.”
바나비가 단호하게 거절하려 했지만, 토드가 비스킷 하나를 잽싸게 입에 집어넣으며 말을 가로챘다.
“어허, 바나비. 마가렛 여사님의 비스킷을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네. 그리고 에디의 말도 마냥 틀린 건 아니지 않나? 좋은 협조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법이라고.”
이어 그는 바나비의 손에 비스킷 하나를 억지로 쥐여주었다. 바나비는 정말로 싫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주위의 시선을 못 이겨 비스킷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한 식감 뒤로 고소한 풍미가 입안에서 녹아내리자, 그녀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어떤가? 청사 근처 카페에서 파는 쿠키와는 차원이 다르지?”
“맛이 더 풍부하다는 건 인정하죠.”
그녀가 마지못해 비스킷을 칭찬하자, 토드는 내기에서 승리한 사람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학교 다닐 때 마가렛 여사님이 해주는 밥은 언제나 일품이었지. 내 뱃살도 대부분 그때 만들어진 거라네.”
“그건 그냥 토드 씨가 게을른 탓이...”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차를 음미하는 하루라니! 정말 부러울 것 같군! 그렇지 않나?”
토드는 바나비의 말을 다시 교묘하게 자르며 물었다. 바나비는 분위기를 완전히 흐트러뜨린 토드를 째려봤지만,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확실히 이곳의 조경은 국립 화원보다 훨씬 아름답, 아니, 제 말은! 조경이 문제가 아니라 마력 소모가 문제라는 겁니다!”
무심코 속내가 튀어나온 바나비는 깜짝 놀라 제 입을 틀어막았다. 비스킷의 매력과 정신없는 토드의 말 현혹되어 철벽같은 태도에 처음으로 작은 균열이 생겼다. 당황한 듯 헛기침을 하던 바나비는 가방 안에서 서류 뭉치를 꺼냈다.
“최근 한 달간 산장에서 감지된 마력량 관련 자료입니다.”
“천천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바나비는 서류를 넘겨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먼드는 그 자리에서 서류를 하나씩 훑어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에드먼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바나비의 지적대로, 최근 며칠간 산장에서 비정상적인 마력 반응이 여러 번 발생한 것이다. 에드먼드의 옆에 조용히 서 있던 웬디는 그의 반응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과거 마트 본사에서 감사팀이 들이닥쳐 점장을 쥐 잡듯 캐묻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당시 스트레스가 심했던 점장은 한 달 사이 몸무게가 10킬로 넘게 빠졌고, 결국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바나비는 정장 안쪽 주머니에서 손바닥 크기의 작은 수첩을 꺼내며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렸다.
“서류만으로 부족할 것 같아 이 수첩에 결정적인 증거를 정리해 왔습니다. 이 숲의 마력 요동이 절대 자연적이지 않고 인위적이라는 증거를요.”
저 수첩이 열리는 순간 산장의 평화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웬디의 불안함이 점점 커졌다. 다음 순간, 웬디의 시선이 바닥에 있는 갈색 카펫 위로 향했다. 그곳에는 두 개의 눈동자가 느리게 깜빡이고 있었다. 카펫에 몸을 숨긴 밍크였다. 평소라면 한가롭게 숲길을 거닐고 있을 밍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의아했지만, 곧 밍크의 시선이 바나비, 정확히는 그녀의 수첩에 향한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보금자리를 끔찍이 아끼는 밍크에게 바나비의 행동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저것만 없으면 되는 거지?’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래. 그러니까 시선 좀 끌어줘.’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지만, 웬디와 밍크는 찰나의 눈짓만으로 서로의 의도를 읽어냈다. 웬디는 곧바로 손을 번쩍 들었다.
“바나비 조사관님. 잠시만요!”
“왜 그러시죠?”
곧바로 날 선 시선이 꽂히자, 웬디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 생각에는 여기에 오, 오류가 있는 것 같아요.”
