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마법 국세청의 방문 (1)

by 달빛타래

안개가 휩쓸고 지나간 산장의 아침은 다른 날보다 더 청명했다. 새벽녘까지 시야를 어지럽게 만들던 안개는 온데간데없고, 잎사귀마다 맺힌 이슬이 햇살을 머금어 보석처럼 반짝였다. 본래의 색채를 되찾은 숲 덕분에 웬디는 평소보다 개운한 기분으로 창문을 열었다. 코를 통해 느껴지는 수풀 내음이 평소보다 훨씬 짙었다. 가볍게 세안을 마친 웬디는 창고에서 견과류와 산딸기가 담긴 바구니를 챙겨 숲으로 나섰다. 처음 먹이를 챙겨줄 때만 해도 멀찍이서 경계하던 동물들은 어느덧 아침마다 웬디를 기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전날 안개 탓에 보금자리에서 꼼짝도 못 했던 산새와 다람쥐는 평소보다 격하게 웬디를 반겼다.


“다들 진정해. 오늘은 어제보다 넉넉하게 줄 테니까.”

웬디는 어깨 위로 올라타려는 다람쥐와 바구니에 매달리려는 새들을 부드럽게 타일렀다. 먹이통을 넉넉하게 채워주자, 허겁지겁 식사를 해치운 동물들이 고마움을 표현하듯 웬디에게 몸을 비비거나 짧은 지저귐을 남겼다. 쪼그려 앉아 짧은 인사를 나눈 웬디는 빈 바구니를 챙겨 들고 본관으로 돌아갔다. 로비를 지나 계단으로 향하던 웬디는 낯선 시선을 느끼고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리자, 응접실 문틈 사이로 바깥을 살피던 갈색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소년은 깜짝 놀라며 후다닥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겁 많은 다람쥐처럼 도망치는 뒷모습이 못내 귀여워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웬디는 소년이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인기적을 내며 문 앞으로 다가갔다.


“안녕, 잘 잤니?”

웬디가 문을 두드리며 묻자, 머리가 부스스한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년은 몰래 쳐다보다 걸린 게 민망했는지 잠깐 시선을 피했지만, 이내 용기를 낸 듯 웬디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통성명도 못 했네요. 저는 에반 마일로라고 해요. 어젯밤 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차분하고 유창한 인사를 건네는 에반의 모습에서, 웬디는 잠깐이나마 헨리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쳤다.


“반가워, 에반. 난 웬디라고 해. 이 산장에서 일하는 직원이야.”

“여기가 산장이라고요? 숲에 있는 그 산장이요?”

에반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하며 물었다. 그러더니 대답을 듣기도 전에, 혼자 목소리를 낮춰 중얼거렸다.

“... 설마 시간 가속이 위상 공간까지 간섭하는 건가? 하지만 이론상 그럴 확률은 불가능에 가까운데?”

웬디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꺼내는 에반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 어젯밤의 창백함은 사라지고 건강한 혈색이 돌고 있었다.


“괜찮으면 잠깐 산책이라도 할까? 여기 주변 경치가 아주 예쁘거든.”

에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접실 밖으로 나온 에반의 눈엔 경계심이 엿보였지만, 그 감정은 곧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 방향은 웬디의 예상과는 다소 달랐다. 함께 복도를 걷는 동안, 에반은 자꾸만 선로를 이탈하는 기차처럼 멈춰 섰다. 그의 시선은 바닥을 쓰는 빗자루와 스스로 불을 밝히는 촛대 위로 꽂혔다.


“저 촛대는 무슨 원리로 켜지는 건가요? 산장의 마력 회로가 생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점화하는 원리인가요?”

에반의 질문은 웬디가 대답할 수 있는 범주를 한참 벗어났다. 웬디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 에반. 나는 마법사가 아니라서 그런 어려운 원리까지는 몰라.”

웬디에게 산장의 마법은 그저 신기하고 편리한 일상의 풍경이었다. 반면 에반에게는 반드시 분석해야 할 탐구의 대상인 모양이었다.


“마력의 출력 안정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과부하가 발생할지도 몰라요. 저 빗자루만 해도 마찰 계수를 계산하지 않으면 끝이 금방 닳아버릴 텐데.”

무언가에 홀린 듯 중얼거리는 에반의 모습은 연구에 몰두하는 꼬마 교수님 같았다. 웬디는 에반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이런 순수한 아이가 중심을 잃고 안갯속을 헤매게 된 것일까.


“에드먼드 씨에게 듣기로는, 네가 입고 있는 옷이 학생복이라며?”

“맞아요. 압살드라 3번가에 있는 크로노스 마법학교 학생이에요. 아, 압살드라는...”

에반은 본인이 말하고도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마법사들의 은밀한 성지에 대해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떠올린 듯했다. 웬디는 일부러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알고 있어. 마법사들의 나라를 말하는 거지?”

