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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나그네 Jul 14. 2020

소원도 교육 받고 강요 받아야하는가

동요<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통해 바라본 강요받는 통일 가치관

 단 두 명만이 손을 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때, 담임 선생님은 통일을 원하는 사람과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 각각 손을 들어보라고 하셨다. 둘 중에 반드시 하나는 선택해야 했고, 통일을 원하지 않는 쪽에 손을 들었었다. 나를 포함해 단 두 명만 손을 들었고, 반 친구들의 눈빛에서는 레이저가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통일을 원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이상하다는 눈빛이었다. 이후, 선생님은 토론을 시켰다. 어린 나이에 통일을 왜 해야 하는 것인지 사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일도 없었고, 굳이 이질적인 것과 변화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 전부였지만 토론에 맞서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힘 있는 근거를 끌어 모아야만 했다. 애국가가 두 개인 것도 문제, 두 개의 국기가 되는 것도 문제이고 대통령 선거도 다시 해야 하며, 모든 것이 두 개여서 정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각종 이유를 들었다. 그 근거를 말할 때마다 그것은 나중에 정하면 된다는 반론과 대한민국의 것으로 그냥 결정하면 된다는 무리수에 가까운 공격도 있었다. 끝까지 토론에 열심히 임했지만 수적인 열세로 생각이 고갈되었고, 결국 통일을 원하지 않았던 나는 다소 이상한 어린이가 되고 말았다. 


출처 : http://modumagazine.co.kr/archives/tag/%ED%86%B5%EC%9D%BC


 요즘도 초등학교에서 통일 관련 토론이 열리면 이와 같은 분위기인지 모르겠지만, 90년대 후반의 초등학교의 분위기는 이러했다. 조금 유별난 어린이였을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통일을 ‘당연한’ 가치로 여기는 분위기가 너무도 많았다. 통일 글짓기, 통일 사생대회, 통일 말하기 대회 등 각종 통일 관련 행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이벤트들의 암묵적인 합의는 ‘통일은 반드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동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는 이러한 가치관의 정점을 보여준다. 세뇌교육 마냥 노래 첫 시작부터 우리의 소원은은 통일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통일이여 어서 오라’는 노랫말로 끝이 난다. 8마디로된 가사에 각 마디별로 모두 통일이라는 단어가 꼬박꼬박 등장한다. 이 정도면 거의 세뇌에 가까운 수준으로 통일은 당연히 되어야 하는 가치로 어린 시절부터 주입 받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는 1947년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라는 노래가 당시 독립이라는 단어 대신 ‘통일’이라는 단어로 변경된다. 해방의 기쁨을 제대로 누릴 사이도 없이 미국과 소련의 군대가 주둔하게 되면서 남북은 분단되고, 그 외부세력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통일이 되는 것에 누구도 부정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1947년 이후 6.25 전쟁을 거치면서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남긴 이후에도 여전히 모두의 소원을 통일로 강요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70년이 지난 이후에도 소원을 통일로 세뇌하는 것이 과연 당연한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물론, 통일을 하게 되면 호재가 더 많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추구해야 되는 것으로 강요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폭력일 수 있다고 본다. 더구나 통일의 암묵적인 대전재는 남한 중심의 통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북한 중심으로 통일을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은 많이 고려되지 않고, 남한 위주의 통일이 되었을 경우의 장밋빛 미래만으로 꿈꾸며 아직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식으로 동요를 부르며, 통일에 대한 가치관을 어린 시절부터 획일적으로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하지는 않을까. 


 누군가는 통일을 원할 수도 있고, 그 중에 어떤 사람은 어쩌면 북한 중심의 통일을 원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통일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고, 정전협정을 맺어 각기 다른 국가로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 가사를 통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소원까지 교육받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소원은 분단’, ‘우리의 소원은 정전협정’ 같은 식의 노래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통일이 되었을 때의 장단점을 따져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고력을 지니는 것이 더 중요할 텐데, 어린 시절부터 절대 명제 같은 노래로 사고가 경직될 우려가 있어 안타깝게 여겨진다. 진정으로 건강한 방식의 통일을 염원하고 그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통일에 대한 가치관도 하나가 아닌 다양한 생각을 함양할 수 있도록 획일화된 교육 방식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통일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안 될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시민이 어린 시절부터 민족주의적 가치관에 매몰되어 민족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식으로 강요받는 건 너무 가혹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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