“무슨 오류 말씀이시죠? 이 서류는 제가 직접 검토를 마친 겁니다만?”
“그게, 그러니까.”
웬디는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마법사도 아닌 그녀가 서류에서 오류를 발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대신 웬디는 옆에 있는 천재 소년, 에반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에반? 너도 한번 볼래? 이 부분이...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
눈치 빠른 소년은 별말 없이 다가와 서류를 빠르게 훑어봤다.
“웬디 씨 말이 맞아요, 조사관님.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른 마력 산란 지수를 대입하면, 마력 소모량은 여기에 적힌 것보다 최소 15% 낮게 책정되어야 해요. 혹시 조사관님의 분석기에 보정 값이 잘못된 건 아니죠? 파동 중첩 현상은 고려하셨나요?”
에반의 쉴 새 없는 질문 공세에 바나비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토드가 중재하듯 손을 뻗었다.
“아직 어린 학생인데, 잘 모르고 한 소리일 수도 있지.”
“아니요, 토드 씨. 설령 그렇더라도 오류는 확실히 짚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토드의 만류에도 자존심이 상한 바나비는 수첩을 프런트 앞에 놓인 책상에 올려두고 에반에게 다가갔다. 웬디는 수첩이 놓인 책상을 곁눈질로 내려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 수첩만 없앨 수 있으면, 오늘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거야.’
물론 수첩이 없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바나비가 수첩의 내용을 미리 옮겨적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증거를 다시 찾기 전까지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밍크는 그런 웬디의 충동을 부추기듯 천장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언제부터였는지 전등 위에는 펠이 날개를 접고 아래를 주시하고 있었다.
“당신의 반박에는 두 가지 맹점이 있어요. 첫 번째는.”
바나비의 정신이 완전히 에반과 서류에 쏠린 것을 확인한 웬디는 펠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펠은 눈치껏 의미를 알아차리고 아래로 활강했다.
“까악! 이건 부당 감사다! 서류 조작이다! 까악!”
바나비의 머리 위에서 펠은 깃털을 휘날리며 요란한 소음을 일으켰다. 귀청을 울리는 펠의 엄청난 성량 앞에 바나비는 귀를 틀어막으며 소리쳤다.
“이 무례한 새가! 토드 씨, 이 앵무새 좀 어떻게 해봐요!”
“까악! 나는 앵무새가 아니다! 나는 까마귀다!”
바나비가 팔을 휘저으며 펠을 쫓으려 하자, 토드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바나비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큰 덩치는 바나비와 책상 사이의 시야를 교묘하게 가렸다. 절호의 기회를 포착한 웬디는 잽싸게 프런트 위로 상체를 기울였다. 있는 힘껏 팔을 뻗었지만, 수첩을 붙잡기엔 거리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짧았다. 웬디가 무리해서라도 수첩을 쳐내려는 순간, 갑자기 뒤를 돌아본 토드와 눈이 딱 마주쳤다. 웬디는 나쁜 짓을 하다 딱 걸린 아이처럼 숨을 멈췄다. 하지만 토드는 의미심장한 윙크를 하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조심하게, 바나비! 에디의 반려동물은 조금 사나워서 말이지. 내가 다치지 않게 잡아줄 테니 걱정하지 말게!”
웬디는 어째서 그가 모른 척 넘어간 건지 의아했지만, 폴짝 뛰어 수첩을 쳐내 바닥에 떨어뜨렸다. 카펫 위에서 줄곧 대기하던 밍크는 떨어지는 수첩을 낚아채고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날렵한 속도로 달아났다.
“저는 마가렛에게 쟁반을 가져다주고 올게요.”
밍크가 나가는 걸 확인한 웬디는 비스킷이 담겼던 쟁반을 들고 잰걸음으로 빠져나왔다. 식당과 이어진 문을 통해 본관 밖으로 나온 그녀는 몸을 낮추고 별채로 이어지는 언덕길로 달려갔다.