에반은 마법사도 아닌 웬디가 압살드라를 알자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나 이곳이 마법산장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듯, 해진 교복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저는 올해 열세 살이지만, 월반을 조금 많이 해서 고등부 2학년 과정을 배우고 있어요.”

“열세 살이 고등부 과정을?”

웬디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조금 전 에반이 보여준 비범한 모습을 떠올리니 납득이 갔다. 동시에 이 어린 천재가 얼마나 혹독한 환경에 내몰렸으면 여기까지 흘러 들어왔을까 하는 측은함이 들었다.


“중학부 과정까지는 힘들어도 그럭저럭 견딜 만했어요. 그런데 고등부에 진급한 뒤로는 수업 하나하나가 너무 어려웠어요. 주변에 힘들다고 말해도 그것 하나 못 버티냐고 타박만 해서 억지로 버텼는데, 어느 순간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어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기숙사 근처 숲으로 무작정 달렸는데, 정신을 차리니 여기네요. 잠깐!”

에반은 말하던 중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듯 소스라치게 놀랐다.


“생각해 보니, 다음 주가 기말고사 기간이에요! 선생님들은 항상 이맘때 결정적인 힌트를 주시거든요. 웬디 씨, 저 빨리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만약 낙제점이라도 받았다간 전 끝장이에요!”

에반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호기심에 반짝이던 얼굴에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뜨릴 것 같은 절박한 표정이 떠올랐다. 웬디는 떨리는 에반의 어깨를 조용히 감싸 쥐었다.


“진정해, 에반. 에드먼드 씨에게 부탁하면 당장 오늘 압살드라로 돌아갈 수 있어. 그러니 지금은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자.”

“정말요?”

웬디는 다정한 말투로 에반을 안심시켰지만, 마음은 복잡하게 얽혔다. 방금까지 학업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도망친 에반이 다시 지옥 같은 학교로 자신을 밀어 넣으려 했다. 문제는 이대로 에반을 돌려보내도, 그가 잘 적응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만약 어제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면, 그런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적어도 오늘만큼은, 에반에게 여유를 선물해 주고 싶어.’

웬디는 결심을 굳히며 에반을 이끌고 본관 밖으로 나섰다. 따스한 햇살과 웬디의 차분한 목소리 덕분인지 연신 발끝만 보며 불안해하던 에반도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언덕길을 내려가 자연스레 별채로 이어지는 오솔길에 접어들자, 에반의 눈은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봄 별채 주변으로 나풀거리는 벚꽃잎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저렇게 세밀하고 안정적인 마력이라니! 거기다 실시간으로 꽃잎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마법은 처음 봐요! 에드먼드 씨는 엄청난 수준의 마법사였군요!”

역시나 에반은 풍경의 아름다움보다 꽃잎의 비밀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웬디는 같은 풍경을 보고도 다른 감상을 느낀들 상관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녀는 에드먼드의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지 설파하는 에반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고 가끔은 짧은 대답으로 호응했다. 여름 별채에서는 습기를 잡아내는 비블레아 가루의 뛰어난 효능에 발을 동동 굴렀다. 여름 별채를 지나 고즈넉한 멋을 풍기는 가을 별채에 도착한 웬디는 고개를 들어 지붕부터 살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밍크는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지붕에 웅크리고 있었다.


“에반, 저기를 볼래? 우리 산장의 다른 식구야.”

“어디요?”

“저기 붉은 낙엽이 겹친 지붕 위.”

웬디의 손가락을 쫓던 에반은 그제야 밍크를 발견했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몸의 색이 바뀌는 밍크의 모습에 깜짝 놀란 듯했다.


“굴절 마법을 피부 조직에 전개한 건가? 아니면 선천적인 특성인가?”

분석에 열을 올리는 에반을 바라보던 웬디는 밍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밍크. 잠깐만 내려와 줄래?”

“싫어. 귀찮아.”

밍크는 꼬리만 까딱이며 대꾸했다. 웬디는 앞치마에서 은제 브러시를 꺼내 보였다.


“털 빗겨주려고 이것도 가져왔는데?”

밍크는 고양이임에도 제 털을 스스로 고르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게으름뱅이라, 털이 항상 솜뭉치처럼 엉켜 있었다. 그래서 남이 빗겨주는 손길만큼은 거부하지 않았다. 역시나 밍크는 못 이기는 척 지붕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웬디의 앞에 벌러덩 누웠다.


“에반, 네가 직접 털을 빗겨줄래?”

“제가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괜찮을까요?”

“내가 알려줄게. 우선 엉킨 곳부터 부드럽게.”

웬디는 브러시를 움직이며 시범을 보였다. 에반은 사소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털을 절반 정도 풀어낼 무렵, 웬디는 브러시 손잡이를 에반에게 넘겼다. 에반은 결연한 표정으로 브러시를 잡고 몸을 낮췄다. 밍크는 하품을 크게 하며 몸을 굴러 에반에게 다가갔다. 깜짝 놀란 에반이 뒤로 주저앉자, 밍크가 그런 그를 힐끗 쳐다보며 심드렁한 눈길을 보냈다. 에반은 조심스럽게 브러시를 움직여 밍크의 털을 빗었다. 처음에는 목각 인형이 움직이듯 뻣뻣한 모양새지만, 밍크의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자 경직된 표정도 점점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밍크의 털 정리가 끝날 무렵, 에반의 얼굴에는 그 나이대 소년다운 미소가 번졌다.


“슬슬 다른 곳도 가볼래?”

“네, 좋아요!”

웬디는 에반을 이끌고 별채 아래의 숲길로 들어섰다. 하늘을 가릴 만큼 빽빽하게 솟은 고목 사이로 비친 햇살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바닥을 수놓았다. 에반은 숲길을 걷는 내내 나무줄기를 어루만지고 흙을 살펴봤다. 웬디는 그런 에반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며, 멀리서 이쪽을 바라보는 동물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숲길의 끝에는 시야가 탁 트이는 광활한 초원이 펼쳐졌다. 바람에 물결치는 풀잎 사이로 우아하게 서 있던 형체가 낯선 기척을 느끼고 초원 입구로 다가왔다. 회색빛 갈기를 화려하게 휘날리는 헨리였다.


“처음 뵙는 귀공자시군요. 저는 이 초원에서 머무는 헨리라고 합니다.”

헨리가 구사하는 고풍스러운 경어체에 에반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말이 사람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격조 있는 어투를 구사한다는 게 퍽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공의 눈동자에서 복잡한 상념이 느껴지는군요. 그럴 땐 바람이 뺨을 스치는 감각에 몸을 맡기는 게 도움이 된답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공을 태워드리죠.”

“네? 저는.”

“부탁해요, 헨리!”

망설이는 에반 대신 웬디가 나서서 대답했다. 에반이 불안한 표정으로 돌아보자, 웬디가 부드럽게 물었다.

“혹시 학교 수업 중에 승마가 있니?”

“아니요.”

“그러면 이참에 한 번 도전해 봐. 생각보다 훨씬 즐거울 거야.”

격려에 힘입은 에반은 얼떨결에 헨리의 등에 올라탔다.


“목에 있는 갈기를 가볍게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부드러운 조언과 함께 헨리는 에반을 태우고 초원을 거닐었다. 처음 겪어보는 반동에 당황하던 에반은 금방 적응하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따뜻한 햇살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그리고 드넓은 초원의 지평선 위에서 소년은 처음으로 자유라는 감각을 맛보았다. 흐뭇한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웬디는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봤다.


“안녕하세요, 닉!”

“웬디 씨! 큰일이에요!”

뒤에서 나타난 이는 날개 달린 모자를 쓴 편지 배달부, 닉이었다. 닉의 모자 끝에 달린 작은 날개들이 불안하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산장에 무슨 일이 생긴, 아니, 생길 것 같아요!”

“네?”

웬디는 닉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아니고, 생길 것 같다니.


“자세히 설명해 줄래요?”

닉은 괜히 주변을 살피며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그 모습에 웬디도 덩달아 긴장하고 말았다.


“제가 편지를 배달하러 입구를 통과한 직후였어요. 곧바로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뒤따라 입장했는데, 가슴팍에 금색 천칭 배지가 달려 있었어요. 아무래도 마법 국세청 소속 조사관인 것 같아요.”

“마법 국세청? 조사관?”

웬디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닉이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모든 마법사들이 마주치기 무서워하는 집단이에요. 마법에 대한 세금을 징수하거나 금지된 마법을 남용하는지 감시하는 곳이거든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그런데 저희는 세금도 성실히 내고 불법적인 일은 하지도 않는데, 왜 찾아온 걸까요?”

“그건 저도 모르죠. 하여튼 두꺼운 서류 가방을 챙겨온 걸 보니, 가벼운 사안은 아닌 것 같아요. 얼른 본관으로 돌아가 보세요.”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닉이 이토록 걱정하는 걸 보니 예삿일은 아닌 듯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닉!”

“그럼 잘 해결되길 바랄게요.”

“네, 조심히 가세요. 헨리!!”

닉이 바람처럼 떠나자마자 웬디는 소리 높여 헨리를 불렀다. 그리곤 양팔을 빠르게 휘저어 다급하다는 걸 온몸으로 알렸다. 평화로운 산책은 한순간에 긴장감으로 대체되었다. 에반은 발걸음을 재촉하는 웬디와 함께 본관으로 돌아갔다.


로비에 들어선 웬디는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말을 곧장 이해했다. 프런트 앞에는 처음 보는 낯선 남녀가 서 있었다. 단발머리의 여자는 주름 하나 없는 정장 차림으로 본관을 날카롭게 훑고 있었다. 그 뒤에 선 남자는 끝이 둥글게 말린 콧수염과 능글맞은 인상을 풍겼지만, 풍채가 워낙 큰 탓에 사뭇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에드먼드는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운 빈틈없는 모습으로 그들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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