“잠깐! 내 수첩이 사라졌잖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바나비의 고함에 웬디의 심장은 터질 것처럼 요동쳤다. 혹시라도 바나비가 쫓아올까 두려웠던 웬디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별채를 지나 초원과 이어지는 숲길에 도착한 웬디는 나직이 밍크를 불렀다.
“밍크? 어디 있어?”
그러자 근처 참나무의 그림자 속에서 갈색 털 뭉치가 스르륵 나타났다. 밍크는 입에 물고 있던 바나비의 수첩을 웬디의 발치에 떨어뜨렸다. 웬디는 떨리는 손으로 수첩을 집어 들었다. 방금 저지른 행위는 명백히 절도임을 알지만, 양심을 논하기에는 이 산장이 너무 소중했다.
“잠시만 실례할게요, 조사관님.”
웬디는 조심스럽게 수첩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그 안에는 바나비의 성격을 보여주듯 강박적일 정도로 촘촘한 글씨들이 가득했다.
* *
바나비 로랑에게 법이란 세상을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완벽한 수단이었다. 크로노스 마법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녀는 망설임 없이 마법 국세청의 문을 두드렸다. 젊은 나이임에도 실력을 인정받아 조사관 배지를 가슴에 단 날, 그녀는 유능한 마법사들과 함께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당찬 포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바나비가 마주한 건 밝은 미래가 아닌 어딘가 뒤틀린 시선이었다. 특히 그녀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상관의 눈빛이 압권이었다.
매부리코에 왼쪽 뺨을 가로지르는 깊은 십자 흉터가 인상적인 상관은 자신보다 젊고 실력이 뛰어난 바나비를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그래서 사소한 일로 트집을 잡거나 말꼬리를 늘어뜨리기 일쑤였다. 바나비는 그런 상사의 적의에 굴복하는 대신 턱을 높이 치켜들었다. 어차피 자신이 뛰어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면, 저 눈빛들도 언젠가 존경으로 바뀌리라 믿었다. 다만, 그녀의 계획 속에 딱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바로 사수이자 파트너 조사관인 토드였다.
“하하, 바나비. 뭘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일해? 우리가 하는 일은 가끔은 좀 흐릿하게 봐야 잘 보이는 법이라고.”
토드는 둥글게 말린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헤프게 웃었다. 바나비의 시선에서 토드는 책상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는 시간보다, 자리를 비우고 동료들과 수다를 떠는 시간이 더 많은 구제 불능의 낙천주의자였다. 바나비는 그런 토드가 자신의 사수라는 사실이 인생의 큰 오점처럼 느껴졌다.
“조사관은 항상 완벽해야 합니다, 토드 씨. 당신처럼 모든 일을 건성으로 넘기다 보면, 언젠가 감당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겁니다. 그러니 제발 자리나 지키시죠.”
바나비의 날 선 핀잔에도 토드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사탕 껍질이나 깔 뿐이었다. 그렇게 필사적인 노력에 힘입은 덕분일까. 바나비의 실적은 빠르게 쌓였고, 역대 최단기간 수석 조사관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국세청 직원들은 여전히 그녀를 불편해했지만, 그래도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상관의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질투와 시기가 더 늘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관이 바나비의 책상 위에 낡고 두툼한 서류 뭉치를 내려놓았다.
“최근 이 구역에 흘러 들어가는 마력의 양상이 심상치 않네. 수석 조사관이 됐으니, 자네가 직접 이번 일을 처리하고 나에게 보고서를 올리게.”
상관은 그렇게 일방적인 지시를 내린 뒤 자리를 떠났다. 바나비는 상관이 돌아서며 보인 의미심장한 미소를 발견하고 수상함을 느꼈지만, 곧바로 서류를 검토했다. 서류는 에드먼드 글록이라는 마법사가 변방의 숲에 산장을 세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